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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에(예수전도단)’, ‘모든 민족에게(경배와 찬양)’의 문제점

‘마지막 날에(예수전도단)’, ‘모든 민족에게(경배와 찬양)’의 문제점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욜2:28-32) - 다가올 어떤 날을 기대하는 말씀인가?
28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
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묘하게도 “더 성경적”인 것보다, “덜 성경적”인 것이 더 인기가 있는 경우가 많이 있고, 어떤 경우에는 심각하게 잘못 되거나 왜곡된 것이 정상적인 것보다 폭발적으로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는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생각키로 이 요엘서의 본문을 가지고 만들어진 요즈음의 찬양들이 아마 그렇지 않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좀 오래되기는 했지만 두란노 경배와 찬양에서 나온 찬양 중에 이 가사를 가지고 만든 찬양이 있었습니다.
“모든 민족에게 주 성령 부어 주소서...”라고 시작하는 찬양이었죠. 이 찬양의 후렴부는 이렇게 됩니다.
 “그 날엔 주의 영이 임하여 큰 부흥 이 땅 위에 일어나리라 모든 영혼 깨어 일어날 때 주 예수를 부르는 자는 구원되리...” 제가 기억하기로는 이 찬양이 사람들로 하여금 어떠한 영적 흥분, 혹은 부흥을 향한 열망을 불러 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최근에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찬양으로 역시 이 구절을 사용한 찬양이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 내가 나의 영으로 모든 백성에게 부어 주리라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청년들은 환상을 보고 아비들은 꿈을 꾸리라 주의 영이 임하면...” 이 찬양 역시 뒷부분의 후렴에서는 사람들에게 영적 흥분, 혹은 성령의 임재, 부흥을 향한 열망을 불러 일으키는 가사로 맺고 있습니다. “성령이여 임하소서 우리에게 임하소서”
 

단적으로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고 글을 시작하자면, 저는 개인적으로 이 찬양들을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금지시키고 있습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이 가사를 가지고 미래에 올 어떤 날을 대망하면서 노래를 불러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 요엘서의 본문은 이미 성취되었습니다.
둘째는 이 가사의 내용들이 부흥이나 성령의 임재에 관하여 우리에게 그릇된 교리들을 전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찬양들을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부르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런 것입니까? 그에 관해 간단하게나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 성경구절을 가지고 미래에 올 어떤 날을 대망하면서 노래를 불러서는 안되는 이유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제가 앞에서 말씀드린 요즘의 찬양들은 요엘서의 이 본문들이 미래에 이루어질 어떤 격렬한 부흥의 날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가사들에서는 공통적으로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청년들은 환상을 보고, 아비들은 꿈을 꾸리라”라는  가사들이 전적으로 나중 어떤 날에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하는 상상들을 담고 있습니다.(저는 사실 개인적으로 이 찬양을 부르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이 빈야드적 부흥집회에서처럼 사람들이 이상한 소리를 읊조리면서 반실신상태에서 종교적 무아지경에 빠지는 것을 기대하는 것인지 의아스럽습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이 이 본문을 다루는 방식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요엘서의 본문이 사도행전에 인용되었다는 사실은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사도행전에서 이 본문이 인용되었을 때 그것이 어떤 의미로서 인용되었습니까?  이 본문은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납니다. 직접적으로 2장 16절에 이것이 요엘서로부터 인용된 것이라는 사실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그러면 이 요엘서로부터의 인용은 무엇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까? 사도행전 2장에서는 교회설립을 위한 놀라운 사건인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일어납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를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던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와 함께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형상이 나타나면서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2-3절).
성령이 임하자 그 징표로서 사람들이 각자 난 곳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8, 11절).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떤 이들은 “이 어찐 일이냐”라고 했고(12절), 어떤 이들은 조롱하며 “저희가 새 술에 취하였다”라고 말하였습니다(13절). 이 말이 있은 후에 14절부터 베드로가 거기에 모인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성경은 이것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이후에 말하는 내용들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에 대한 일종의 주석’입니다. 여기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이’가 무엇을 가리킵니까? 이것은 명백하게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가리킵니다.
 즉 여기의 ‘이는’이 가리키는 것은 “여기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이라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바로 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요엘서가 말씀하신 내용, 곧 요엘서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명백하게 요엘서의 본문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때에 성취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말하자면, “요엘서의 예언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겨냥한 것이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간단한 사실을 전제하고 본문을 본다면, 본문이 말하는 내용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렇게 본다면 여기 나타나 있는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라는 말씀이 먼 훗날 일어날 어떤 황홀경의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라는 말씀이  오순절 성령 강림과 함께 성취되었음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것이 성취되었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이 본문이 말하고 있는 이 내용들이 바로 “선지자적 직무”와 관련된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이 완성된 후 모든 직접적 계시행위들은 종결 되었습니다. (히1장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1장 성경 부분을 참조하십시오). 그런데, 요엘서와 사도행전 본문에 나타나 있는 ‘예언’, ‘환상’, ‘꿈’은 모두 구약시대 때 계시를 위해 사용되던 도구들이었습니다. 즉 본문에 나타나있는 “이제 모든 사람들에게 이 도구가 열린다”라고 되어 있는 예언과 환상과 꿈들은  하나님께서 옛 시대(구약)때에 자기 백성들에게 특정인(선지자)을 통해서 계시를 주시던 방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이 말씀은 이 과거 선지자에게 주셨던 직무가 성령과 함께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선포하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여호와께서 그 신을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민11:29)고  말씀하신 것을 읽습니다. 그리고 새 언약이 올 때에 이제 우리는 의문의 법을 가지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이 다 이 계시의 말씀을 각각 가질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 것인데”(렘31:34),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33절)두시는, 즉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33절) 새언약의 성격이 모든 사람에게 다 하나님의 계시를 허락해 주시는 것임을 읽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신약 시대에 와서는 더 이상 제사장이나 선지자나 왕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벧전2:9)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계시를 전달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대신해서 보혜사를 보내시겠다고 하셨을 때, 이 보혜사가 “진리의 영”이시며(요14:17),  이 성령께서 바로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26절)고  하신 그 분이신 것을 압니다. 성경은 성령의 가장 중요하고도 기초적인 역할이 우리를 말씀인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것으로서, “자의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그것을 말씀하시는”(요16:13-14) 분이심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과 17장의 본문이 주님께서 올리워 가신 후 내려보내실 보혜사의 역할을 설명하고 계신 부분임을 주목하십시오).
즉, 새 시대인 신약시대에는 성령이 바로 이 계시 전달의 중추인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요엘서를 이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요엘서 본문은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 이제 모든 사람들이 선지자 되었음을 말씀하고 있다” 이것이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의 의미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덧붙여서, 요엘서의 본문 중 “자녀들은....”의 부분은 그렇다고 치고,  “피와 불과 연기”라든지,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는”것과 같은 본문이 오순절 성령강림 때에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요엘서의 본문이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의 주장 역시 근거 없음을 말해야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본문은 요엘서의 “일부분”을 싣고 있지 않습니다. 두 본문을 비교해 보시면 알겠지만, 사도행전 본문은 요엘서의 본문 “전부”를 싣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본문의 “요엘서 본문이 성취되었다”고 하는 부분에서 역시 “피와 불과 연기”나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피가 되리라”고 한 말씀을 동일하게  인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행2:19,20).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이 직접적인 현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은 나중에 일어날 일이다....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이 부분 역시 사도행전에서 성취되었다고 하였으므로, 그 일이 오순절날에 일어났다고 보아야만 합니다. 지면관계상 여기서 상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이 이런 기상현상이나 무서운 징조를 말할 때,  반드시 직접적인 ‘현상’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즉, 직접 해가 어두워지거나 달이 피가 되지 않았지만, 성경은 오순절 성령강림이 이러한 역사적 대격변임을 저런 표현을 빌어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되겠습니다. (성경에서는 나라가 망한다거나, 역사적 격변이 일어날 때를 기상현상과 결부지어 상징적으로 쓰고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것은 상징적 성경해석과 관련된 다른 글들을 참조하십시오)
여기에 부흥찬양 가사들의 잘못된 부흥관이 얹혀져 있음을 우리는 인식해야겠습니다. 이것이 성경을 보는 눈을 가리는 요소가 됩니다.  요엘서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겨냥해서 씌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간’ 일이라고 해버리면 본문의 다이나믹함이 퇴색되어 버리고 맙니다. 나랑 별로 상관없는 것처럼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러다보니 본문을 찬양가사로 만든 노래들은 성경본문에 없는 내용들을 추가로 삽입해 넣었습니다. 앞에 말씀드린 두 찬양은 모두 이런 삽입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배와 찬양의 노래에는 “큰 부흥 이 땅위에 일어나리라”는 말을 넣었습니다. 전적으로 본문을 격정적 부흥에 대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두 번째 노래에서는 “성령이여 임하소서 우리에게 임하소서”를 넣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자보다 더 나쁩니다. 본문의 내용은 개인에게 임하는 성령에 대해 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상황을 살펴볼 때, 잘못된 부흥관은 우리 한국교회들이 전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돌아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으로는 만족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그것을 “나에게 일어나는 어떤 격정적인 일”이라고 해야 설득력이 생기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저는 전적으로 한국교회가 부흥운동의 역사적 배경 위에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한국교회는 전적으로 웨슬리안적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서 나에게 일어날 어떤 “격정적인 부흥운동”을 바라보는 것 보다, 과거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서 우리가 다 선지자되었다”고 하는 것이 훨씬 더 강력하고 놀라운 사건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요엘서의 본문이 사도행전에서 성취되었다고 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엄청난 의미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놀라운 기쁨에 빠지고, 하나님의 역사에 감탄해야 하는 것입니다. 
* 출처 : http://lovereforme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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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 주의해야할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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