자유주의 신학이 무엇인가?
자유주의 신학이 무엇인가?
자료출처 http://blog.daum.net/kkho1105/2506
현대 교회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신학의 변질이다. 신학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체계적 지식을 말한다. 다수의 현대 신학들은 교회가 전통적으로 믿고 고백해온 하나님의 진리들을 버리고 표류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통틀어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부른다. 자유주의 신학은 한마디로 이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역사적 대교단들의 신학교들은 이런 자유주의 신학 사상들을 포용하거나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지배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평적 변론의 필요성
우리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 논하는 까닭은 그것이 기독교 역사상 가장 이단적 사상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단을 분별하고 배격하라고 분명히 가르친다. 만일 우리가 자유주의 신학에 물든다면 우리의 신앙 생활은 죽고 말 것이다. 신자의 신앙 사상이 부패하면, 그의 경건하고 도덕적인 삶도 부패할 것이다. 교회가 세상과 별로 다르지 않다면, 죄 씻음을 받고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받는 감격이 없다면, 사람이 구태여 교회에 나올 이유가 없을 것이다.
사탄은 교회들로 하여금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하지 않고 은근히 받아들이게 하고 또 목사들의 사상을 변질시켜 마침내 교회 전체를 변질시키려 하고 있다. 우리는 사탄의 이러한 교묘하고 치밀한 배교(背敎) 운동을 분별하고 물리쳐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주의 신학이 얼마나 이단적이며 적그리스도적인 사상인가를 잘 분별하고 비판해야 한다. 하나님의 진실한 자녀들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대처해야 한다.
자유주의 신학의 근원과 성장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의 비평적 연구 방식에서 나왔다. 중세 시대의 사람들은 교회의 권위에 맹목적으로 순종했었다. 그러나 중세가 무너지고 개인의 자유와 인간 이성의 권위를 발견한 사람들은 성경에 대해서도 비평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고등비평이라고 불리우는 잘못된 성경연구방식이다.
또 경험할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이성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 철학자 칸트(Kant)의 사상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게다가, 과학의 발달이나 다윈의 진화론 등의 사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을 더욱 의심과 불신앙의 눈으로 보게 하였다. 자유주의 신학은 이런 배경에서 시작되고 성장하였다.
기독교와 자유주의 신학의 차이
성경적 기독교와 자유주의 신학은 무엇이 다른가? 성경적 기독교와 자유주의 신학은 단지 지엽적 문제들에서가 아니라 본질적 문제들에서 서로 다르다. 자유주의 잡지인 크리스챤 센츄리 1924년 1월 3일자 사설은 전통적인 기독교와 자유주의 신학을 근본주의와 현대주의라는 말로 표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근본주의에 의한 기독교는 한 종교요, 현대주의에 의한 기독교는 다른 한 종교이다. . . . 근본주의자의 하나님은 한 하나님이요, 현대주의자의 하나님은 다른 한 하나님이다. 근본주의자의 그리스도는 한 그리스도요, 현대주의자의 그리스도는 다른 한 그리스도이다. 근본주의의 성경은 한 성경이요, 현대주의의 성경은 다른 한 성경이다. 교회, 하나님의 나라, 만물의 종말--이것들이 근본주의자에게와 현대주의자에게 의미하는 바가 각각 다르다.”1)
성경적 기독교와 자유주의 신학의 차이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성경적 기독교는 기독교를 바른 교리들에 근거한 생활과 경험이라고 이해하며 그 교리들은 확실하고 불변적이라고 보지만,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를 교리들과 별개의 어떤 경험이나 생활로 보며 교리들은 시대마다 변할 수 있고 변해야 한다고 본다.
자유주의 신학은 교리를 경시함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 교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교리를 경시하는 이런 태도는 자유주의 신학의 초기로부터 볼 수 있었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쉴라이엘마허는 종교의 핵심이 이성적 증명과 토론이 아니고 감정이며 하나님은 한 경험, 한 살아있는 존재라고 주장하였다. 릿츨도 종교는 이론적이어서는 안 되며 구원받는 것은 새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하르낙도 사람이 경험한 종교만 고백될 수 있고 다른 모든 신조나 신앙고백은 예수님의 견해에 의하면 위선적이고 파멸적이라고 주장하였다.2) 그는 예수님의 기적들을 부정하며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을 역사적 기록으로 간주하지 않았다.3) 그에 의하면, 기독교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아버지시요 모든 사람이 서로 형제라는 데 있다고 한다.
쉴라아엘마허, 릿츨, 하르낙은 모두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선구자들이었다. 이와 같이, 자유주의 신학은 처음부터 기독교의 본질을 교리와 별개의 경험이나 생활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이들에 의하면, 기독교의 전통적 교리는 중요하지 않고 현대의 철학적, 과학적 도전 앞에 변경될 수 있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교리는 변경될 수 있으며 단지 하나님께서 악의 세력을 이기실 것이라는 신념이 기독교의 본질이라고 본다.4)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에 대한 과학적 반론을 염려하여 기독교의 독특한 교리들을 버리고 종교의 일반적 원리들을 기독교의 본질로 삼으려 하였다.5)
성경적 기독교는 교리를 중시함
그러나 성경적 기독교는 교리를 중시한다. 우리는 기독교가 바른 교리들에 근거한 생활과 경험이라고 이해한다. ‘교리’는 진리를 말로 표현한 것을 말한다. 교리는 기독교에 본질적이다. 또 기독교 교리들은 확실하고 불변적이다. 그것은 시대마다 변할 수 없다.
교리가 기독교에 본질적이라는 사실은 기독교의 기원을 살펴볼 때 분명하다. 처음 기독교 전파자들은 어떤 경험이나 생활 교훈을 전하지 않았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사실들을 전했고 이 사실들의 설명이 곧 교리이다. 사도 바울은 지혜의 말이나 기적을 전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전하였다(고전 1:22-23; 15:3-4).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은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지만, 그가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은 속죄의 교리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는 처음부터 교리적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또 교리가 기독교에 본질적이라는 사실은 바른 교리를 보수하고 이단을 배격하라는 성경 교훈들에서도 증거된다. 디모데후서 1:13, “너는 . . .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라.” 로마서 16: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디도서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기독교 교리의 확실성과 불변성
더욱이, 기독교 교리들은 확실하고 불변적이다. 이 사실은 그것들이 하나님의 속성들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하시며 거짓 증거를 미워하시고(출 20:16; 잠 6:16-19) 또 불변하시다(시 102:26-27).
또한 기독교 교리들의 확실성과 불변성은 기독교 복음의 성격에 의해서도 확증된다. 기독교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들에 기초하였고 그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그 내용은 확실하고 불변적일 수밖에 없다. 또 기독교 복음은 많은 기적들과 목격자들의 증언들에 의해 확증되었다(행 2:22; 요 21:24). 기적은 어떤 진리를 확증하는 표가 되기 때문에 ‘표적’(sign)이라고 불린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자신이 보고 전한 바를 순교의 피로 확증하였다. 그러므로 복음의 내용인 기독교 교리들은 확실하고 불변적이다.
성경은 복음 진리의 확실성과 불변성을 분명하게 선언한다. 갈라디아서 1:8-9,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기독교 복음은 명확하고 고정된 내용이며 아무도 거기에 무엇을 더하거나 뺄 수 없다. 교회의 의무는 단지 성경에 밝히 계시된 그 내용을 바르게 파악하고 후시대에 전하는 것뿐이다.
자유주의 신학의 본질
그러면, 자유주의 신학의 본질은 무엇인가? 자유주의 신학은 결국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않는 사상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초자연적 계시들을 인정치 않고 성경에 기록된 모든 기적을 인정치 않는다.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에 계시되고 증거된 모든 교리들을 인정치 않는다. 한마디로,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을 인간이 쓴 오류투성이의 책, 신화적인 책으로 보는 것이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자 중 비교적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칼 바르트도 아담의 창조와 타락의 이야기가 그 자체로는 거짓이라고 단언하였고6) 또 “아브라함과 모세와 같은 인물들이 후대의 신화 제작의 산물들이든지 아니든지 무슨 문제가 되는가[!]”라고 담대히 말하였다.7) 또 그는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단언하였다.8)
C. H. 다드는 성경의 외적 권위는 절대적이지 않으며9) 하나님의 계시 진리는 객관적 형태로 주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했고10) 심지어 성경의 무오성을 주장하는 것은 종교와 공중 도덕에 위험물이라고까지 말하였다.11)
성경 자체의 증언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은 성경 자체의 증언들과 정반대이다.
시편 19:7-8,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본문은 성경 말씀의 완전하고 확실함을 증거한다.
누가복음 1:1-4,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혹은 확실하게 믿어진 일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certainty)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성경은 확실하게 이루어진 내용들이며 목격자들의 증언이며 우리의 믿음의 확실한 근거이다.
요한복음 20:30-3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sign)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21:24, “이 일[요한복음의 내용들]을 증거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
사도행전 2: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들은 은밀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공개적으로 이루어졌었다.
히브리서 2:3-4,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기독교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과 하나님께서 주신 초자연적 기적들로 확증되었다.
마태복음 5:18,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예수께서는 친히 성경의 축자적(逐字的, 글자의) 영감을 증거하셨다.
요한복음 10:35, “성경은 폐할 수 없나니.” 예수께서는 친히 성경의 신적, 절대적 권위를 선언하셨다.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하나님의 감동으로’라는 원어는 ‘하나님께서 숨을 내쉼으로’라는 뜻이다. 이 말은 성경의 영감뿐 아니라, 성경의 신적 기원과 권위도 증거한다.
데살로니가후서 2:15,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遺傳)[전해 들은 바]을 지키라.” 이 말씀은 사도들의 권위, 즉 신약성경의 신적 권위를 증거한다.
요한계시록 22:18-19,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주께서는 신약 계시를 가감할 수 없는 신적 권위로 인치셨다.
성경이 믿을 만한 책이며 우리의 신앙생활의 표준인 신적 권위의 말씀이라는 것은 모든 개신교회들, 개혁교회와 루터교회와 영국교회가 공통적으로 믿는 기본적 신념이다. 심지어 로마 천주교회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 바른 성경관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성경이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라고 믿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이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가 포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은 사상이다. 그것은 예수님 당시에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믿지 않았던 사두개파적 불신앙과 같다(마 22:29). 그것은 한마디로 이단이다. 우리는 성경을 믿는 자가 되어야 하고 이단을 배격해야 한다.
2. 배교의 시대
자유주의 신학은 20세기 초만 해도 작은 세력이었으나 20세기 말에는 큰 세력이 되었다.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의 문제는 단지 몇몇 신학자의 문제가 아니고 대교단들의 목사들 다수의 문제이다. 유럽의 교회들은 일찍이 배교적이었고 미국의 교회들도 1920년대 이후 점점 포용적이게 되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자유주의를 포용하는 넓어진 교회들이며, 성경 말씀을 믿고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하는 보수적 교회들은 수적으로 소수인 것 같다.
100년 전에 주로 미국 교회의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된 한국 교회는 세계 교회들의 영향을 받아 왔고 지금도 받고 있지만, 특히 미국 교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면 자유주의 신학은 오늘날 미국 교회들과 한국 교회들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신학자들
자유주의 신학은 유명한 신학자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외의 여러 신학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1985년, 미국에서 약 125명의 개신교와 천주교 신학자들이 ‘예수 세미나’를 시작하였다. 1994년 초까지 이 세미나의 대략적 결론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한다. (1) 예수의 말들의 20%만 실제로 그의 말로 생각되며, 요한복음에서는 오직 한 구절만 그에게 돌려진다. (2) 예수는 자신을 메시야라고 공적으로 주장하지 않았다. (3)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과 매우 가깝다고 느꼈지만, 자신을 신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4) 예수는 결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 (5) 예수는 자신의 재림(再臨)을 약속하지 않았다.12)
1999년, 예수 세미나의 주도적 인물인 로버트 펑크는 미국의 한 연합그리스도교회의 강연에서 ‘예수 세미나’의 결론인 21개의 명제들을 배부하였는데 그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1) 물질 세계 바깥에는 신(神)이 존재하지 않는다. (2) 다윈의 사상은 창조의 교리를 영원히 말살시켰다. (3) 신적인 기적들은 하나님의 공의와 완전에 대한 모욕이다. (4) 저 밖에 있는 신에게 말해지는 기도는 무의미하다. 기도는 명상이다. (5) 예수는 신적 존재가 아니다. (6) 예수를 구속자(救贖者)라고 하는 것은 낡아빠진 생각이다. (7) 예수가 처녀에게서 나셨다는 것은 현대 지성에 대한 모독이며 여성에 대한 모욕이다. (8) 속죄의 교리는 이성적이지 못하고(subrational) 또한 윤리적이지 못하다(sub-ethical). (9) 예수는 부활하지 않았다. (10) 모든 계시적 요소들은 기독교 주제에서 삭제되어야 한다. (11) 예수 자신은 기독교 신앙의 적절한 대상이 아니다. 예수의 비전이 그를 대치해야 한다. (12) 성경은 객관적 행동기준을 담고 있지 않다.13) 이러한 예수 세미나의 결론들은 배교적이며 이단적이다.
우리 나라의 목원대 은퇴교수인 송기득(조직신학) 교수는 기독교 사상 2001년 1월호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성경 교리들, 즉 성육신(成肉身)과 신인양성(神人兩性)과 대속의 진리들은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고 심지어 부정할 수 있는 주제로 보았다. 또 그는 한신대 대학원장이었던 안병무 박사가 위의 교리들을 명백히 부정하였고 예수를 민중해방운동을 펼치다가 실패한 사람이며 단지 그가 민중해방운동의 길을 열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고 말했다.14)
신학생들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은 신학자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또한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76년, 노엘 홀리필드(Noel Hollyfield)는 미국 남침례교 신학교 신학석사 논문에서 남침례교 신학생들의 신앙 상태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15)
M.Div.
1학년
M.Div.
3학년
Th.M.
&Ph.D.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없이 믿는다.
74%
65%
63%
마귀의 존재는 확실하다.
66%
42%
37%
기적들이 성경의 증거대로 실제로 일어났음을 믿는다.
61%
40%
37%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은 확실하다.
66%
33%
32%
예수께서 물 위로 걸으셨음은 확실하다.
59%
44%
22%
예수께서 신적인 하나님 아들이심을 의심치 않는다.
87%
63%
63%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은 구원에 절대필수적이다.
85%
60%
59%
성경을 하나님의 진리로 믿는 것은 구원에 절대필수적이다.
42%
33%
21%
죽음 너머의 삶이 있음은 확실하다.
89%
67%
53%
예수께서 어느 날 실제로 지구로 돌아오실 것을 확신한다.
79%
56%
53%
이 설문조사는 비교적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남침례교회의 학생들에게까지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이 미쳤음을 보인다.
헬라정교회 대주교 드미트리 로이스터는 연합감리교 소속 퍼킨즈 신학교에서 헬라어를 가르칠 때의 일을 회고하며 말하기를, “나는 학생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믿는지 물었다. 내가 말뜻을 정의하여 예수께서 단지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선생이 아니고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임을 분명히 하자, 그 반의 학생들 중 한 명도 그것에 동의하지 않으려 하였다”고 했다.16)
교회 지도자들
자유주의 신학은 또 교회의 지도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몇몇 인물들을 예로 들어보자. 미국 감독교회(Episcopal Church)에 소속한 죤 스퐁(John Spong) 감독은 인격적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으며 기도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은 ‘죽었다’고 말하였다.17) 1999년 4월 26일자 뉴 아메리칸지에 의하면, 그의 판단에, 기독교가 생존하려면 기독교는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성육신(成肉身), 처녀 탄생, 부활, 승천, 및 기적들과 같은 교리들을 치워버려야 한다. 또 스퐁은 “나는 자기 아들의 희생을 요구한 신을 숭배하기보다 증오하는 편을 택할 것이다”라고 말했고18) 모든 도덕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상대적이라고 단언했다.19) 그는 6백명 이상의 감리교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성경에서 읽는 모든 내용을 다 믿지 말라고 강조했다.20) 감독교회에서 감독은 목사보다 높은 고위 성직자인데, 미국 감독교회의 감독인 자의 사상이 이렇게 자유주의인 것이다!
한국 교회 지도자들의 예를 들어보자. 기독교대한감리회에 속한 박대선 감독은 1974년 6월 14일 고(故) 홍종철 특별보좌관 장례식 설교에서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에 에녹이나 엘리야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육신으로 죽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였고, 성경이 그들을 죽지 않고 승천했다고 표현한 것은 그들의 이미지가 그들의 제자들과 가족들에게 생생하게 심어졌다는 뜻이라고 하였다.21) 이것은 성경의 증언에 대한 불신앙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조향록 목사는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그 사건 자체를 사건적으로 입증하든지 부정하든지 하는 논란은 큰 의미를 거두지 못한다,” “그리스도 부활 사건은 신앙의 창문을 열고야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고22) 허혁 목사는 “저는 성서에 부활의 사실을 가지고 있다고 하기보다는 부활의 보도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 . . 이것을 학자들은 신앙의 표현이라고 하더군요. . . . 그것은 신앙을 사건으로 보는 입장이지요. . . . 저는 내가 믿는다는 것을 하나의 사건으로 보는 것이 좋지 않느냐 하는 생각입니다”라고 말하였다.23)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그 사건 자체가 중요하다. 부활 사건을 말하지 않고 단지 부활 신앙만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이다.
역사적 대교단들
자유주의 신학은 미국의 역사적 대교단들 속에서도 볼 수 있다. 미국의 장로교회의 배교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 1923년 12월 26일, 미 북장로교회에 속한 150명의 목사들이 뉴욕주 어번시에 모여 한 문서를 발표하였다. 후에 어번 선언서(Auburn Affirmation)라고 불리운 이 문서는 곧 1,293명의 목사들의 서명을 받았다. 그 내용은, 총회가 1910년에 선언하고 1916년, 1923년에 재확인한 내용을 반대하는 것이었다. 총회가 1910년에 선언한 내용이란, 성경의 무오성(無誤性),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 그의 대속(代贖), 그의 육체적 부활, 그의 기적들의 사실성 등의 다섯 가지 교리가 성경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본질적이라는 것이다. 어번 선언서는 이 교리들을 ‘성경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본질적이지 않고 단지 이론들일 뿐’이라고 말하였고, 특히 성경 무오의 교리는 성경 숭배에 빠지기 쉬운 교리라고 하였다. 이 어번 선언서는 1924년 총회에서 채택되었다.
1967년, 미연합장로교회(후에, 미합중국 장로교회가 됨)는 새로운 신앙고백서를 채택하였는데, 그 신앙고백서는 “하나님의 유일 충족한 계시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다. . . .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 말씀으로 수락되고 순종된다. . . . 성경은 성령의 인도 아래서 주어진 것이지만 역시 사람들의 말이며, 그것들이 기록된 장소와 시대의 언어, 사상 형식, 문학 형태들의 지배를 받는다. 성경은 그 당시에 유행하던 인생관, 역사관, 우주관을 반영한다”고 진술하였다(1. 3. 2).24) 그것은 성경의 초시간적 진리성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사상이다.
미 연합장로교회는 목사의 임직 서약도 변경하였다. 변경된 임직서약에서는, 성경이 더 이상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으로 선언되지 않고, 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 지도 아래 행한다고 선언된다. 1965년 5월 17일자 자유주의 잡지 크리스챠니티 앤드 크라이시스(Christianity and Crisis)는 말하기를, “새 신앙고백서는 1924년 어번 선언서의 교리적 노선으로 내려간다. 40년 전에 겨우 허용되었던 소수파 견해가 이제는 교회의 공식적 교리로 제안되고 있다”고 하였다.25)
1981년, 미연합장로교회 총회재판국은, 그 총회 내에서 사역하던 연합그리스도교회 소속 맨스필드 케이스맨(Mansfield M. Kaseman) 목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무죄성(無罪性), 대리적 속죄, 육체 부활을 부정함에도 불구하고, 지노회가 케이스맨의 견해를 새 임직 서약에 의해 허용된 ‘용납할 만한 해석의 범위 안에’ 있는 것으로 간주함에 있어서 옳았다고 판결하였다.26) 미연합장로교회는 이단을 제거할 뜻이 없음을 명백히 드러낸 것이다. 이것이 교회의 배교가 아니고 무엇인가?
미연합감리교회(UMC)는 일찍부터 자유주의적이었다. 그 교단의 자유주의적 문제점들은 수없이 많이 열거될 수 있겠지만, 최근의 한 예를 보자. 미국 시카고의 연합감리교회 감독 스프라그(C. Joseph Sprague)는 2002년 덴버 신학교 강연에서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의 신화는 역사적 사실로 의도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의 물질적 몸의 회생을 내포했다고 믿지 않는다”고 말함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그러나 그에게 그의 견해를 취소하든지 그의 직책을 사임하라고 요청하는 그 교단 내의 28명의 보수주의자들의 고소를 다룬 위원회는 그 고소가 잘못이며 그는 이단이 아니라고 판결하였다.27) 그것은 그 교단이 배교적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영국의 런던 주말 텔레비젼의 ‘크리도우(Credo)’ 프로그램은 1984년 영국교회 39명의 주교들 중 31명에게 질문한 결과를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1)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하나님인 동시에 사람으로 간주해야 한다(11명),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하나님의 최고 대리자로 생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19명). (2) 신약성경의 기적들은 후대의 삽입이다(15명). (3) 예수의 부활은 그의 제자들에게 “그가 그들 가운데 살아계시다”고 확신시켰던 그의 죽음 후의 ‘일련의 경험들’이다(9명).28) 이것은 영국교회의 배교적 상황을 보인다.
캐나다 연합교회(UCC)는 일찍부터 자유주의적이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자유주의 신학 사상은 캐나다 연합교회가 파송한 서고도(William Scott) 선교사 같은 이의 영향이 컸다.29) 그러나 최근의 한 예를 보자. 캐나다 연합교회의 총회장 빌 핍스 목사는 1997년 10월 24일자 오타와 시티즌지와의 대담에서 “나는 예수께서 하나님이셨다고 믿지 않는다,” “나는 예수께서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시라고 믿지 않는다. 나는 그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과학적 사실로 믿지 않는다”라고 하였다.30)
우리나라의 감신대학의 학장이었던 변선환과 조직신학 교수이었던 홍정수는 기독교대한감리회 교단의 좌경된 모습의 생생한 증거이다. 변선환은 기독교의 유일성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의 길 되심을 부정했다. 그는 기독교 사상에 기고한 글에서 “그리스도만이 보편적으로 유일한 구속자이신 것이 아니라”고 하였고 “저들의 종교[타종교들]도 그들 스스로의 구원의 길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299호, 155쪽). 또 그는 “그리스도는 힌두교 안에 있다”고 주장했다(같은 책, 156쪽). 그는 크리스챤 신문 1990년 12월 8일자에 기고한 글에서도 “기독교 밖에 구원이 없다는 교리는 신학적인 토리미의 천동설에 지나지 않는다,” “종교의 우주는 기독교도 다른 종교도 아니고 신을 중심하여서 돌고 있다는 것을 기독교는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또 그는 “예수를 절대화, 우상화시키며, 다른 종교적 인물을 능가하는 일종의 제의의 인물로 보려는 기독교 도그마에서 벗어나 . . . 신 중심주의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31) 그러나 이런 사상은 명백히 종교다원주의의 이단이다.
홍정수는 첫째로 신의 존재를 부정했다. 그는 “만일 신은 계신가 하고 누가 묻는다면 ‘신은 없다’고 잘라 말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베짜는 하나님, 52, 56쪽). 둘째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하나님의 아들의 대속적 죽음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한 정기 간행물에 기고한 글에서 “[예수의 십자가는] 신의 아들의 죽음이 아니다”라고 하였고 또 “예수의 죽음이 우리를 속량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이 우리를 속량하는 것이다”라고 했다(한 몸, 7권, 16, 17쪽). 또 그는 그의 저서에서도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 아니라 특정한 메세지를 전하고 있던 한 설교자의 죽음을 증언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베짜는 하나님, 190쪽). 셋째로, 그는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였다. 그는 크리스챤 신문 1991년 3월 30일자에 기고한 글에서 “부활 신앙은 이교도들의 어리석은 욕망에 불과하다”고 하였고, 같은 신문 6월 8일자의 글에서는 “[예수의 부활 사건은] 빈 무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한 잡지에서 “나는 단연코 육체의 부활을 부정한다”고 말했다(우먼 센스, 1991. 12월호).
1992년 5월 7일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 연회 재판위원회는 이들에게 출교를 선고했지만, 어떻게 이런 신학자들이 감신대학의 학장이 되고 조직신학 교수가 될 수 있었단 말인가. 또 이런 자들에 대해 감신대학의 교수들 중에는 비평하는 자들이 없는 것 같다. 한국의 감리교회는 신학적으로 너무 넓어졌고 변질되었다고 보인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통합)는 신학적으로 자유주의화 되어 있다. 그 교단의 신학교인 장로회신학대학이 신정통주의적인 입장을 취해왔다는 것은 한국교계에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신정통주의’란 칼 바르트, C. H. 다드, 라인홀드 니이버 등의 사상에서 보듯이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의 한 파이다. 장로회신학대학은 오래 전부터 성경의 무오성(無誤性)과 모세오경의 모세 저작성을 부정하고 이사야 40장 이하를 이사야가 아닌 후대의 어떤 익명의 저자가 썼다는 사상을 용납한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통합측 신학교의 분위기는 합동측 신학교와 다르다고 알려져 왔다.
예장합동측 기관지 기독신보의 주필이었던 채기은 목사는 “필자가 진단하기에는 . . . 통합측은 반반으로 나뉘어 자유주의 신학 사상을 가진 이들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기장측은 절대 다수가 자유주의 신학에 근거하고 있다고 본다”고 증거하였다.32) 1984년 이동렬은 “한국교회와 신정통주의”라는 장로회신학대학 석사학위 논문의 결론에서 말하기를, “우리 입장은 신정통주의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 멈추지 않고 계속 표류 중이다”라고 했다.33) 1994년 통합측 총회는 701대 612로 여성안수안을 통과시켰다. 그 총회는 사도적 교훈을 부정하고 성경이 명백히 금하는 여자 목사를 세우는 오류를 택한 것이다. 장로회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김명용은 1997년에 쓴 열린 신학 바른 교회론이라는 그의 책에서 성경의 축자영감설과 성경무오설을 옛시대의 신앙 사상이라고 말하며 오늘날의 개혁신학은 바르트와 브룬너와 라인홀드 니이버 등의 차원높은 신학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34)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교단은 자유주의적이다. 물론 그 교단에도 성경을 믿는 많은 목사들과 평신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단의 목사 양성원인 장로회신학대학이 자유주의적이며 그 교단의 지도자들의 다수가 자유주의적이라면, 그 교단은 자유주의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예장통합측은 건전한 교단이 아니다.
전반적 상황
현대 교회의 전반적 상황을 증거하는 두 가지 자료가 있다. 첫째는 제프리 해든(Jeffrey Hadden)의 설문조사이다. 1967년, 제프리 해든은 미국의 성직자 10,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고 거기에 응답한 7,441명의 응답 결과를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35)
(1) ‘귀하는 예수님의 처녀 탄생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감리교회(UMC) 성직자들의 60%는 ‘아니오’라고 대답했고, 감독교회(ECA) 성직자들의 44%, 연합장로교회(UPC) 성직자들의 49%, 침례교회(ABC) 성직자들의 34%도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2) ‘귀하는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을 사실로 받아들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감리교회 성직자들의 51%는 ‘아니오’라고 대답했고, 감독교회 성직자들의 30%, 연합 장로교회 성직자들의 35%, 미국 침례교회 성직자들의 33%도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3) ‘귀하는 오늘 세계에 악한 귀신들이 존재한다고 믿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감리교회 성직자들의 62%는 ‘아니오’라고 대답했고, 감독교회 성직자들의 37%, 연합 장로교회 성직자들의 47%, 침례교회 성직자들의 33%도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4) ‘귀하는 성경이 신앙과 역사와 세속문제들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감된 무오(無誤)한 말씀임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감리교회 성직자들의 87%는 ‘아니오’라고 대답했고, 감독교회 성직자들의 95%, 연합 장로교회 성직자들의 82%, 미국 침례교회 성직자들의 67%, 미국 루터교회 성직자들의 77%도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둘째는 바나 연구회(Barna Research Group)의 설문조사이다. 바나 연구회는 2004년 미국 개신교회 목사들의 49%가 다음과 같은 성경의 핵심적 신념들을 거부한다고 보고했다: (1) 성경에 기초한 절대적인 도덕적 진리가 있다, (2) 성경의 교훈은 정확하다, (3) 예수는 죄가 없으셨다, (4) 사탄은 실제로 존재한다. 그것들을 믿는 목사들의 비율은 감리교회가 27%로 가장 낮았고 남침례교회가 71%로 가장 높았다.36) 이 설문조사들은 미국 교회들이 자유주의 신학의 큰 영향을 받았음을 증거한다. 이것이 배교(背敎)가 아니고 무엇인가?
주께서는 말세에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리라고 예언하셨다(마 24:11, 24). 바울은 주의 재림 직전에 먼저 배교, 즉 신앙의 변절이 있을 것을 예언했다(살후 2:3). 특히 신학자들과 목사들과 역사적 대교단들의 배교는 참으로 심각한 일이다. 자유주의는 누룩같이 온 교회에 많이 퍼졌다. 이 누룩은 제거되지 않을 것이다. 말세에 배교가 있으리라는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고 있고 또 다 성취될 것이다.
단지,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이 깨어 현대교회의 배교를 직시하고 책망하고 구별하고 분리하여 참 교회들을 세우고 돌보는 것이 필요하다. 주의 참된 종들은 배교와 타협과 혼란의 시대 풍조를 분별하고 옛길, 바른 길을 붙들고 성경의 모든 말씀에만 순종하고 진실한 성도들과 교제하면서 하나님 앞에 충성해야 할 것이다.
3. 자유주의 신학은 이단이다 (1)
자유주의 신학은 이단이다. 왜냐하면 한마디로 말해 그것은 성경의 핵심적 교리들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대표적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책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과 처녀 탄생을 부정한다
자유주의 신학은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 즉 ‘말씀이 육신이 되셨음’을 부정한다. 라인홀드 니이버는 비극을 넘어서라는 그의 책에서 “영원이 시간 속에 들어온다는 개념은 지적으로 불합리하다. . . .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진리는 진리가 보통 판단되는 모든 규범들을 어긴다”고 말했다.37) 또 폴 틸리히는 조직신학이라는 그의 책에서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주장은 역설적(逆說的)이 아니라 부조리한(non-sensical) 말이다”라고 했다.38)
그러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그리스도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이다.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정함은 바로 그를 부정하는 적그리스도적 사상이다. 요한일서 4:2-3,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는 영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요한이서 7, “이는 미혹하는[속이는] 자들이 많이 세상에 나왔음이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들이라. 이것이 미혹하는[속이는] 자요 적그리스도니라.”
그리스도의 성육신 진리와 밀접한 또하나의 진리는 처녀 탄생의 진리이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처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음을 증거한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은 그것을 부정한다. 칼 바르트는 교회교의학에서 “그의 모친이 젊은 부인으로 불리우는가 아니면 처녀로 불리우는가 하는 옛 논쟁은 그 진정한 의미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39) 라인홀드 니이버는 비극을 넘어서라는 책에서 “사람들은 처녀 탄생의 원시적 신화에 속임을 당하고, 바로 역사 너머를 가리키기 때문에 의미 있는 그것을 하나의 순수한 역사적 사실로 이해하려고 할 것이다”라고 말했고,40) 자아(自我)와 역사의 드라마라는 다른 책에서도 “‘처녀 탄생’과 같은 기적들은 후대에 삽입된 생각이다”라고 말했다.41)
그러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은 복음서에 밝히 증거된 내용이다. 마태복음은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으며, 남편 요셉이 마리아에게 잉태된 자가 성령으로 된 것이라는 천사의 말을 들었으며, 요셉이 마리아가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않았다고 증거했다(마 1:18, 20, 25). 누가복음은 처녀 마리아가 아들을 잉태하여 낳으리라고 전언(傳言)한 천사에게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반문했고 천사는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고 말했다고 증거했다(눅 1:34-35).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은 초자연적 사건에 대한 믿음의 시금석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자는 처녀 탄생을 믿을 수 있다. 또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은 그의 신성(神性)과 연관되어 있다. 누가복음 1:35,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자유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초자연적 능력을 믿지 않는 불신앙이다. 그것은 예수님 당시에 부활이나 천사나 영을 믿지 않던 사두개인들의 사상이다. 주께서는 그들에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마 22:29).
그리스도의 기적들을 부정한다
자유주의 신학은 또한 그리스도의 기적들을 부정한다. 자유주의 신학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초자연적 계시나 기적을 의심하는 성경의 비평적 연구에서 시작되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루돌프 불트만은 요한복음이라는 책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는] 그 이야기가 이방의 전설에서 취해져 예수께 돌려졌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42) 폴 틸리히는 그의 조직신학에서 그리스도의 행적 전반에 대해 말하기를, “모든 역사적 지식과 같이, 이 사람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단편적이고 가설적이다. 역사적 연구는 이 지식을 방법론적 회의주의에 굴복시키고 본질적인 부분들뿐 아니라 각개의 부분들에서도 계속적인 변화에 굴복시킨다”고 했다.43)
요아킴 예레미아스는 신약신학이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또 우리는 특히 헬라주의적 환경으로부터 당시 유행하는 작품에서, 귀신의 추방, 병 고침, 죽은 자들을 일으킴, 풍랑을 잔잔케 함, 포도주 기적의 이야기들을 발견한다. 이 기적 이야기들의 어떤 것들은 복음서들의 그것들과 매우 밀접한 접촉을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기독교적 전통이 그 주변 환경에서 빌려왔으며 적어도 그것에서 어떤 개별적 주제들을 이어받았다는 결론을 거의 피할 수 없다”고 했다.44)
그러나 예수님의 기적들은 모든 사람 앞에 드러나게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사도행전 2: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또 제자들은 주께서 행하신 기적들의 목격자들이요 증인들이었다. 그들은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고 말했다(행 10:39).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은 진실한 증인들에 의해 증거된 내용들이다(요 20:30-31; 21:2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에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마 22:29)라고 하신 말씀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 합당하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부정한다
또 자유주의 신학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부정한다. C. H. 다드는 로마서라는 책에서 “유화(宥和, propitiation)라는 번역은, 진노하신 하나님을 가라앉힘을 암시하기 때문에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으며, 비록 이것이 이교적(異敎的) 용법에는 맞을지라도 성경적 용법에는 생소하다”라고 말했다.45) 라인홀드 니이버는 비극을 넘어서라는 책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 위에서 속죄의 죽음을 죽으셨다는 교리는 많은 신학적 오류들로 인도하는데 그 중에는 인간의 도덕 의식을 모욕하는 대리적 속죄의 이론들이 포함된다”고 말했다.46) 루돌프 불트만은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셨다고 할 때 그의 인격은 신화(神話)의 빛으로 관찰되며, 이것은 그가 형이상학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 즉 우리의 구속(救贖)을 위해 사람이 되셨고 스스로 고난, 그것도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위대한 선재(先在)하신 천적(天的) 존재로 이해되는 헬라주의 기독교 공동체들에서는 한층 더 분명하게 된다. . . . 특히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내려오신 선재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개념은 영지주의적 구속 교리의 일부분이며, 아무도 이 교리를 신화적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47)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많은 사람을 대속(代贖)하기 위한 죽음이었다. 속죄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다. 성경적 속죄 개념은 속죄제물이 택함받은 자들의 죄책과 형벌을 담당함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시고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힌다는 것이다. 많은 성경 구절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분명하게 증거한다.
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로마서 3:24-25,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힐라스테리온, 유화제물)로 세우셨으니.” 고린도후서 5:14, 21,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義)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히브리서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히브리서 10:10, 12, 14,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들에게서 유전된 망령된 행실로부터 구속(救贖)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요한계시록 5:9,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우리를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한다
자유주의 신학은 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한다. 칼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말이라는 책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그의 재림은 동일한 것인데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고 말했다.48) 또 그는 로마서라는 책에서, “부활은 역사 안에서 일어난 어떤 일(an occurrence)이다. . . . [그러나] 부활이 역사상의 사건(an event in history)은 아니다”라고 말했다.49) 또 그는 교회교의학에서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역사적으로 발생하였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런 증거도 없고 어떤 증거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 명백하다,” “실제로 성경 역사에 결정적 요소들인 창조 이야기와 및 다른 많은 이야기들과 공통적으로, 부활의 역사는 현대 학자들의 사고형식들과 용어로 신화(saga)나 전설로 간주되고 묘사되어야 한다는 것을 대항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확실히 현대적 의미에서 역사로 생각될 수 있지만, 부활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50)
루돌프 불트만은 그의 신약신학에서 “바울이 여전히 그것에 관해 아무것도 알고 있지 못한 빈 무덤의 이야기들은 전설이다”라고 말했고,51) 또 다른 토론에서 말하기를, “부활절 사건이 어떤 의미로든지 십자가 사건에 첨가된 역사적 사건이라면, 그것은 부활하신 주에 대한 믿음의 발생 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들의 설교를 이끌어낸 것은 바로 이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활 자체는 지나간 역사의 사건이 아니다”라고 했다.52)
폴 틸리히는 그의 조직신학에서 말하기를, “십자가의 이야기들은 아마 역사적 관찰의 충분한 빛 안에서 발생했던 한 사건을 가리킬 것이지만, 부활의 이야기들은 그 사건 위에 깊은 신비의 베일을 덮는다,” “역사 연구는, 그것의 주위에 있는 전설적이며 신화적인 자료에 근거하여 이러한 사실적 요소를 찾아내려고 함에 있어서 정당하다. 그러나 역사적 연구는 결코 개연적 대답 이상의 것을 줄 수 없다”고 했다.53)
판넨베르크는 예수: 신인(神人)이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복음서들에 보도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나타나심들을 바울은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것들은 강하게 전설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속에서 그 자체의 역사적인 알맹이를 거의 찾을 수 없다”고 했다.54)
그러나 이런 사상은 신약성경의 명백한 증거를 부정하는 이단이다. 사복음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충분하게 증거한다. 사도행전은 예수께서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40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고 기록한다(행 1:3). 사도 바울은 예수께서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고 썼고(롬 1:4),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썼다(롬 10:9). 또 그는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복음의 핵심적 내용이며(고전 15:3-4) 장차 죽은 자들의 근거임을 강조하였다(고전 15:12-13, 16, 19).
덧붙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의 승천과 재림과 관련된다. 만일 우리가 그의 부활을 부정한다면, 우리는 그의 승천이나 재림도 부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것은 매우 기본적 신앙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자가 구원을 받으리라고 생각할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자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 곧 그의 신성(神性)과, 처녀 탄생을 부정하고 그의 기적들을 부정하고 그의 속죄 사역을 부정하고 그의 육체적 부활을 부정한다.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한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말할지라도 그것은 성경에 증거된 역사적 예수가 아니고 다른 예수에 불과하다(고후 11:4). 그러므로 자유주의 신학은 확실히 이단이다.
4. 자유주의 신학은 이단이다 (2)
자유주의 신학은 이단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경의 핵심적 교리들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표적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책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앞장에서 우리는 자유주의 신학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 곧 신성(神性)과 처녀 탄생을 부정하고 그의 기적들을 부정하고 그의 속죄 사역을 부정하고 그의 육체적 부활을 부정하는 것을 보았다.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한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말할지라도 그 예수는 성경에 증거된 역사적 예수가 아니고 다른 예수에 불과하다(고후 11:4). 그러므로 자유주의 신학은 확실히 이단이다.
이제 우리는 추가적으로, 자유주의 신학이 성경의 핵심적 진리들을 부정한다는 사실을 몇 가지 더 살펴보자.
사람의 영혼 불멸을 부정한다
또 자유주의 신학은 사람의 영혼이 불멸하다는 성경에 전제된 기본적 진리를 부정한다. 예를 들어, 라인홀드 니이버는 비극을 넘어서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영혼 불멸이라는 개념이 몸의 부활보다 더 믿을 만하다는 선입견은 단지 교회 안에 있는 헬라 사상의 유산에 불과하다”고 했다.55) 폴 틸리히도 그의 조직신학에서 말하기를, “인간의 자연적 특질로서의 불멸성은, 비록 그것이 플라톤의 교리일 수는 있어도, 기독교적 교리는 아니다”라고 했다.56) 또 오스카 쿨만도 영혼 불멸인가 죽은 자의 부활인가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 개념[영혼의 불멸]은 기독교에 대한 가장 큰 오해들 중의 하나이다”라고 했다.57)
그러나 성경은 사람의 영혼의 불멸을 밝히 증거한다. 영혼 불멸에 대한 성경적 증거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사람의 죽음에 대한 묘사이다. 성경은 사람의 죽음을 영혼이 몸을 떠나 하나님께로 가는 것으로 묘사한다(전 3:20-21; 12:7). 또 성경은 죽은 자의 영혼을 “조상들에게로 돌아갔다”고 묘사한다(창 15:15; 25:8). 이것은 죽음 후 영혼의 계속적 존재를 증거한다.
둘째, 사람의 죽은 후 상태에 관한 말씀이다. 시편 73:24은 성도가 죽은 후 영광 중에 영접되리라고 말한다. 주께서는 회개한 강도가 죽은 후 함께 낙원에 들어갈 것을 말씀하셨다(눅 23:43). 특히, 누가복음 16:19-31의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이 문제에 대해 잘 증거한다. 거지 나사로는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었는데 그는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았다(22-23절).
셋째, 부활에 관한 말씀이다. 성경은 죽은 자의 부활을 증거한다.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믿는다(행 24:15). 죽은 자의 부활은 사람의 영혼의 불멸을 전제한다.
넷째, 심판에 관한 말씀이다. 악인에 대한 심판은 영혼의 불멸을 전제한다. 마태복음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영혼 불멸은 성경적 진리이다.
그리스도의 재림(再臨)을 부정한다
또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칼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말이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그의 재림은 동일한 것인데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라고 했다.58) 라인홀드 니이버는 비극을 넘어서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기독교 교리 중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보다 더 속임과 착각으로 인도한 교리는 없다”고 했다.59) 폴 틸리히도 그의 조직신학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하나의 상징으로 보았다.60) 상징은 신화와 비슷한 개념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경의 근본적 교리이다. 주 예수께서는 친히 자신의 재림에 대해 밝히 증거하셨다. 마태복음 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사도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명백히 증거하였고, 특히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에서 그는 매 장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언급하였다. 데살로니가전서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데살로니가후서 1:7-8,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사도 베드로는 말세에 주의 재림을 부정하는 거짓 교사들이 나타날 것을 경고하였다. 베드로후서 3:3-4,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사도 요한은 주 예수의 재림과 그 전에 있을 사건들을 예언한 책을 저술하였다. 요한계시록 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또 그는 자신의 재림을 증거하신 주 예수의 말씀에 간절히 화답하는 말로 그 책을 마쳤다. 요한계시록 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사도신경에 고백된 대로 모든 정통적 기독교회가 고백하는 성경적 진리요 복된 소망이다. 디도서 2: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정하는 것은 명백히 이단이다.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한다
또 자유주의 신학은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한다. 라인홀드 니이버는 비극을 넘어서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몸의 부활이라는 개념은 문자적으로 참될 수 없다”고 했다.61) 판넨베르크는 사도신경이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이런 식으로 죽은 자의 부활 개념의 긍정적 타당성을 인식하고 주장함은 우리가 그것의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성격에 관해 분명히 이해한다는 조건에서 가능할 뿐이다”라고 했다.62)
그러나 죽은 자의 부활은 성경이 밝히 가르치는 진리이다. 우리는 사도신경의 고백대로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는다. 의인들은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것이며 악인들은 부활하여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분명히 증거하셨다. 요한복음 5:28-29,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그는 또 부활을 부정하는 사두개인들에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고 책망하셨다(마 22:29).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의 부활을 믿었다. 사도행전 24:15,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그는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하여 죽은 성도들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논증하였다. 고린도전서 15:12-13, 51-5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마지막 심판과 지옥을 부정한다
또 자유주의 신학은 마지막 심판과 지옥을 부정한다. 라인홀드 니이버는 인간의 본질과 운명이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현대 기독교 안에 있는 감상적인 도덕 의식이 아마 심판 개념의 중요성을 일소했을 것이다”라고 했다.63) 폴 틸리히는 그의 조직신학에서 말하기를, “사람들은 ‘영원한 정죄’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신학적으로 유지될 수 없는 단어들의 결합이다. . . . 그러므로 ‘영원한 정죄’라는 말은 신학 용어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 . . 사람은 존재의 기반으로부터 결코 잘리워버리지 않으며, 심지어 정죄의 상태에서도 그러하다,”64) “[천국과 지옥은] 상징들이지 장소들의 묘사가 아니다”라고 했다.65)
그러나 마지막 심판의 진리는 성경의 기본 진리이다. 성경은 마지막 심판에 대해 밝히 증거한다. 주께서는 마지막 심판에 대해 밝히 증거하셨다. 마태복음 13:39-40,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해설하면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증거하였다. 로마서 2:5-6, 16,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또 히브리서 저자는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이 그리스도의 도(道)의 초보에 속하며 그런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가라고 교훈하였다(히 6:1-3).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20:11-15에서 마지막 대심판에 대해 증거하였다.
또 지옥 교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온 진리이다. 마태복음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특히 마가복음 9:43-48에는 주께서 지옥에 대해 증거하신 내용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43절). 그 외에도 그는 마태복음 25:41, 46에서 ‘영영한 불’ ‘영벌’에 대해 증거하셨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1:9에서 ‘영원한 멸망의 형벌’에 대해 증거하였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21:8에서 악인들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할 것을 증거하였다.
이와 같이, 마지막 심판과 지옥에 대한 진리는 두려운 진리이지만, 분명히 성경적 진리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로 인쳐진 진리이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주께서 말씀하신 이 진리들을 부정하거나 변경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진리를 부정하거나 변경하는 것은 분명히 이단이다.
결론적으로,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과 처녀 탄생, 그의 기적들, 그의 속죄 사역, 그의 부활, 사람의 영혼의 불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죽은 자들의 부활, 마지막 심판과 지옥 등 기독교의 핵심적 진리들을 부정한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신학은 확실히 이단이다. 기독교의 핵심적 진리들을 부정하는 사상은 확실히 이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주의 신학이 이단임을 바르게 인식하고 그 사상을 용납하지 말고 단호히 배격해야 하고, 그런 사상을 가진 자들과 교제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분별해야 하고 성경의 교훈대로 교제를 조심해야 한다. 디도서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요한이서 10-11,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
출처:옛신앙
자료출처 http://blog.daum.net/kkho1105/2506
현대 교회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신학의 변질이다. 신학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체계적 지식을 말한다. 다수의 현대 신학들은 교회가 전통적으로 믿고 고백해온 하나님의 진리들을 버리고 표류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통틀어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부른다. 자유주의 신학은 한마디로 이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역사적 대교단들의 신학교들은 이런 자유주의 신학 사상들을 포용하거나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지배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평적 변론의 필요성
우리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 논하는 까닭은 그것이 기독교 역사상 가장 이단적 사상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단을 분별하고 배격하라고 분명히 가르친다. 만일 우리가 자유주의 신학에 물든다면 우리의 신앙 생활은 죽고 말 것이다. 신자의 신앙 사상이 부패하면, 그의 경건하고 도덕적인 삶도 부패할 것이다. 교회가 세상과 별로 다르지 않다면, 죄 씻음을 받고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받는 감격이 없다면, 사람이 구태여 교회에 나올 이유가 없을 것이다.
사탄은 교회들로 하여금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하지 않고 은근히 받아들이게 하고 또 목사들의 사상을 변질시켜 마침내 교회 전체를 변질시키려 하고 있다. 우리는 사탄의 이러한 교묘하고 치밀한 배교(背敎) 운동을 분별하고 물리쳐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주의 신학이 얼마나 이단적이며 적그리스도적인 사상인가를 잘 분별하고 비판해야 한다. 하나님의 진실한 자녀들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대처해야 한다.
자유주의 신학의 근원과 성장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의 비평적 연구 방식에서 나왔다. 중세 시대의 사람들은 교회의 권위에 맹목적으로 순종했었다. 그러나 중세가 무너지고 개인의 자유와 인간 이성의 권위를 발견한 사람들은 성경에 대해서도 비평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고등비평이라고 불리우는 잘못된 성경연구방식이다.
또 경험할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이성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 철학자 칸트(Kant)의 사상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게다가, 과학의 발달이나 다윈의 진화론 등의 사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을 더욱 의심과 불신앙의 눈으로 보게 하였다. 자유주의 신학은 이런 배경에서 시작되고 성장하였다.
기독교와 자유주의 신학의 차이
성경적 기독교와 자유주의 신학은 무엇이 다른가? 성경적 기독교와 자유주의 신학은 단지 지엽적 문제들에서가 아니라 본질적 문제들에서 서로 다르다. 자유주의 잡지인 크리스챤 센츄리 1924년 1월 3일자 사설은 전통적인 기독교와 자유주의 신학을 근본주의와 현대주의라는 말로 표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근본주의에 의한 기독교는 한 종교요, 현대주의에 의한 기독교는 다른 한 종교이다. . . . 근본주의자의 하나님은 한 하나님이요, 현대주의자의 하나님은 다른 한 하나님이다. 근본주의자의 그리스도는 한 그리스도요, 현대주의자의 그리스도는 다른 한 그리스도이다. 근본주의의 성경은 한 성경이요, 현대주의의 성경은 다른 한 성경이다. 교회, 하나님의 나라, 만물의 종말--이것들이 근본주의자에게와 현대주의자에게 의미하는 바가 각각 다르다.”1)
성경적 기독교와 자유주의 신학의 차이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성경적 기독교는 기독교를 바른 교리들에 근거한 생활과 경험이라고 이해하며 그 교리들은 확실하고 불변적이라고 보지만,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를 교리들과 별개의 어떤 경험이나 생활로 보며 교리들은 시대마다 변할 수 있고 변해야 한다고 본다.
자유주의 신학은 교리를 경시함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 교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교리를 경시하는 이런 태도는 자유주의 신학의 초기로부터 볼 수 있었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쉴라이엘마허는 종교의 핵심이 이성적 증명과 토론이 아니고 감정이며 하나님은 한 경험, 한 살아있는 존재라고 주장하였다. 릿츨도 종교는 이론적이어서는 안 되며 구원받는 것은 새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하르낙도 사람이 경험한 종교만 고백될 수 있고 다른 모든 신조나 신앙고백은 예수님의 견해에 의하면 위선적이고 파멸적이라고 주장하였다.2) 그는 예수님의 기적들을 부정하며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을 역사적 기록으로 간주하지 않았다.3) 그에 의하면, 기독교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아버지시요 모든 사람이 서로 형제라는 데 있다고 한다.
쉴라아엘마허, 릿츨, 하르낙은 모두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선구자들이었다. 이와 같이, 자유주의 신학은 처음부터 기독교의 본질을 교리와 별개의 경험이나 생활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이들에 의하면, 기독교의 전통적 교리는 중요하지 않고 현대의 철학적, 과학적 도전 앞에 변경될 수 있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교리는 변경될 수 있으며 단지 하나님께서 악의 세력을 이기실 것이라는 신념이 기독교의 본질이라고 본다.4)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에 대한 과학적 반론을 염려하여 기독교의 독특한 교리들을 버리고 종교의 일반적 원리들을 기독교의 본질로 삼으려 하였다.5)
성경적 기독교는 교리를 중시함
그러나 성경적 기독교는 교리를 중시한다. 우리는 기독교가 바른 교리들에 근거한 생활과 경험이라고 이해한다. ‘교리’는 진리를 말로 표현한 것을 말한다. 교리는 기독교에 본질적이다. 또 기독교 교리들은 확실하고 불변적이다. 그것은 시대마다 변할 수 없다.
교리가 기독교에 본질적이라는 사실은 기독교의 기원을 살펴볼 때 분명하다. 처음 기독교 전파자들은 어떤 경험이나 생활 교훈을 전하지 않았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사실들을 전했고 이 사실들의 설명이 곧 교리이다. 사도 바울은 지혜의 말이나 기적을 전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전하였다(고전 1:22-23; 15:3-4).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은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지만, 그가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은 속죄의 교리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는 처음부터 교리적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또 교리가 기독교에 본질적이라는 사실은 바른 교리를 보수하고 이단을 배격하라는 성경 교훈들에서도 증거된다. 디모데후서 1:13, “너는 . . .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라.” 로마서 16: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디도서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기독교 교리의 확실성과 불변성
더욱이, 기독교 교리들은 확실하고 불변적이다. 이 사실은 그것들이 하나님의 속성들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하시며 거짓 증거를 미워하시고(출 20:16; 잠 6:16-19) 또 불변하시다(시 102:26-27).
또한 기독교 교리들의 확실성과 불변성은 기독교 복음의 성격에 의해서도 확증된다. 기독교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들에 기초하였고 그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그 내용은 확실하고 불변적일 수밖에 없다. 또 기독교 복음은 많은 기적들과 목격자들의 증언들에 의해 확증되었다(행 2:22; 요 21:24). 기적은 어떤 진리를 확증하는 표가 되기 때문에 ‘표적’(sign)이라고 불린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자신이 보고 전한 바를 순교의 피로 확증하였다. 그러므로 복음의 내용인 기독교 교리들은 확실하고 불변적이다.
성경은 복음 진리의 확실성과 불변성을 분명하게 선언한다. 갈라디아서 1:8-9,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기독교 복음은 명확하고 고정된 내용이며 아무도 거기에 무엇을 더하거나 뺄 수 없다. 교회의 의무는 단지 성경에 밝히 계시된 그 내용을 바르게 파악하고 후시대에 전하는 것뿐이다.
자유주의 신학의 본질
그러면, 자유주의 신학의 본질은 무엇인가? 자유주의 신학은 결국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않는 사상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초자연적 계시들을 인정치 않고 성경에 기록된 모든 기적을 인정치 않는다.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에 계시되고 증거된 모든 교리들을 인정치 않는다. 한마디로,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을 인간이 쓴 오류투성이의 책, 신화적인 책으로 보는 것이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자 중 비교적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칼 바르트도 아담의 창조와 타락의 이야기가 그 자체로는 거짓이라고 단언하였고6) 또 “아브라함과 모세와 같은 인물들이 후대의 신화 제작의 산물들이든지 아니든지 무슨 문제가 되는가[!]”라고 담대히 말하였다.7) 또 그는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단언하였다.8)
C. H. 다드는 성경의 외적 권위는 절대적이지 않으며9) 하나님의 계시 진리는 객관적 형태로 주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했고10) 심지어 성경의 무오성을 주장하는 것은 종교와 공중 도덕에 위험물이라고까지 말하였다.11)
성경 자체의 증언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은 성경 자체의 증언들과 정반대이다.
시편 19:7-8,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본문은 성경 말씀의 완전하고 확실함을 증거한다.
누가복음 1:1-4,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혹은 확실하게 믿어진 일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certainty)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성경은 확실하게 이루어진 내용들이며 목격자들의 증언이며 우리의 믿음의 확실한 근거이다.
요한복음 20:30-3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sign)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21:24, “이 일[요한복음의 내용들]을 증거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
사도행전 2: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들은 은밀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공개적으로 이루어졌었다.
히브리서 2:3-4,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기독교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과 하나님께서 주신 초자연적 기적들로 확증되었다.
마태복음 5:18,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예수께서는 친히 성경의 축자적(逐字的, 글자의) 영감을 증거하셨다.
요한복음 10:35, “성경은 폐할 수 없나니.” 예수께서는 친히 성경의 신적, 절대적 권위를 선언하셨다.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하나님의 감동으로’라는 원어는 ‘하나님께서 숨을 내쉼으로’라는 뜻이다. 이 말은 성경의 영감뿐 아니라, 성경의 신적 기원과 권위도 증거한다.
데살로니가후서 2:15,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遺傳)[전해 들은 바]을 지키라.” 이 말씀은 사도들의 권위, 즉 신약성경의 신적 권위를 증거한다.
요한계시록 22:18-19,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주께서는 신약 계시를 가감할 수 없는 신적 권위로 인치셨다.
성경이 믿을 만한 책이며 우리의 신앙생활의 표준인 신적 권위의 말씀이라는 것은 모든 개신교회들, 개혁교회와 루터교회와 영국교회가 공통적으로 믿는 기본적 신념이다. 심지어 로마 천주교회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 바른 성경관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성경이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라고 믿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이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가 포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은 사상이다. 그것은 예수님 당시에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믿지 않았던 사두개파적 불신앙과 같다(마 22:29). 그것은 한마디로 이단이다. 우리는 성경을 믿는 자가 되어야 하고 이단을 배격해야 한다.
2. 배교의 시대
자유주의 신학은 20세기 초만 해도 작은 세력이었으나 20세기 말에는 큰 세력이 되었다.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의 문제는 단지 몇몇 신학자의 문제가 아니고 대교단들의 목사들 다수의 문제이다. 유럽의 교회들은 일찍이 배교적이었고 미국의 교회들도 1920년대 이후 점점 포용적이게 되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자유주의를 포용하는 넓어진 교회들이며, 성경 말씀을 믿고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하는 보수적 교회들은 수적으로 소수인 것 같다.
100년 전에 주로 미국 교회의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된 한국 교회는 세계 교회들의 영향을 받아 왔고 지금도 받고 있지만, 특히 미국 교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면 자유주의 신학은 오늘날 미국 교회들과 한국 교회들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신학자들
자유주의 신학은 유명한 신학자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외의 여러 신학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1985년, 미국에서 약 125명의 개신교와 천주교 신학자들이 ‘예수 세미나’를 시작하였다. 1994년 초까지 이 세미나의 대략적 결론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한다. (1) 예수의 말들의 20%만 실제로 그의 말로 생각되며, 요한복음에서는 오직 한 구절만 그에게 돌려진다. (2) 예수는 자신을 메시야라고 공적으로 주장하지 않았다. (3)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과 매우 가깝다고 느꼈지만, 자신을 신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4) 예수는 결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 (5) 예수는 자신의 재림(再臨)을 약속하지 않았다.12)
1999년, 예수 세미나의 주도적 인물인 로버트 펑크는 미국의 한 연합그리스도교회의 강연에서 ‘예수 세미나’의 결론인 21개의 명제들을 배부하였는데 그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1) 물질 세계 바깥에는 신(神)이 존재하지 않는다. (2) 다윈의 사상은 창조의 교리를 영원히 말살시켰다. (3) 신적인 기적들은 하나님의 공의와 완전에 대한 모욕이다. (4) 저 밖에 있는 신에게 말해지는 기도는 무의미하다. 기도는 명상이다. (5) 예수는 신적 존재가 아니다. (6) 예수를 구속자(救贖者)라고 하는 것은 낡아빠진 생각이다. (7) 예수가 처녀에게서 나셨다는 것은 현대 지성에 대한 모독이며 여성에 대한 모욕이다. (8) 속죄의 교리는 이성적이지 못하고(subrational) 또한 윤리적이지 못하다(sub-ethical). (9) 예수는 부활하지 않았다. (10) 모든 계시적 요소들은 기독교 주제에서 삭제되어야 한다. (11) 예수 자신은 기독교 신앙의 적절한 대상이 아니다. 예수의 비전이 그를 대치해야 한다. (12) 성경은 객관적 행동기준을 담고 있지 않다.13) 이러한 예수 세미나의 결론들은 배교적이며 이단적이다.
우리 나라의 목원대 은퇴교수인 송기득(조직신학) 교수는 기독교 사상 2001년 1월호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성경 교리들, 즉 성육신(成肉身)과 신인양성(神人兩性)과 대속의 진리들은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고 심지어 부정할 수 있는 주제로 보았다. 또 그는 한신대 대학원장이었던 안병무 박사가 위의 교리들을 명백히 부정하였고 예수를 민중해방운동을 펼치다가 실패한 사람이며 단지 그가 민중해방운동의 길을 열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고 말했다.14)
신학생들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은 신학자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또한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76년, 노엘 홀리필드(Noel Hollyfield)는 미국 남침례교 신학교 신학석사 논문에서 남침례교 신학생들의 신앙 상태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15)
M.Div.
1학년
M.Div.
3학년
Th.M.
&Ph.D.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없이 믿는다.
74%
65%
63%
마귀의 존재는 확실하다.
66%
42%
37%
기적들이 성경의 증거대로 실제로 일어났음을 믿는다.
61%
40%
37%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은 확실하다.
66%
33%
32%
예수께서 물 위로 걸으셨음은 확실하다.
59%
44%
22%
예수께서 신적인 하나님 아들이심을 의심치 않는다.
87%
63%
63%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은 구원에 절대필수적이다.
85%
60%
59%
성경을 하나님의 진리로 믿는 것은 구원에 절대필수적이다.
42%
33%
21%
죽음 너머의 삶이 있음은 확실하다.
89%
67%
53%
예수께서 어느 날 실제로 지구로 돌아오실 것을 확신한다.
79%
56%
53%
이 설문조사는 비교적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남침례교회의 학생들에게까지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이 미쳤음을 보인다.
헬라정교회 대주교 드미트리 로이스터는 연합감리교 소속 퍼킨즈 신학교에서 헬라어를 가르칠 때의 일을 회고하며 말하기를, “나는 학생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믿는지 물었다. 내가 말뜻을 정의하여 예수께서 단지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선생이 아니고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임을 분명히 하자, 그 반의 학생들 중 한 명도 그것에 동의하지 않으려 하였다”고 했다.16)
교회 지도자들
자유주의 신학은 또 교회의 지도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몇몇 인물들을 예로 들어보자. 미국 감독교회(Episcopal Church)에 소속한 죤 스퐁(John Spong) 감독은 인격적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으며 기도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은 ‘죽었다’고 말하였다.17) 1999년 4월 26일자 뉴 아메리칸지에 의하면, 그의 판단에, 기독교가 생존하려면 기독교는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성육신(成肉身), 처녀 탄생, 부활, 승천, 및 기적들과 같은 교리들을 치워버려야 한다. 또 스퐁은 “나는 자기 아들의 희생을 요구한 신을 숭배하기보다 증오하는 편을 택할 것이다”라고 말했고18) 모든 도덕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상대적이라고 단언했다.19) 그는 6백명 이상의 감리교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성경에서 읽는 모든 내용을 다 믿지 말라고 강조했다.20) 감독교회에서 감독은 목사보다 높은 고위 성직자인데, 미국 감독교회의 감독인 자의 사상이 이렇게 자유주의인 것이다!
한국 교회 지도자들의 예를 들어보자. 기독교대한감리회에 속한 박대선 감독은 1974년 6월 14일 고(故) 홍종철 특별보좌관 장례식 설교에서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에 에녹이나 엘리야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육신으로 죽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였고, 성경이 그들을 죽지 않고 승천했다고 표현한 것은 그들의 이미지가 그들의 제자들과 가족들에게 생생하게 심어졌다는 뜻이라고 하였다.21) 이것은 성경의 증언에 대한 불신앙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조향록 목사는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그 사건 자체를 사건적으로 입증하든지 부정하든지 하는 논란은 큰 의미를 거두지 못한다,” “그리스도 부활 사건은 신앙의 창문을 열고야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고22) 허혁 목사는 “저는 성서에 부활의 사실을 가지고 있다고 하기보다는 부활의 보도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 . . 이것을 학자들은 신앙의 표현이라고 하더군요. . . . 그것은 신앙을 사건으로 보는 입장이지요. . . . 저는 내가 믿는다는 것을 하나의 사건으로 보는 것이 좋지 않느냐 하는 생각입니다”라고 말하였다.23)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그 사건 자체가 중요하다. 부활 사건을 말하지 않고 단지 부활 신앙만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이다.
역사적 대교단들
자유주의 신학은 미국의 역사적 대교단들 속에서도 볼 수 있다. 미국의 장로교회의 배교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 1923년 12월 26일, 미 북장로교회에 속한 150명의 목사들이 뉴욕주 어번시에 모여 한 문서를 발표하였다. 후에 어번 선언서(Auburn Affirmation)라고 불리운 이 문서는 곧 1,293명의 목사들의 서명을 받았다. 그 내용은, 총회가 1910년에 선언하고 1916년, 1923년에 재확인한 내용을 반대하는 것이었다. 총회가 1910년에 선언한 내용이란, 성경의 무오성(無誤性),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 그의 대속(代贖), 그의 육체적 부활, 그의 기적들의 사실성 등의 다섯 가지 교리가 성경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본질적이라는 것이다. 어번 선언서는 이 교리들을 ‘성경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본질적이지 않고 단지 이론들일 뿐’이라고 말하였고, 특히 성경 무오의 교리는 성경 숭배에 빠지기 쉬운 교리라고 하였다. 이 어번 선언서는 1924년 총회에서 채택되었다.
1967년, 미연합장로교회(후에, 미합중국 장로교회가 됨)는 새로운 신앙고백서를 채택하였는데, 그 신앙고백서는 “하나님의 유일 충족한 계시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다. . . .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 말씀으로 수락되고 순종된다. . . . 성경은 성령의 인도 아래서 주어진 것이지만 역시 사람들의 말이며, 그것들이 기록된 장소와 시대의 언어, 사상 형식, 문학 형태들의 지배를 받는다. 성경은 그 당시에 유행하던 인생관, 역사관, 우주관을 반영한다”고 진술하였다(1. 3. 2).24) 그것은 성경의 초시간적 진리성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사상이다.
미 연합장로교회는 목사의 임직 서약도 변경하였다. 변경된 임직서약에서는, 성경이 더 이상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으로 선언되지 않고, 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 지도 아래 행한다고 선언된다. 1965년 5월 17일자 자유주의 잡지 크리스챠니티 앤드 크라이시스(Christianity and Crisis)는 말하기를, “새 신앙고백서는 1924년 어번 선언서의 교리적 노선으로 내려간다. 40년 전에 겨우 허용되었던 소수파 견해가 이제는 교회의 공식적 교리로 제안되고 있다”고 하였다.25)
1981년, 미연합장로교회 총회재판국은, 그 총회 내에서 사역하던 연합그리스도교회 소속 맨스필드 케이스맨(Mansfield M. Kaseman) 목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무죄성(無罪性), 대리적 속죄, 육체 부활을 부정함에도 불구하고, 지노회가 케이스맨의 견해를 새 임직 서약에 의해 허용된 ‘용납할 만한 해석의 범위 안에’ 있는 것으로 간주함에 있어서 옳았다고 판결하였다.26) 미연합장로교회는 이단을 제거할 뜻이 없음을 명백히 드러낸 것이다. 이것이 교회의 배교가 아니고 무엇인가?
미연합감리교회(UMC)는 일찍부터 자유주의적이었다. 그 교단의 자유주의적 문제점들은 수없이 많이 열거될 수 있겠지만, 최근의 한 예를 보자. 미국 시카고의 연합감리교회 감독 스프라그(C. Joseph Sprague)는 2002년 덴버 신학교 강연에서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의 신화는 역사적 사실로 의도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의 물질적 몸의 회생을 내포했다고 믿지 않는다”고 말함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그러나 그에게 그의 견해를 취소하든지 그의 직책을 사임하라고 요청하는 그 교단 내의 28명의 보수주의자들의 고소를 다룬 위원회는 그 고소가 잘못이며 그는 이단이 아니라고 판결하였다.27) 그것은 그 교단이 배교적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영국의 런던 주말 텔레비젼의 ‘크리도우(Credo)’ 프로그램은 1984년 영국교회 39명의 주교들 중 31명에게 질문한 결과를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1)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하나님인 동시에 사람으로 간주해야 한다(11명),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하나님의 최고 대리자로 생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19명). (2) 신약성경의 기적들은 후대의 삽입이다(15명). (3) 예수의 부활은 그의 제자들에게 “그가 그들 가운데 살아계시다”고 확신시켰던 그의 죽음 후의 ‘일련의 경험들’이다(9명).28) 이것은 영국교회의 배교적 상황을 보인다.
캐나다 연합교회(UCC)는 일찍부터 자유주의적이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자유주의 신학 사상은 캐나다 연합교회가 파송한 서고도(William Scott) 선교사 같은 이의 영향이 컸다.29) 그러나 최근의 한 예를 보자. 캐나다 연합교회의 총회장 빌 핍스 목사는 1997년 10월 24일자 오타와 시티즌지와의 대담에서 “나는 예수께서 하나님이셨다고 믿지 않는다,” “나는 예수께서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시라고 믿지 않는다. 나는 그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과학적 사실로 믿지 않는다”라고 하였다.30)
우리나라의 감신대학의 학장이었던 변선환과 조직신학 교수이었던 홍정수는 기독교대한감리회 교단의 좌경된 모습의 생생한 증거이다. 변선환은 기독교의 유일성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의 길 되심을 부정했다. 그는 기독교 사상에 기고한 글에서 “그리스도만이 보편적으로 유일한 구속자이신 것이 아니라”고 하였고 “저들의 종교[타종교들]도 그들 스스로의 구원의 길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299호, 155쪽). 또 그는 “그리스도는 힌두교 안에 있다”고 주장했다(같은 책, 156쪽). 그는 크리스챤 신문 1990년 12월 8일자에 기고한 글에서도 “기독교 밖에 구원이 없다는 교리는 신학적인 토리미의 천동설에 지나지 않는다,” “종교의 우주는 기독교도 다른 종교도 아니고 신을 중심하여서 돌고 있다는 것을 기독교는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또 그는 “예수를 절대화, 우상화시키며, 다른 종교적 인물을 능가하는 일종의 제의의 인물로 보려는 기독교 도그마에서 벗어나 . . . 신 중심주의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31) 그러나 이런 사상은 명백히 종교다원주의의 이단이다.
홍정수는 첫째로 신의 존재를 부정했다. 그는 “만일 신은 계신가 하고 누가 묻는다면 ‘신은 없다’고 잘라 말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베짜는 하나님, 52, 56쪽). 둘째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하나님의 아들의 대속적 죽음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한 정기 간행물에 기고한 글에서 “[예수의 십자가는] 신의 아들의 죽음이 아니다”라고 하였고 또 “예수의 죽음이 우리를 속량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이 우리를 속량하는 것이다”라고 했다(한 몸, 7권, 16, 17쪽). 또 그는 그의 저서에서도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 아니라 특정한 메세지를 전하고 있던 한 설교자의 죽음을 증언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베짜는 하나님, 190쪽). 셋째로, 그는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였다. 그는 크리스챤 신문 1991년 3월 30일자에 기고한 글에서 “부활 신앙은 이교도들의 어리석은 욕망에 불과하다”고 하였고, 같은 신문 6월 8일자의 글에서는 “[예수의 부활 사건은] 빈 무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한 잡지에서 “나는 단연코 육체의 부활을 부정한다”고 말했다(우먼 센스, 1991. 12월호).
1992년 5월 7일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 연회 재판위원회는 이들에게 출교를 선고했지만, 어떻게 이런 신학자들이 감신대학의 학장이 되고 조직신학 교수가 될 수 있었단 말인가. 또 이런 자들에 대해 감신대학의 교수들 중에는 비평하는 자들이 없는 것 같다. 한국의 감리교회는 신학적으로 너무 넓어졌고 변질되었다고 보인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통합)는 신학적으로 자유주의화 되어 있다. 그 교단의 신학교인 장로회신학대학이 신정통주의적인 입장을 취해왔다는 것은 한국교계에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신정통주의’란 칼 바르트, C. H. 다드, 라인홀드 니이버 등의 사상에서 보듯이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의 한 파이다. 장로회신학대학은 오래 전부터 성경의 무오성(無誤性)과 모세오경의 모세 저작성을 부정하고 이사야 40장 이하를 이사야가 아닌 후대의 어떤 익명의 저자가 썼다는 사상을 용납한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통합측 신학교의 분위기는 합동측 신학교와 다르다고 알려져 왔다.
예장합동측 기관지 기독신보의 주필이었던 채기은 목사는 “필자가 진단하기에는 . . . 통합측은 반반으로 나뉘어 자유주의 신학 사상을 가진 이들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기장측은 절대 다수가 자유주의 신학에 근거하고 있다고 본다”고 증거하였다.32) 1984년 이동렬은 “한국교회와 신정통주의”라는 장로회신학대학 석사학위 논문의 결론에서 말하기를, “우리 입장은 신정통주의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 멈추지 않고 계속 표류 중이다”라고 했다.33) 1994년 통합측 총회는 701대 612로 여성안수안을 통과시켰다. 그 총회는 사도적 교훈을 부정하고 성경이 명백히 금하는 여자 목사를 세우는 오류를 택한 것이다. 장로회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김명용은 1997년에 쓴 열린 신학 바른 교회론이라는 그의 책에서 성경의 축자영감설과 성경무오설을 옛시대의 신앙 사상이라고 말하며 오늘날의 개혁신학은 바르트와 브룬너와 라인홀드 니이버 등의 차원높은 신학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34)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교단은 자유주의적이다. 물론 그 교단에도 성경을 믿는 많은 목사들과 평신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단의 목사 양성원인 장로회신학대학이 자유주의적이며 그 교단의 지도자들의 다수가 자유주의적이라면, 그 교단은 자유주의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예장통합측은 건전한 교단이 아니다.
전반적 상황
현대 교회의 전반적 상황을 증거하는 두 가지 자료가 있다. 첫째는 제프리 해든(Jeffrey Hadden)의 설문조사이다. 1967년, 제프리 해든은 미국의 성직자 10,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고 거기에 응답한 7,441명의 응답 결과를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35)
(1) ‘귀하는 예수님의 처녀 탄생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감리교회(UMC) 성직자들의 60%는 ‘아니오’라고 대답했고, 감독교회(ECA) 성직자들의 44%, 연합장로교회(UPC) 성직자들의 49%, 침례교회(ABC) 성직자들의 34%도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2) ‘귀하는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을 사실로 받아들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감리교회 성직자들의 51%는 ‘아니오’라고 대답했고, 감독교회 성직자들의 30%, 연합 장로교회 성직자들의 35%, 미국 침례교회 성직자들의 33%도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3) ‘귀하는 오늘 세계에 악한 귀신들이 존재한다고 믿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감리교회 성직자들의 62%는 ‘아니오’라고 대답했고, 감독교회 성직자들의 37%, 연합 장로교회 성직자들의 47%, 침례교회 성직자들의 33%도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4) ‘귀하는 성경이 신앙과 역사와 세속문제들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감된 무오(無誤)한 말씀임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감리교회 성직자들의 87%는 ‘아니오’라고 대답했고, 감독교회 성직자들의 95%, 연합 장로교회 성직자들의 82%, 미국 침례교회 성직자들의 67%, 미국 루터교회 성직자들의 77%도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둘째는 바나 연구회(Barna Research Group)의 설문조사이다. 바나 연구회는 2004년 미국 개신교회 목사들의 49%가 다음과 같은 성경의 핵심적 신념들을 거부한다고 보고했다: (1) 성경에 기초한 절대적인 도덕적 진리가 있다, (2) 성경의 교훈은 정확하다, (3) 예수는 죄가 없으셨다, (4) 사탄은 실제로 존재한다. 그것들을 믿는 목사들의 비율은 감리교회가 27%로 가장 낮았고 남침례교회가 71%로 가장 높았다.36) 이 설문조사들은 미국 교회들이 자유주의 신학의 큰 영향을 받았음을 증거한다. 이것이 배교(背敎)가 아니고 무엇인가?
주께서는 말세에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리라고 예언하셨다(마 24:11, 24). 바울은 주의 재림 직전에 먼저 배교, 즉 신앙의 변절이 있을 것을 예언했다(살후 2:3). 특히 신학자들과 목사들과 역사적 대교단들의 배교는 참으로 심각한 일이다. 자유주의는 누룩같이 온 교회에 많이 퍼졌다. 이 누룩은 제거되지 않을 것이다. 말세에 배교가 있으리라는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고 있고 또 다 성취될 것이다.
단지,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이 깨어 현대교회의 배교를 직시하고 책망하고 구별하고 분리하여 참 교회들을 세우고 돌보는 것이 필요하다. 주의 참된 종들은 배교와 타협과 혼란의 시대 풍조를 분별하고 옛길, 바른 길을 붙들고 성경의 모든 말씀에만 순종하고 진실한 성도들과 교제하면서 하나님 앞에 충성해야 할 것이다.
3. 자유주의 신학은 이단이다 (1)
자유주의 신학은 이단이다. 왜냐하면 한마디로 말해 그것은 성경의 핵심적 교리들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대표적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책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과 처녀 탄생을 부정한다
자유주의 신학은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 즉 ‘말씀이 육신이 되셨음’을 부정한다. 라인홀드 니이버는 비극을 넘어서라는 그의 책에서 “영원이 시간 속에 들어온다는 개념은 지적으로 불합리하다. . . .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진리는 진리가 보통 판단되는 모든 규범들을 어긴다”고 말했다.37) 또 폴 틸리히는 조직신학이라는 그의 책에서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주장은 역설적(逆說的)이 아니라 부조리한(non-sensical) 말이다”라고 했다.38)
그러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그리스도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이다.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정함은 바로 그를 부정하는 적그리스도적 사상이다. 요한일서 4:2-3,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는 영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요한이서 7, “이는 미혹하는[속이는] 자들이 많이 세상에 나왔음이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들이라. 이것이 미혹하는[속이는] 자요 적그리스도니라.”
그리스도의 성육신 진리와 밀접한 또하나의 진리는 처녀 탄생의 진리이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처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음을 증거한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은 그것을 부정한다. 칼 바르트는 교회교의학에서 “그의 모친이 젊은 부인으로 불리우는가 아니면 처녀로 불리우는가 하는 옛 논쟁은 그 진정한 의미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39) 라인홀드 니이버는 비극을 넘어서라는 책에서 “사람들은 처녀 탄생의 원시적 신화에 속임을 당하고, 바로 역사 너머를 가리키기 때문에 의미 있는 그것을 하나의 순수한 역사적 사실로 이해하려고 할 것이다”라고 말했고,40) 자아(自我)와 역사의 드라마라는 다른 책에서도 “‘처녀 탄생’과 같은 기적들은 후대에 삽입된 생각이다”라고 말했다.41)
그러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은 복음서에 밝히 증거된 내용이다. 마태복음은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으며, 남편 요셉이 마리아에게 잉태된 자가 성령으로 된 것이라는 천사의 말을 들었으며, 요셉이 마리아가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않았다고 증거했다(마 1:18, 20, 25). 누가복음은 처녀 마리아가 아들을 잉태하여 낳으리라고 전언(傳言)한 천사에게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반문했고 천사는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고 말했다고 증거했다(눅 1:34-35).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은 초자연적 사건에 대한 믿음의 시금석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자는 처녀 탄생을 믿을 수 있다. 또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은 그의 신성(神性)과 연관되어 있다. 누가복음 1:35,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자유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초자연적 능력을 믿지 않는 불신앙이다. 그것은 예수님 당시에 부활이나 천사나 영을 믿지 않던 사두개인들의 사상이다. 주께서는 그들에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마 22:29).
그리스도의 기적들을 부정한다
자유주의 신학은 또한 그리스도의 기적들을 부정한다. 자유주의 신학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초자연적 계시나 기적을 의심하는 성경의 비평적 연구에서 시작되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루돌프 불트만은 요한복음이라는 책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는] 그 이야기가 이방의 전설에서 취해져 예수께 돌려졌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42) 폴 틸리히는 그의 조직신학에서 그리스도의 행적 전반에 대해 말하기를, “모든 역사적 지식과 같이, 이 사람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단편적이고 가설적이다. 역사적 연구는 이 지식을 방법론적 회의주의에 굴복시키고 본질적인 부분들뿐 아니라 각개의 부분들에서도 계속적인 변화에 굴복시킨다”고 했다.43)
요아킴 예레미아스는 신약신학이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또 우리는 특히 헬라주의적 환경으로부터 당시 유행하는 작품에서, 귀신의 추방, 병 고침, 죽은 자들을 일으킴, 풍랑을 잔잔케 함, 포도주 기적의 이야기들을 발견한다. 이 기적 이야기들의 어떤 것들은 복음서들의 그것들과 매우 밀접한 접촉을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기독교적 전통이 그 주변 환경에서 빌려왔으며 적어도 그것에서 어떤 개별적 주제들을 이어받았다는 결론을 거의 피할 수 없다”고 했다.44)
그러나 예수님의 기적들은 모든 사람 앞에 드러나게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사도행전 2: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또 제자들은 주께서 행하신 기적들의 목격자들이요 증인들이었다. 그들은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고 말했다(행 10:39).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은 진실한 증인들에 의해 증거된 내용들이다(요 20:30-31; 21:2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에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마 22:29)라고 하신 말씀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 합당하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부정한다
또 자유주의 신학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부정한다. C. H. 다드는 로마서라는 책에서 “유화(宥和, propitiation)라는 번역은, 진노하신 하나님을 가라앉힘을 암시하기 때문에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으며, 비록 이것이 이교적(異敎的) 용법에는 맞을지라도 성경적 용법에는 생소하다”라고 말했다.45) 라인홀드 니이버는 비극을 넘어서라는 책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 위에서 속죄의 죽음을 죽으셨다는 교리는 많은 신학적 오류들로 인도하는데 그 중에는 인간의 도덕 의식을 모욕하는 대리적 속죄의 이론들이 포함된다”고 말했다.46) 루돌프 불트만은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셨다고 할 때 그의 인격은 신화(神話)의 빛으로 관찰되며, 이것은 그가 형이상학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 즉 우리의 구속(救贖)을 위해 사람이 되셨고 스스로 고난, 그것도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위대한 선재(先在)하신 천적(天的) 존재로 이해되는 헬라주의 기독교 공동체들에서는 한층 더 분명하게 된다. . . . 특히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내려오신 선재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개념은 영지주의적 구속 교리의 일부분이며, 아무도 이 교리를 신화적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47)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많은 사람을 대속(代贖)하기 위한 죽음이었다. 속죄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다. 성경적 속죄 개념은 속죄제물이 택함받은 자들의 죄책과 형벌을 담당함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시고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힌다는 것이다. 많은 성경 구절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분명하게 증거한다.
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로마서 3:24-25,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힐라스테리온, 유화제물)로 세우셨으니.” 고린도후서 5:14, 21,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義)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히브리서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히브리서 10:10, 12, 14,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들에게서 유전된 망령된 행실로부터 구속(救贖)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요한계시록 5:9,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우리를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한다
자유주의 신학은 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한다. 칼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말이라는 책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그의 재림은 동일한 것인데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고 말했다.48) 또 그는 로마서라는 책에서, “부활은 역사 안에서 일어난 어떤 일(an occurrence)이다. . . . [그러나] 부활이 역사상의 사건(an event in history)은 아니다”라고 말했다.49) 또 그는 교회교의학에서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역사적으로 발생하였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런 증거도 없고 어떤 증거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 명백하다,” “실제로 성경 역사에 결정적 요소들인 창조 이야기와 및 다른 많은 이야기들과 공통적으로, 부활의 역사는 현대 학자들의 사고형식들과 용어로 신화(saga)나 전설로 간주되고 묘사되어야 한다는 것을 대항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확실히 현대적 의미에서 역사로 생각될 수 있지만, 부활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50)
루돌프 불트만은 그의 신약신학에서 “바울이 여전히 그것에 관해 아무것도 알고 있지 못한 빈 무덤의 이야기들은 전설이다”라고 말했고,51) 또 다른 토론에서 말하기를, “부활절 사건이 어떤 의미로든지 십자가 사건에 첨가된 역사적 사건이라면, 그것은 부활하신 주에 대한 믿음의 발생 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들의 설교를 이끌어낸 것은 바로 이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활 자체는 지나간 역사의 사건이 아니다”라고 했다.52)
폴 틸리히는 그의 조직신학에서 말하기를, “십자가의 이야기들은 아마 역사적 관찰의 충분한 빛 안에서 발생했던 한 사건을 가리킬 것이지만, 부활의 이야기들은 그 사건 위에 깊은 신비의 베일을 덮는다,” “역사 연구는, 그것의 주위에 있는 전설적이며 신화적인 자료에 근거하여 이러한 사실적 요소를 찾아내려고 함에 있어서 정당하다. 그러나 역사적 연구는 결코 개연적 대답 이상의 것을 줄 수 없다”고 했다.53)
판넨베르크는 예수: 신인(神人)이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복음서들에 보도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나타나심들을 바울은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것들은 강하게 전설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속에서 그 자체의 역사적인 알맹이를 거의 찾을 수 없다”고 했다.54)
그러나 이런 사상은 신약성경의 명백한 증거를 부정하는 이단이다. 사복음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충분하게 증거한다. 사도행전은 예수께서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40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고 기록한다(행 1:3). 사도 바울은 예수께서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고 썼고(롬 1:4),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썼다(롬 10:9). 또 그는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복음의 핵심적 내용이며(고전 15:3-4) 장차 죽은 자들의 근거임을 강조하였다(고전 15:12-13, 16, 19).
덧붙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의 승천과 재림과 관련된다. 만일 우리가 그의 부활을 부정한다면, 우리는 그의 승천이나 재림도 부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것은 매우 기본적 신앙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자가 구원을 받으리라고 생각할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자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 곧 그의 신성(神性)과, 처녀 탄생을 부정하고 그의 기적들을 부정하고 그의 속죄 사역을 부정하고 그의 육체적 부활을 부정한다.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한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말할지라도 그것은 성경에 증거된 역사적 예수가 아니고 다른 예수에 불과하다(고후 11:4). 그러므로 자유주의 신학은 확실히 이단이다.
4. 자유주의 신학은 이단이다 (2)
자유주의 신학은 이단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경의 핵심적 교리들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표적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책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앞장에서 우리는 자유주의 신학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 곧 신성(神性)과 처녀 탄생을 부정하고 그의 기적들을 부정하고 그의 속죄 사역을 부정하고 그의 육체적 부활을 부정하는 것을 보았다.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한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말할지라도 그 예수는 성경에 증거된 역사적 예수가 아니고 다른 예수에 불과하다(고후 11:4). 그러므로 자유주의 신학은 확실히 이단이다.
이제 우리는 추가적으로, 자유주의 신학이 성경의 핵심적 진리들을 부정한다는 사실을 몇 가지 더 살펴보자.
사람의 영혼 불멸을 부정한다
또 자유주의 신학은 사람의 영혼이 불멸하다는 성경에 전제된 기본적 진리를 부정한다. 예를 들어, 라인홀드 니이버는 비극을 넘어서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영혼 불멸이라는 개념이 몸의 부활보다 더 믿을 만하다는 선입견은 단지 교회 안에 있는 헬라 사상의 유산에 불과하다”고 했다.55) 폴 틸리히도 그의 조직신학에서 말하기를, “인간의 자연적 특질로서의 불멸성은, 비록 그것이 플라톤의 교리일 수는 있어도, 기독교적 교리는 아니다”라고 했다.56) 또 오스카 쿨만도 영혼 불멸인가 죽은 자의 부활인가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 개념[영혼의 불멸]은 기독교에 대한 가장 큰 오해들 중의 하나이다”라고 했다.57)
그러나 성경은 사람의 영혼의 불멸을 밝히 증거한다. 영혼 불멸에 대한 성경적 증거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사람의 죽음에 대한 묘사이다. 성경은 사람의 죽음을 영혼이 몸을 떠나 하나님께로 가는 것으로 묘사한다(전 3:20-21; 12:7). 또 성경은 죽은 자의 영혼을 “조상들에게로 돌아갔다”고 묘사한다(창 15:15; 25:8). 이것은 죽음 후 영혼의 계속적 존재를 증거한다.
둘째, 사람의 죽은 후 상태에 관한 말씀이다. 시편 73:24은 성도가 죽은 후 영광 중에 영접되리라고 말한다. 주께서는 회개한 강도가 죽은 후 함께 낙원에 들어갈 것을 말씀하셨다(눅 23:43). 특히, 누가복음 16:19-31의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이 문제에 대해 잘 증거한다. 거지 나사로는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었는데 그는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았다(22-23절).
셋째, 부활에 관한 말씀이다. 성경은 죽은 자의 부활을 증거한다.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믿는다(행 24:15). 죽은 자의 부활은 사람의 영혼의 불멸을 전제한다.
넷째, 심판에 관한 말씀이다. 악인에 대한 심판은 영혼의 불멸을 전제한다. 마태복음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영혼 불멸은 성경적 진리이다.
그리스도의 재림(再臨)을 부정한다
또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칼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말이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그의 재림은 동일한 것인데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라고 했다.58) 라인홀드 니이버는 비극을 넘어서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기독교 교리 중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보다 더 속임과 착각으로 인도한 교리는 없다”고 했다.59) 폴 틸리히도 그의 조직신학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하나의 상징으로 보았다.60) 상징은 신화와 비슷한 개념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경의 근본적 교리이다. 주 예수께서는 친히 자신의 재림에 대해 밝히 증거하셨다. 마태복음 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사도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명백히 증거하였고, 특히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에서 그는 매 장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언급하였다. 데살로니가전서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데살로니가후서 1:7-8,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사도 베드로는 말세에 주의 재림을 부정하는 거짓 교사들이 나타날 것을 경고하였다. 베드로후서 3:3-4,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사도 요한은 주 예수의 재림과 그 전에 있을 사건들을 예언한 책을 저술하였다. 요한계시록 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또 그는 자신의 재림을 증거하신 주 예수의 말씀에 간절히 화답하는 말로 그 책을 마쳤다. 요한계시록 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사도신경에 고백된 대로 모든 정통적 기독교회가 고백하는 성경적 진리요 복된 소망이다. 디도서 2: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정하는 것은 명백히 이단이다.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한다
또 자유주의 신학은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한다. 라인홀드 니이버는 비극을 넘어서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몸의 부활이라는 개념은 문자적으로 참될 수 없다”고 했다.61) 판넨베르크는 사도신경이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이런 식으로 죽은 자의 부활 개념의 긍정적 타당성을 인식하고 주장함은 우리가 그것의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성격에 관해 분명히 이해한다는 조건에서 가능할 뿐이다”라고 했다.62)
그러나 죽은 자의 부활은 성경이 밝히 가르치는 진리이다. 우리는 사도신경의 고백대로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는다. 의인들은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것이며 악인들은 부활하여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분명히 증거하셨다. 요한복음 5:28-29,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그는 또 부활을 부정하는 사두개인들에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고 책망하셨다(마 22:29).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의 부활을 믿었다. 사도행전 24:15,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그는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하여 죽은 성도들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논증하였다. 고린도전서 15:12-13, 51-5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마지막 심판과 지옥을 부정한다
또 자유주의 신학은 마지막 심판과 지옥을 부정한다. 라인홀드 니이버는 인간의 본질과 운명이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현대 기독교 안에 있는 감상적인 도덕 의식이 아마 심판 개념의 중요성을 일소했을 것이다”라고 했다.63) 폴 틸리히는 그의 조직신학에서 말하기를, “사람들은 ‘영원한 정죄’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신학적으로 유지될 수 없는 단어들의 결합이다. . . . 그러므로 ‘영원한 정죄’라는 말은 신학 용어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 . . 사람은 존재의 기반으로부터 결코 잘리워버리지 않으며, 심지어 정죄의 상태에서도 그러하다,”64) “[천국과 지옥은] 상징들이지 장소들의 묘사가 아니다”라고 했다.65)
그러나 마지막 심판의 진리는 성경의 기본 진리이다. 성경은 마지막 심판에 대해 밝히 증거한다. 주께서는 마지막 심판에 대해 밝히 증거하셨다. 마태복음 13:39-40,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해설하면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증거하였다. 로마서 2:5-6, 16,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또 히브리서 저자는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이 그리스도의 도(道)의 초보에 속하며 그런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가라고 교훈하였다(히 6:1-3).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20:11-15에서 마지막 대심판에 대해 증거하였다.
또 지옥 교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온 진리이다. 마태복음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특히 마가복음 9:43-48에는 주께서 지옥에 대해 증거하신 내용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43절). 그 외에도 그는 마태복음 25:41, 46에서 ‘영영한 불’ ‘영벌’에 대해 증거하셨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1:9에서 ‘영원한 멸망의 형벌’에 대해 증거하였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21:8에서 악인들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할 것을 증거하였다.
이와 같이, 마지막 심판과 지옥에 대한 진리는 두려운 진리이지만, 분명히 성경적 진리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로 인쳐진 진리이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주께서 말씀하신 이 진리들을 부정하거나 변경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진리를 부정하거나 변경하는 것은 분명히 이단이다.
결론적으로,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과 처녀 탄생, 그의 기적들, 그의 속죄 사역, 그의 부활, 사람의 영혼의 불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죽은 자들의 부활, 마지막 심판과 지옥 등 기독교의 핵심적 진리들을 부정한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신학은 확실히 이단이다. 기독교의 핵심적 진리들을 부정하는 사상은 확실히 이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주의 신학이 이단임을 바르게 인식하고 그 사상을 용납하지 말고 단호히 배격해야 하고, 그런 사상을 가진 자들과 교제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분별해야 하고 성경의 교훈대로 교제를 조심해야 한다. 디도서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요한이서 10-11,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
출처:옛신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