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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종교적 다원주의의 경향

10. 종교적 다원주의의 경향
자료출처 http://blog.daum.net/kkho1105/3327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실제적 기초는 신학적 포용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오늘날 이 운동은 이방 종교들을 포함하려는 혼합주의 또는 종교적 다원주의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분석
1. 이방 종교 지도자들을 초청함
1983년 세계교회협의회의 뱅쿠버 총회는 세계교회협의회 35년 역사상 최초로 힌두교, 불교, 유대교, 이슬람교, 시크교 등 다섯 개 세계종교들의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공식적으로 연설케 했다.
 
1998년 6월, 미국의 알라바마주 헌츠빌의 ‘종교간 선교봉사회’는 그 월례회에서 미합중국 장로교단 소속 페이스(Faith) 장로교회에서 ‘거룩한 소리들’에 대한 한 프로그램을 발표했다(Huntsville Times, 1998년 7월 11일). 바하이교, 불교, 유대교, 이슬람교 및 세 개의 ‘기독교’ 교단들을 포함하는 종교 대표자들은, 소리가 그들의 예배 형식에서 가지는 역할에 대해 발표했다. (Calvary Contender, 1998년 8월 1일.)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에서 매년 모이는 전국 기도의 날의 책자에 의하면, “모든 종교들에 속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전통들에 따라서 참여하도록 격려된다. . . . 전국 기도의 날은 모든 신앙의 사람들이 그들의 이해하는 하나님께 기도하도록 만들어졌고 의도되었다.” 그 모임의 공동의장은 제임스 답슨 목사의 부인 숼리와 빌 브라이트의 부인 보네트이었다. 촬스 콜슨은 전국자문위원회에 들어 있고, 랍비 조슈아 하버만, ‘신부’ 로버트 시로코, 및 제임스 케네디는 연결고리들이었다. (Calvary Con- tender, 1999년 6월 1일.)
 

2. 대화의 방식을 강조함
세계교회협의회는 타종교들과의 대화의 방식을 강조하며, 그들에 대한 비판을 회피하고 오히려 그들로부터 진리의 통찰력을 얻는다고 주장한다. 세계교회협의회 뱅쿠버 총회는 선언하기를, “우리는 우리가 증거하는 예수의 탄생, 생애, 죽음, 부활의 독특성을 주장하는 한편, 다른 신앙들(종교들)의 사람들 가운데서의 종교적 진리의 추구에 하나님의 창조적 사역이 있음을 인정한다. . . . 대화로부터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세상에 어떻게 활동적이신지를 더 분별하고, 다른 신앙들의 사람들이 궁극적 실재(존재)에 대해 가지고 있는 통찰들과 경험들을 그것들 자체 때문에 감사하기를 기대한다”고 한다(Gathered for Life, p. 40).
세계교회협의회의 종교간의 대화 위원회 의장인 더크 멀더(Dirk C. Mulder)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하나님의 영께서는 모든 곳에서 사역하지 않으셨는가 그리고 하나님의 계시는 항상 어떤 방식으로 구원적이지 않는가? 이 질문들은 아직도 우리에게 있고, 그 대답들은, 대화에서 우리가 단지 우리의 신앙을 더 잘 증거하기 위하여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알고 있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새로운 빛들을 가지기 위하여 배우고 들어야 한다는 확신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The Ecumenical Review, 38 <1986>, 215).
세계교회협의회 종교간의 대화 위원회의 지도자인 죤 테일러(John Taylor)는 대표자들에게 말하기를, 모든 종교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데 협의회 회원들 가운데 일치가 있다고 하면서, “이슬람교도들과의 대화가 이슬람교도들에 대한 선교 활동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 방해된다. 우리는 이슬람교도들 가운데서의 모든 선교적 노력들을 중지해야 한다. . . . 많은 유대교인들이 우리를 제발 그냥 홀로 놔두라고 말한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태도는 그것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Christian News, 1983년 9월 5일, 7쪽; Province [of Vancouver], 1983년 7월 27일).
 

3. 기독교의 절대성을 부정함
더욱이, 세계교회협의회의 지도자들 중에는 기독교의 절대성을 명백히 부정하는 자들이 있다. 세계교회협의회 종교간의 대화 위원회 의장인 더크 멀더는 “당신은 불교인이나 힌두교인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느끼십니까?”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대해 “물론이죠, 물론이죠”라고 대답하였다(M. H. Reynolds,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The Cup of the Lord or the Cup of Devils?, p. 8).
세계교회협의회의 타종교들과 이념들과의 대화 위원회 의장인 웨슬리 아리아라자는 세계교회협의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출판한 성경과 타종교인들(S. Wesley Ariaraja, The Bible and People of Other Faiths, 1985)이라는 그의 책에서 기독교의 절대성을 명백히 부정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절대적 의미에서의 진리는 어느 누구도 파악할 수 없고, 우리는 예수에 관한 기독교의 주장들이 성 요한, 성 바울, 그리고 성경이 그렇게 주장하기 때문에 절대적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고 한다(p. 27). 그가 기독교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성경이 명확한 기독론을 가지고 있지 않고, 서로 다르고 모순된 기독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Ibid., pp. 21, 22, 67), 성경의 언어는 신앙의 언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Ibid., pp. 6, 9, 24, 26).
또한 그는 이교도들도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회개해야 할 자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기독교의 신, 힌두교의 신, 이슬람교의 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 힌두교적 이해, 이슬람교적 이해가 있을 뿐이다. . . . 타종교인도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우리는 형제 자매요, 순례자이지 이방인이 아니다. 우리는 한 창조주 하나님께 속한다. . . . 힌두교인은 회개의 대상이 아니다. 그는 동료 순례자이다”(Ibid., pp. 9-11, 56). 심지어, 그는 기독교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것은 전도에 가장 큰 방해거리라고 말한다: “만일 당신이 나에게 참된 증거의 가장 큰 방해거리이었던 한 가지 요인을 골라내라고 요청한다면, 나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에 대해 하는 이 절대적 주장들이 그것이라고 말할 것이다”(Ibid., p. 53).
1990년 1월, 세계교회협의회의 살아 있는 신앙들의 사람들과의 대화 분과의 스위스 바아르에서의 모임은 15개국으로부터 온 21명의 헬라 정교회, 개신교회, 천주교회 신학자들과 전문가들이 참여하였고 ‘종교적 다원성: 신학적 관점들과 선언들’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작성하였다(Marlin VanElderen, "Consultation Speaks on Plurality," Christian News, 1990년 2월 5일, 1쪽).
이 문서에 의하면,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모든 나라들과 백성들 가운데 항상 하나님의 구원적 임재(臨在)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문서는 선언하기를, 다른 종교적 전통들의 ‘추구와 발견 속에서 하나님께서 계셨다,’ ‘그들의 가르침에서의 진실과 지혜와 그들의 삶에서의 사랑과 거룩은 . . . 성령의 은사이다,’ ‘그들이 우리와 더불어 정의와 자유를 위해 싸울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계시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그 문서는, 종교적 다원성을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께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성취를 기다리면서 하나님과의 그리고 이웃들과의 우리의 만남을 깊게 할 기회로 본다. 또 그 문서는 말하기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길 외의 다른 길들의 추종자들 가운데서 선함과 진실과 거룩을 보고 경험했기 때문에, . . . 우리는 우리 자신이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명백한 인격적 의탁에 제한시키는 신학을 넘어서서 나아갈 필요성을 인식한다는 것을 발견한다”라고 한다. 그 문서에 의하면, 그 세계적 차원이 십자가와 부활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구원적 신비는 “하나님의 계획이 그 성취를 향해 펼쳐질 때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들로 매개(媒介)되고 표현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우리 밖에 있는 자들이 그들의 구체적 상황 속에서 그리고 그들을 지도하고 감동하는 종교적 전통들의 구조 안에서 성실하고 진실한 삶을 살 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법들로 그들에게 주어질 수 있을 것이다.” 또 그 문서는 주장하기를, 성령께서는 “살아 있는 신앙들의 사람들의 삶과 전통들 속에서 역사하셨다,” “우리가 다른 종교들의 진리와 선을 해석할 수 있는 것는 바로 성령의 세계 안에서이다”라고 하였다. (VanElderen, p. 15.)
1991년 호주 캔버라에서 열린 7차 총회에서는 한국 이화여대의 조직신학교수 정현경은 주제 강연에서 한(恨)을 안고 죽어간 영들, 예를 들어 하갈의 영, 우리아의 영, 입다의 딸의 영, 헤롯에게 죽임 당한 어린 아이들의 영, 잔다르크의 영, 십자군 파병 때 죽어간 백성들의 영, 지구상의 토착민들의 영, 나찌 시대에 가스실에서 죽은 유태인들의 영, 히로시마와 나카사끼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죽임 당한 자들의 영, 광주에서, 천안문에서, 리쿠니아에서 죽은 자들의 영, 그리고 심지어 인간의 탐욕으로 파괴되고 착취된 땅과 공기와 물의 혼 등을 부르는 초혼(招魂)적 행위, 즉 샤마니즘적 행위를 하였다(기독교 연합신문, 1991년 3월 17일, 7쪽; 3월 24일, 7쪽; 3월 31일, 7쪽).
그는 또 독일 영화인들 앞에서 말하기를, “하나님은 나의 문화에서 부처를 통해, 무당들을 통해 . . .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하신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해방-생존-혼합주의의 영’이라고 고백했고, 또 말하기를 “나는 여러분처럼 혼합주의자이지만, 나는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고 했다. (Christian News, 1992년 2월 17일; Calvary Contender, 1992년 4월 1일.)
한국신학대학 조직신학교수인 김경재는 정현경 교수의 캔버라 주제 강연에 대해 동감하면서 이렇게 썼다: “영원하신 그리스도는 역사적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서 유대땅에 화육하셨지만, 영원한 그리스도로서 연민의 사랑과 지혜의 영으로서 모든 문화 속에, 우리 조상들 속에 현존하셨다는 신앙고백이다. 기독교 전래 이전 불교와 유교를 믿고 살고간 우리 조상들은 지옥갈 우상숭배를 하고 간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혹은 그림자처럼 우리 가운데서 창조와 구원과 속량의 일을 행하여 오셨다고 믿고 신앙고백하는 것이 정 교수의 신앙고백이다. 필자는 그의 신앙고백에 동의한다”(김경재, “‘생명의 신학’ 위한 성령론의 복귀,” 기독교 연합신문, 1991년 3월 31일, 7쪽).
 
1998년 6월, 미국에서는 약 2천명의 예배자들이 1993년 95세로 사망한 노만 빈센트 피일의 100주년 기념을 축하했다. 피일은 1984년 필 도나웨 프로그램에서 말하기를, “거듭나는 것은 필요치 않다. 여러분은 하나님께로 가는 여러분의 길을 가지고 있고 나는 나의 길을 가지고 있다. 나는 한 신도교 사당에서 영원한 평화를 발견했다. . . . 그리스도는 그 [여러] 길들 중의 하나이다. 하나님은 어느 곳에나 계시다”라고 하였다(Christian News, 1998년 6월 8일).
피일은 1980년 한 몰몬교 총회장 생일축하모임의 주 연사이었고 몰몬교 지도자들을 칭찬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 신성, 및 부활을 부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빌리 그레이엄과 기타 복음주의자들에 의해 찬사를 받았다. (Calvary Contender, 1998년 7월 15일.)
 
오늘날 주의해야 할 종교 다원주의적, 에큐메니칼 지도자의 한 사람은 로버트 슐러이다.
그는, 복음주의 기독교를 조롱하는 기독교 일치 학교의 (뉴 에이지) 연례대회를 위해서,
문선명과 함께 통일교회 행사들에서,
그리고 몰몬교 성전에서의 종교간의 기도 조찬에서, 주강사로 나타났다(Vantage Point, 1998년 11월호).
 뉴 에이지 운동가들, 몰몬교인들, 그리고 천주교인들은 그의 수정 대성전 강단에서 연설했었다.
 그의 가르침들과 행동들의 일부는 자유주의적이고 후(後)현대주의적이고 이단적이다(Calvary Contender, 1999년 1월 1일).
그는 오래 전에 죄에 대한 바울의 교훈과 이별을 고했고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자신을 힌두교인들과 이슬람교인들과 단절시키기 때문에 그 이름으로 더 이상 불리우기를 원치 않는다(The Discerner, 1999년 6월호).
 그는 그리스도께서 천국 가는 유일한 길이요 기독교가 유일한 구원 신앙이라고 설교하지 않는다(Christian News, 1999년 7월 19일). (Calvary Contender, 1999년 8월 15일.)
2000년 1월, 김경재 교수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회보에 기고한 “새 천년은 아레오바고 영성시대”라는 글에서,
기장 교단이 불교와 심층적 대화를 통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뚜렷하게 하고
동아시아의 위대한 영성과 창조적 지평 융합을 이루자고 주장하였다(“기장, ‘종교다원주의 논란,’” 기독신문, 2000년 4월 19일, 19쪽).
 

비평
 
1. 대화의 방법에 대해
성경적 전도 방법은 단지 대화가 아니고, 주로 그리고 일차적으로 선포와 가르침이다. 마태복음 4:23,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마태복음 28:18-20,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 . .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디모데후서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2. 기독교의 절대성을 부정함에 대해
아리아라자의 결론은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결론이며, 이러한 성경 이해는 배교적(背敎的)이며 이단적이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간에 교회가 속화되고 부패될 때마다 우상숭배적 혼합주의가 유행했다. 그러나 사두개적 불신앙을 버리고 참된 신앙의 눈으로 성경을 보면, 성경의 언어는 단순히 신앙의 언어만이 아니고, 곧 진리의 언어이며, 성경의 신론과 기독론은 결코 애매모호하지 않고 명확함을 알 수 있다.
출애굽기 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신명기 4:39, “그런즉 너는 오늘날 상천 하지(上天下地)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아 명심하라.” 이사야 43:10, “. . .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이사야 45:6,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시편 96:5, “만방의 모든 신은 헛 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사도행전 4:12,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디모데전서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3. 이방 종교들에 대한 성경적 평가
성경은 이방 종교들이 모두 헛됨을 밝히 가르치고 있다. 기독교의 절대성을 가르치는 앞에서 인용한 구절들은 이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출애굽기 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이사야 45 :6,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시편 96:5, “만방의 모든 신은 헛 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디모데전서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더욱이, 성경은 이방 종교들이 마귀적이며,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여기에 전도의 필요성이 있다. 고린도전서 10:20,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에베소서 2:2, 3,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요한일서 5: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요한복음 8:24, “내가 그인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마태복음 28:19,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디모데후서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결론
결론적으로,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은 매우 비성경적인 운동이다. 교회의 일체성이라는 목표는 좋지만, 이 운동이 실제로 취하는 교회 일체성의 개념은 명백히 비성경적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이 실제적으로 취하는 교회 일체성의 기초는 신학적 포용주의이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이 기독교계를 변질시킨 배교와 혼란의 시대에 신학적 포용주의의 태도는 자유주의 이단 사상들을 포용하는 명백한 잘못이요 악이다. 또한, 에큐메니칼 운동은 천주교회에 대해서 포용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개신교회의 종교개혁의 유산을 뒤엎는 비성경적인 배신의 행위인 것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강조되는 성례의 개념도 정당하지 않다.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의 성례관은 성례주의적이며, 그것은 천주교회의 오류로 돌아가는 일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조직체적 관심 즉 한 세계교회의 추구도, 자유주의와 천주교회를 배제하지 않는 한, 용납할 수 없고, 또 비록 이런 이단적 요소들을 배제한 연합이라 할지라도 초교파적 연합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본다. 심지어 에큐메니칼 운동은 타종교들에 대해 포용적 경향 즉 종교적 다원주의 혹은 혼합주의의 경향을 명확히 보이고 있다. 이것은 1983년 뱅쿠버 총회 이후 더욱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구약성경에서 볼 수 있는 배교와 타락의 모습이다. 이것이 어떻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연합 운동이겠는가?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은 비성경적이고 인본주의적인 바벨탑 운동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믿는 신실한 교회들과 성도들은 에큐메니칼 운동에 참여하지 말고, 그것으로부터 분리(分離)되고 성별(聖別)되어야 한다. 한국에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와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측)와 대한기독교감리회(기감측) 안에 있는 진실한 성도들은 그 교단들로부터 나와서 보수적 교회들을 설립하든지 아니면 보수적 교회들에 가입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시대의 배교와 타협하지 말고, 옛 길, 좁은 길을 지켜야 한다. 성경을 믿는 교회들과 성도들은 옛신앙의 순수성(純粹性)을 지켜야 한다.
예레미야 6: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
고린도후서 6:14-18,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 . .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be separate, 분리하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에베소서 5: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6세기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이 위태하게 되는 그런 사랑과 일치는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했고, 20세기 초 미국 북장로교회의 신앙의 투사 죤 그레셤 메이천은 현대 교회의 문제점을 바로 찔러 말하기를, “오늘날 가장 나쁜 죄는 당신이 기독교 신앙을 동의하고 믿는다고 말한 후 기독교의 기본적 사실들을 부인하는 자들과 협력하고 타협하는 것이다”라고 했다(William Ashbrook, Evangelicalism, pp. 31,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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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 주의해야할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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