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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주의와 삼위일체 이단사상에 대한 소고

영지주의와 삼위일체 이단사상에 대한 소고
작성자 윤철희
자료출처 http://cafe.naver.com/calgaryreformed.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462
 
시작하면서
토마스 쿤(Thomas Huhn)은 그의 책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사고의 ‘패러다임1) 전환’(paradigm shift) 이란 말을 소개하였는데, 그는 과거의 전통적 사고 방식을 단절할 때만이 과학분야의 중요한 획기적인 발전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이러하듯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다양한 패러다임의 전환속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적 사상과 뉴 에이지 운동 등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이것들을 자신의 신앙의 한 방편인양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교회사적 패러다임 구조 안에서 우리 신앙을 살펴보지 않으면, 현재적으로 우리 신앙의 참과 거짓의 실체를 제대로 이해 하지 못할 것이며, 최근에 방영된 다빈치 코드의 여파속에 먼 미래에 가서는 진정으로 우리 자신의 신앙의 정체성을 상속하지 못하고 잃어 버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따라서, 정통기독교에 가장 심각하게 영향을 끼친 ‘영지주의’와 ‘삼위일체 이단사상’을 교회사적 시각에서 그 잘못된 사상(내용)을 지적, 전파함으로써 후대의 약속의 자녀들에게 선배들로부터 상속되어 온 고귀한 믿음의 유산을 충실하게 계승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거짓 사상들이 전도서 1장 9절~11절에서는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펼치면서
 

  소위 ‘영지주의’(Gnosticism) 이단은 이미 사도시대부터 있었던 이교적 사상으로 종교적 철학적 이원론에 입각한 혼합주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것은 Gnosis(지식)이라는 뜻으로 신비적 초자연 지식을 가리키며, 이러한 신비한 영적 영지(Gnosis)을 통하여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운동이다. 이 운동은 사도행전 8장5절 이하에서 ‘최초의 영지주의자’ 라 할 수 있는 ‘시몬 마구스’가 성경에 나타난 바와 같이 영지주의가 이미 초대교회에서부터 싹을 틔우고 교회에 악한 존재로 성경에 등장한 것으로 살펴볼 수 있다.(사도행전, 고린도전서 등 바울서신, 요한서신 등)
 

  이러한 영지주의자들로서 ‘바실리데스’(Basilides140년사망, 영지주의 창시자), ‘마르키온’
(Marcion 160년 사망)과 ‘발렌티우스’(Valentinus,100~175,영지주의조직신학자)가 있는데, 특히 ‘발렌티우스’에 의해 설립된 로마학파와 알렉산드리아학파들이 2~3세기의 그레코-로만(Greco-Roman) 세계(그리스 로마제국)에 그 절정과 그 번영을 나타내면서부터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2)
 

  이 영지주의는 이원론적 종교체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물질은 악하고 영은 선하다고 하며, 구원은 비의적 지식, 즉 영지(靈智 Gnosis)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영지주의 사상에 의하면, 천상의 세계가 있는데 이곳을 이른 바 ‘플레로마’(pleroma) 라고 한다. 이 장소는 천상의 존재인 이온들이 존재하는 영적인 곳이라고 하는데, 이 천상의 나라는 선하여 하나님이 중앙에 있고 그 주변에는 이온들이 동심원을 그리며, 존재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은 이 세상에 죄악이 기득차 있으므로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를 보냈다고 하면서 성육신한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은 외모로는 사람이지만 실제로는 진리의 이성의 자녀이므로(가현설/Docetism3) 주장) 그가 소개한 천상의 지식을, 즉 영지를 알면 천상으로, 즉 플레로마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이 구원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러한 영지주의 사상에 깊이 영향을 받아 등장하는 것이 미르키온과 몬타누스이다. 이것은 영지주의 자체가 이단이 아니지만 이단을 형성하도록 심각한 영향을 끼친 것은 그후 교회역사 이후에 계속하여 영지적 영향하에 기독교가 놓여 있는 실례를 통하여 우리는 재차 확인 할 수 있다.
 

  이 영지사상은 첫째 금욕주의적 성향을 둘째, 신앙이 어린 자와 완전한 자가 있다고 하여 카리스마(은사적)적 기질을 가지고 있으며, 셋째 철학적 사색의 사고 틀을 구성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교회역사에 걸쳐서 영지주의 영향을 받지 않은 이단은 거의 없었을 정도 이었다. 이 사상은 마르키온과 몬타누스 외에 삼위일체의 신학적 문제를 일으킨 아리안주의 논쟁까지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이제 삼위일체의 이단사상을 정리해 보기로 하겠다.
 

  ‘삼위일체’(Trinity)라는 말은 ‘저스틴 마터’와 ‘이레니우스’(약125~202년)가 ‘삼위조’라고 표현하던 것을 교부이며, 변증가인  ‘터툴리안’(약160~230년)이 처음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레니우스’가 ‘터툴리안’보다도 더 한껏 ‘영지주의’를 비판하였다. 그리고 초대 교부들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세 위격의 하나님을 동일한 분으로 강조하였으며, 특히 ‘오리겐’(약185~254년)은 성부, 성자, 성령은 모두 위격으로 신의 내적인 관계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삼위일체가 항상 문제되는 것은 위격의 문제이다. 양태론적 단일신론을 주장하는 사벨리안주의와 양자론적 단일신론(monarchianism)을 주장하는 아리우스주의(루키안,오리겐주의)이다. 또한 양태론을 주장한 '프락세아스'(Praxeas)는 어느정도 ‘영지주의’에 관해서 답변을 줄 수 있었기 때문에 '양태론'(modelism)을 선호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양태론은 한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으로, 성자 하나님으로, 성령 하나님으로 시대별로 각각 모습을 달리하여 나타난다는 것이다, 마치 태양자체를 성부로, 빛을 성자로, 열을 성령으로 표현하는 것과 같이 시대별로 가면을 쓰고 나타나 사역을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잘못된 설명이다.
 

  이에 반하여 '양자론'(adaptionism)이 있는데, 20세기 자유주의자들이 주로 애용하는 신학적 형태이기도 한다. 이 양자론은 사모사타의 바울 다음으로 안디옥의 루키안과 그의 제자 ‘아리우스’(약250~336) 에게로 이어진다. ‘아리우스’는 철저한 금욕주의자이었으며, 교회의 순수성을 강조하다보니 그 이상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찾게 되는데, 그는 수도적 삶을 사는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도덕적인 삶을 살면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유혹을 갖게 되는데, 그의 사상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하면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사람들에게 제시하게 되었다. 마치 이것은 육적인 삶을 무시하고 거룩하여 지려고 하는 욕망에서 즉, 영적인 것만을 추구하려는 일종의 금욕주의로서, 앞서 마찬가지로 ‘영지주의’적 영향을 받고 있다 하겠다.
 

  다시말하면, 양자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대신에 인성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었는데 로고스와 성부 하나님은 동일한 본질(homoousius)이 아니고 어떤 계기로 해서 하나님이 되었다는 견해이다. 성자는 성부보다 열등한 자로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유사본질(homoiousius)을 주장하는, 즉 사람이 신적인 존재로 입양되었다는 매우 심각한 구원론적 이단이다. 그렇지만 한편, 저 유명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신앙인 ‘아타나시우스’(약296~373)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이 구원론적 이단은 삼위일체 논쟁과 관련하여 1차 ‘니케아 범종교회의’(325년)에서 이단으로 판명받게 되어 아리우스는 정죄받게 된다. 그러나 다시 아리우스는 당시 콘스탄틴 대제를 부추겨서 결국 아타나시우스를 추방시킴으로써(336년) 그후 6번에 걸친 20년의 긴 세월을 홀로 생명을 담보로 평생을 지내게 된다. 아타나시우스가 왜 그렇게도 삼위일체 사상을 지키려고 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이시라면, 우리의 구원이 사라지기 때문에 그는 홀로 그의 사상을 지켜냈던 것이다.4)
 

  그렇다면, 우리는 성 삼위일체(Trinity)론이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내적 본질이기에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는 이해하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신적 신비로서 경배를 받아야 할 분이 오직 성 삼위임을 말하는 것으로써 삼위일체를 결코 어느 정도 이해한다는 소위, 'Fideism'(권위적인 말씀만을 의지하는 사상)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에 대하여 알고 경험하기를 원하는 기독교들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하다 하겠다. 속죄론을 즉, 구원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독론을 이해해야 하듯이 기독론을 이해하기 위해 바른 삼위일체론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바른 삼위일체론을 이해할 때만이 우리의 궁극적인 관심 주제인 구원을 바로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위일체에 대한 소결론으로 본질적인 면에서 삼위 하나님이 동일하시기에 ‘일체’, 즉 한 분 하나님이라고 우리는 부르고 특성 면에서는 삼위 하나님이 구별되시기에 ‘삼위’, 즉 삼위 하나님이라고 우리는 부른다. 이것은 세 특성을 지닌 동일본질(homoousius)의 하나님을 우리는 경험하기 때문이며,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은 사역면(일하심에) 있어서만 성부 하나님은 창조하시고, 성자 하나님은 수행하시므로, 성령 하나님은 적용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코 역할부담으로 삼위의 의미를 보면 이단이 된다. 다시 강조하건데 경륜적 삼위일체의 구속의 일하심 가운데서 세 분의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본질에서는 동일한 한 하나님이신 것이다. 이후 삼위일체논쟁은 3차(431년), 4차 칼케돈 범종교회(451년)에서 단성론(Monophysitism)적 이단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그 이전에 3명의 캅파도키안인, 대 바실(330~379), 바실의 남동생 닛사의 그레고리(약386년 사망), 그리고 바실의 친구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약390년 사망)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나가면서
 

   이제까지 영지주의에서 출발된 대표적 이단사상인 삼위일체론에 대한 부분을 살펴보았다. 이단의 대명사인 ‘아리우스안주의’(Arianism)가 왜 잘못된 사상인지가 분명해졌다. 교회사적으로 주의 있게 살펴보면, 하나같이 이것들은 ‘영지주의’에 영향을 받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영지주의를 초대교회사에만 국한 시켜서는 안되는 것은 영지주의 그 자체가 이단은 아니지만, 이단을 형성하도록 막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우리는 영지주의를 다른 이단들보다도 더 심각하게 받아 들이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초대교회에 마르키온과 몬타누스가 이단으로 등장하였고, 이후 아리우스 이단으로, 수도사들이 단성론에 깊은 매력을 느낀 것도 바로 이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육적인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단성론으로써, 이것이 영지주의적 기도원 주의와 은자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래서 초기 초대교부(church father)들은 이 영지주의에 대비하여 이레니우스를 비롯한 다른 교부들은 바짝 긴장하며 대응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 영지주의자들은 기독교인임을 고백하면서도 초대교회의 정통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양상(신앙)을 고수하였기 때문에 더 더욱 철저히 변증하였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포스트 모더니즘 사상’과 ‘뉴 에이지 운동’은 바로 영지주의 부활을 알리는 것을 의미하고, 중세의 많은 신비적 이단들인 ‘보고밀’(Bogomils), 서방 마니교의 알비파인 ‘카타르‘ 그리고, 1906년에 시작된 은사운동(오순절)과 1960년대의 카리스마운동, 1980년대 빈야드운동(존 윔버,John Wimber 1934~1997)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영성운동인 관상신학(기도)으로 2천년 역사가운데 보이지는 않는 투명인간적 암적 존재로써 자신의 실체를 계속 탈바꿈하며, 우리의 신앙을 위협하는 사단적 존재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1945년에 ‘나그 함마디’에서 발견된 영지주의 문서는 다빈치 코드로 영화화 하여 우리의 신앙을 침탈해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사단적 영적 위기 가운데서 이 시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초대교인들이 가졌던 신앙에서 교훈한 것과 마찬가지로 기독교 신앙은 그분(예수님)의 가르침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당신 자신의 가르침인 바로 그 분의 생애, 대속의 죽음, 부활, 재림을 믿는 것만이 더욱 요구된다 할 것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이단들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5~37)
 
< 각 주 >
  
1) 패러다임이란 말은 헬라어 파라디그마(paradigma)에서 유래한 것으로 실제의 어떤 측면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사고 유형이나 사고 지도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우리의 사고의 준거틀, 즉 패러다임을 통해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바라보는 방법 사고 내용을 형성해 준다는 것이다.
 

2) 제45차 한국복음주의 신학회 ‘파코미안 수도원운동에 끼친 영지주의’ 발표 내용중 발제자 국제신대 라은성 교수

 
3) '……인 듯하다' 라는 뜻의 헬라어 dokein 에서 나온 말로 그리스도가 이 땅에 있을 때 유령 같은 존재였을 뿐 실제로 육체를 갖고 있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한 이단 종파의 이론이다.
 
4) ‘정통과 이단’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기독교사상사 교재 24P 추가 설명 - “아타나시우스가 고집스럽게 삼위일체를 주장하고 있는 중에 프랑스 지역 보아띠에르의 힐라리 라고 하는 분도 이것을 계속해서 같이 고수했다. 밀라노 감독 암부로스(어거스틴의 스승)도 이것을 계속 고수했다. 마치 한국교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할 때 한상동 목사님이나 주기철 목사님 등 숲속이나 동굴이나 외딴 섬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외롭게 신앙을 지켰던 분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출처] 영지주의와 삼위일체 이단사상에 대한 소고 (캘거리 개혁신앙연구회(CKRIRF)) |작성자 주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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