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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일치운동 종교다원주의 비성경적 처사

교회일치운동 종교다원주의 비성경적 처사
 Rapprochement
 튤립 교육 선교회
김명도 교수
www.tulipministries.com

며칠 전 어느 목사님 한분이 저에게 이 메일로 질문을 해 온 적이 있다.
“Rapprochement”  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 보는데 무슨 의미인가? 라는 질문이었다.
많은 기독교 성도들이 모르는 새로 나온 신학용어 중에 "라프러쉬망 (Repprochement) 이라는 말이 있다. 아마도 이 새로 나온 말을 아는 사람은 전문가 말고는 별로 없을 것이다.
이 말은 원래가 프랑스 말이다.  물론 프랑스 의 College de France 교수부장을 하면서 “Follie et Deraison (狂氣와 文明) 이라는 책을 써서 세상에 알려진 Michel Foucault 이나 그의 철학을 열심히 추종하는 Richard Rotty 와 Jacques Derrida, Jean Francis Lyotard 와 같은 철학자들이 Postmodernism 의 전위대로 신세대에게 각광을 받는 것을 감안한다면 프랑스에서 이런 새로운 단어가 등장하는 것은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 Jean-Paul Sartre 나 Albert Camus 가 모두 프랑스의 실존주의자들이 아닌가? 물론 L'Etranger(이방인) 의 저자 Camus 는 자신이 Sartre 와 같은 실존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했어도
학계에서는 그를 Sartre 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본다.
프랑스와 이란, 터키 미국의 UC Berkeley 등 학교에서 강의한 Foucault 는 동성연애자로서 그의 목적은 기독교의 전통적인 결혼세습을 타파하고 사회의 질서를 바꾸자는 것이다. 그의 우상은 기독교를 타파하려던 19세기의 독일의 철학자 Friedrich Nietzsche 인데 그 역시 동성연애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우리들에게 Nietzsche 는 "사신론 (신은 죽었다는 학설, 死神論)" 로 유명하지만 Nietzsche 는 반기독교적인 동성연애에도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까닭에  동성연애자인 Foucault 는 그를  우상화 하며 그의 서적을 탐독했다.
Rapprochement  이라는 말은 요즘 신학 서적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단어 인데 그 말의 뜻은 "상호호혜주의(相互互惠主義)" 인데 흔히 미국에서는 "political correctness" 란 말로 알려졌다.  평신도를 위해서  이 단어를 쉬운 말로 풀이하다면, "절대적인 진리는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남을 비판하지 말고, 아무리 상대방이 잘못을 범한다 해도 절대로 비방하거나 비평하거나 고치려고 해서는 안되며 서로 사랑으로 허물을 덮어 주고 ‘평화스럽게’ 지내라" 라는 내용이다. 
오늘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이 나태해 지고 기독교의 질서가 문란해지고 따라서 사회의 윤리관과 도덕관이 무너지는 것은 바로 여기에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참 교회의 세 가지 특징은 첫째, 말씀의 바른 전파가 있어야 하고,  둘째, 성례 (Sacrament, 세례와 성찬식) 가 바로 시행되어야 하고 셋째, 권징 (discipline) 이 바로 되어야 하는데 Rapprochement 철학은 이 세 가지를 모두 부인한다.  반드시 성경 말씀만이 진리가 아니며 이슬람의 코란경이나 힌두교의 Upanishad 나 Bhagavad Gita 나 Veda 나 유교의 사서오경(四書五經) 이 모두 진리이므로 성경만을 강요해서는 안 되며 이것은 "politically incorrect" 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성례에 대한 태도도 그것이 신앙생활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라고 반문한다. 권징을 기피한다. 누가 누구를 권징 하는가?  모두 같은 죄인이 누구를 정죄하는가? 하는 것이니 교회의 질서를 송두리 채 파괴하려는 악령의 계교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놀랍게도, 일반 교인들이 모르는 사이에,  이런 철학 사상이 교회에 깊숙이 파고들어 왔다.  이제 교회는 영력을 잃어간다.  주께서 피를 흘려 사신 주의 몸 된 교회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어느 누구도 이런 사탄의 계교를 모르고 있으며 모르는 까닭에 대항할 수도 없고, 따라서 경계하지도 아니하며 방비할 수도 없는 상태이다.  참으로 무서운 사상이 기독교를 파괴하려든다.
원래 구라파의 모든 대학교들은 성경을 가르치며 신학생들을 양성하기 위해서 세워졌었지만 오늘에 와서는 오히려 하나님에게 도전하는 세속적 기관으로 전락했다. 화란의 Leyden 대학교는 종교개혁의 불길 속에 불타오르는 화란의 개혁가들이 개혁주의 신앙을 가르치기 위해서 세워졌지만 James Arminius 이후의 Leyden (미국식 표기법은 Leiden) 은 본래 목적에서 많이 변질되었다. 요즘 신학교 중에 변질되지 않고 순수하게 개혁주의 신학을 가르치는 학교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그래서 요즘 양식있는 젊은 신학지망자들 사이에서는 신학교에 입학하기를 꺼리고 개인 mentor 를 택하여 그 분에게서 신학에 필요한 모든 학문을  철저하게 개혁주의로 배우는 경향이 일고 있는데 이는 불행중다행한 일이다. 그릇된 신학을 가르치는 학교에 가서 그릇된 교수에게서 그릇된 신학을 전수 받는 것보다는 그 편이 훨씬 좋을 것이다. 미국의 Trinity Foundation 은 이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가끔 외국에 거주하는 분들이 필자에게 미국내 좋은 신학교를 소개해 달라고 하면 자신 있게 소개할 학교가 생각나지 않는다.
미국에서도 Princeton 대학교 (미국의 제1차 각성운동의 여파로 1746년에 세워짐) 도 William Tennent 의 아들 Gilbert Tennent 와 Jonathan Dickinson  등이 목사를 양성하기 위해 세웠으나 지금은 많이 변질되어  "도마 복음서 (Gospel According to Thomas, 영지주의 복음서) 에 입각하여 4복음서를 다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수를 임용할 정도가 되었고,  1636년에 세워져서 그동안 John Adams, John Quincy Adams, Ted Roosevelt, F.D.Roosevelt, Rutherford B. Hayes, JFK, George W. Bush, B.Obama 등 8명의 미국 대통령을 배출한  하바드 대학도 당시의 숭고한 목적인 목회자 양성과는 달리 그 목적이 많이 변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Harvey Cox 목사는 Secular City (세속도시. 1965) 라는 책을 써서 물의를 야기했던 분인데 바로 Harvard 신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작년에 “Future of the Faith” 라는 마지막 책 출간과 함께 은퇴 했다.  그의 “세속도시” 는 “예수를 교회에 가두어 두지 말라” 고 가르치는데 (p.206), 독일의 Friedrich Bonhoeffer 의 신학과 일맥상통한다. 
John Calvin 의 프랑스에는 지금 정통신학이 있는가?  당시의 유그노족 (Huguenots) 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오늘의 영국에 참 개혁주의 교회가 있는가?  Oxford 대학 교정에서 순교한 Cambridge 대학 교수 Thomas Cranmer의 영국도 오늘에 와서는 다른 나라처럼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 영국 국민 중 7 퍼센트만이 교회이든, 불교의 사찰이던, 이슬람교의 모스크에든 출석한다. 교회에 정규적으로 출석하는 인구는 영국 전체 인구의 2 퍼센트 정도이다. 지금 프랑스는 황량한 벌판 갔다. 마치 소아세아 7교회가 서 있던 성터 모양과 같다.
David Noebel 교수의 ,000 면 가까운  방대한 저서 'Understanding the Times' 라는 책은 구구 절절히 공감이 간다. Patrick Buchanon 의 The Death of the West 라는 책도 마찬가지이다. 서구 문명은 파멸올 치닫고 있다. 서구 문명이 무엇인가?  기독교 의 철학에 바탕을 둔 문명이 아닌가?  기독교를 파괴하려는 무리는 부지기수이다. 놀라운 것은 옛날의 자유주의가 이 마지막 때는 pagan spiritualism (이교도적 심령주의) 로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것인데 이것은 바로 필자가 늘 주장하는바 바로 옛 영지주의 가 다시 마지막 때 부활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마지막 때는 "미혹의 영"을 조심하라고 (마24) 경계하고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대이다.  우리들 중 이단이 들어와도 그 이단들을 사랑으로 눈감아야하며 비판하거나 대적해서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안 되는 것이 오늘 공부하는 "라프러쉬망" 이란 새로 대두된 무서운 철학 사상임을 알아 두자.  이 말을 다른 말로, "politically correct" 라고도 한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은 이러하다: “진리를 옳게 분별하여 자신을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세우기를 힘쓰라” (딤후 2:15). 진리는 진리이고 거짓은 어디까지나 거짓이다. 진리는 하나님에게 속하고 거짓은 마귀에게 속한다. 거짓을 눈감아 줄 수는 없다. 이것이 성경의 진리이다. 그러므로 “교회일치 운동”이나 “종교다원주의”는 하나님이 용서치 않는 가장 비성경적 처사라는 말이다. 무서운 “라프라쉬망” 철학을 경계하자  -끝-
 
자료출처
http://tulipministries.com/bbs/view.php?id=theology&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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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 주의해야할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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