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멘탈리티의 핵심 키워드 : 신성한 내면아이, 구상화, 의미와 통일성,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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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벨론 포도나무

3. 바벨론 포도나무
 
구약은 역사적인 기록으로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계시이다. 구약은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발생한 중요한 사건들을 우리에게 알려 주기 위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후부터는 우리는 ‘은혜의 시대’로 알려진 역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신약은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인 복음을 우리로 하여금 이해할 수 있도록 주어진 것이다. 아무튼 성도들이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전반적인 계획을 이해하고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는 구약을 참조하는 것도 참으로 중요하다. 구약 및 신약의 모든 성경을 바탕으로 삼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려는 전반적인 그림을 볼 수 없게 된다.
 
구약을 읽을 때 명백하여지는 것은 사람이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을 거부하고 자기들 멋대로 살아갈 때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성경은 누차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순종해야 참된 축복을 누릴 것을 언급하지만, 인간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비성경적인 다른 요소들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우리는 이미 인간을 타락시켰던 사탄의 계획을 보았다. 타락의 결과로 인류에게 저주가 임하게 되었으며 그 저주는 인류 대대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창세기 6장을 보면 이 세상이 너무나 타락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창조하셨음을 후회하셨다고 말한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창 6:5-6).
 
창세기 7장과 8장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내리시는 무서운 심판을 서술하고 있다. 노아의 홍수는 온 지구 상에 임한 물리적 재난이었다. 오직 여덟 명만이 초자연적인 능력에 의하여 보존되었다. 홍수 후에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온 땅에 퍼져 온 땅을 가득 채우라는 지시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순종하기 보다 불순종을 택하였다. 대신 그들은 흩어지지 않기 위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도시를 세우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홍수가 임하기 전과 마찬가지로 인간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하였다. 따라서 그들의 결국은 예상대로 심판 밖에는 없게 되었다.
 
도시와 탑
 
창세기 11장은 구약 시대에 있어서 중추적인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 인간의 타락한 속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세기 3장에 기록된 사탄의 거짓에 대하여 이해하는 것이 필수 불가결한 일이겠지만 바벨론에서 발생한 사건의 의미를 붙잡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죄성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킨다. 또한 우리의 바벨론적인 속성은 하나님을 대항하여 연합하여 반역을 일으키려는 본성을 드러낸다.
 
노아의 후예들에 의하여 바벨에서 발생한 반란은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인간들은 하나님의 명령, 곧 땅에 충만하여 땅을 정복하라는 명령을 대항하여 인간들끼리 연합하여 도시를 짓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바벨의 도시를 건축한 그들은 이제 ‘하늘에 닿기 위해’ 탑을 세웠다. 반란에 있어서 두 번째 단계는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선 인간들이 자신들의 영적인 허무함을 채우기 위하여 다른 영적 존재를 접하기를 추구하였다는 점이다. 창세기의 기록을 보자: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창 11:1-4).
 
노아의 홍수에서 생존한 자들은 기억력이 없었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홍수 이전의 선조들이 빠져들었던 똑 같은 덫에 다시 빠졌다. 그들은 자신의 욕망을 제일로 중요하게 여겼다. 하나님은 다시 한번 인간들의 불순종을 향하여 분노하셔야 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소통을 초자연적으로 혼란케 하심으로 바벨탑 건축을 막으셨다고 선언한다.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창 11:5-9).
 
고고학자들은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사이의 지역에서 지구라트(Ziggurat)의 잔재들을 발견하였는데 그곳은 바로 성경이 노아의 홍수 후에 문명이 발생한 곳으로 주장하는 장소이다. 지구라트 건축물은 고대 수메르 사람들이 영적인 세계를 접하기를 힘썼다는 성경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세상의 마지막 신비들(The World’s Last Mysteries)이라고 불리는 책에 “바벨탑은 세운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The Men Who Built the Tower of Babel,” The World’s Last Myteries).
디자인에 있어서 과감하고 층계를 타고 하늘로 치솟고 있으며 맨 위는 신전으로 되어 있는 지구라트 탑들은 약 5000년전 메소포타미아에 등장한 도시-나라의 최고의 영광의 봉우리였다. 그 탑들 중 가장 높고 영광스러운 것은 바벨탑이라고 불리는 바벨의 지구라트이다. 그런데 지구라트의 용도는 아직도 신비에 싸여 있다. 왕들의 무덤일 수도 있고 점성가들이 별들을 관찰하기 위한 장소일 수 있으며, 신들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올 수 있도록 하는 거대한 층계라고 말하기도 한다.
오늘날 관찰해 볼 수 있는 바벨탑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 용도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왜 하나님께서 고대 바벨론 사람들이 행한 일에 대하여 분노하셨는지를 알 수 있는 고고학적인 단서들이 그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예를 들어 수세기 동안 수메르 사람들의 수도였던 우르(Ur)에 있는 지구라트는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우르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갈대아 우르로서 아브라함의 고향이었으며 지금은 이라크 남부에 위치한다.
 
니므롯: 전설인가 실제 인물인가?
 
성경이 언급하는 바벨탑과 매우 유사한 구조를 지닌 건축물들이 고대 수메리아에 보존되어 발견되었을 뿐만 아니라 바벨론 사람들이 하늘의 영적인 능력을 접하려고 애를 썼음을 확신시키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 고고학의 증거물들은 과거 바벨론이 모든 영적인 매춘의 어미라는 사실을 지지한다.
 
바벨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반란을 일으키도록 주도한 주요 인물이 있다. 그는 니므롯이라 이름하는 사람이었다. 창세기 10장은 그에 대하여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창 10:8-9). 물론 이 두 구절은 니므롯이 하나님을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않지만 다른 자료들이 이때 어떤 일이 발생하였는지를 보여준다. 니므롯이란 이름은 히브리어 마라드에서 온 것으로 그 뜻은 ‘반역한다’는 뜻이다.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라는 표현은 적개적인 의미로 표현되어야 한다. 즉, 여호와 ‘앞에’가 아니라 여호와를 ‘대항하여’ 라고 해석될 수 있다. 유대인 백과사전은 니므롯에 대하여 “모든 사람을 이끌어 하나님을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 자”라고 되어 있다 (Gross, “The Heathen Religion,” Jewish Encyclopedia, 60).
 
마이크로 소프트 엔카타 98 백과사전에서 니므롯을 찾으면 좀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성경 창세기에 기록된 니므롯은 ‘이 땅에서 첫번째 권력자’와 ‘여호와의 눈에 힘센 사냥꾼’으로 묘사되고 있다 (창 10:8-9). 창세기를 보면 그는 함의 손주이며 노아의 증손주로서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역의 넓은 땅에 제국을 세운 자이다. 성경은 니므롯을 ‘힘센 사냥꾼’이라고 표현하였는데 그 당시 배경으로 볼 때 그 뜻은 ‘사람을 먹이로 취하는 자’란 뜻이다. 존 밀톤이 쓴 17세기의 대표적인 시 잃어버린 낙원 (Book 12, 14-63)을 보면 니므롯은 불법자로 그리고 재난의 바벨탑을 세운 불경건한 독재자로 나타난다. 니므롯은 그의 백성들에게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우라고 지시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교만한 니므롯을 벌하시고 인류의 언어를 나뉘게 하셔서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게 하심으로 건축을 중단시키셨다. 그리고 인류를 온 세상에 흩어 놓으셨다. 전설에 의하면 니므롯의 무덤은 시리아 다마스커스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영국 문헌에 의하면, 종종 용감한 사냥꾼이나 기술이 뛰어난 사냥군에게 니므롯이란 이름이 주어졌다고 한다.
그 유명한 유대인 역사가 요셉프스는 니므롯의 성품에 대하여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니므롯은 사람들을 부추겨서 하나님을 멸시하고 대항하게 하였다. 그는 또한 점차적으로 독재자가 되었고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아닌 니므롯 자신을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군중들은 니므롯의 결정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었고 이에 탑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고생도 마다하지 않고 죽도록 노동하였다. 셀 수 없는 군중들의 고생으로 인하여 탑은 점점 높이 올라갔다. … 그들이 탑을 세운 장소는 바벨론이요, 그들이 세운 탑은 바벨 탑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유대 바벨론 종교
 
하나님께 선택 받은 유대민족은 남신과 여신을 예배하는 바벨론 풍습에 영향을 받았다. 신명기 30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예언자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시길 거짓 신들을 섬기는 자들은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 (신 30:15-18).
 
사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귀히 여기지 않음으로 인하여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설명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행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삿 2:11-13).
 
아스다롯은 여신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늘의 여왕’으로 불리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었던 유대인들은 사탄의 궤계에 빠져들었다. 사실 구약을 보면 유대인들이 거듭해서 마귀의 덫에 빠지는 것을 보게 된다. 예레미야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공적으로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하는 말을 우리가 듣지 아니하고 우리 입에서 낸 모든 말을 반드시 실행하여 우리가 본래 하던 것 곧 우리와 우리 선조와 우리 왕들과 우리 고관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 대로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 그 때에는 우리가 먹을 것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였더니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 하며 여인들은 이르되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릴 때에 어찌 우리 남편의 허락이 없이 그의 형상과 같은 과자를 만들어 놓고 전제를 드렸느냐 하는지라” (렘 44:16-19).
 
로마 바벨론 종교
 
몇 세기 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정녀에게서 나시고 세상의 죄를 속죄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며 그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죄로부터 돌아서서 예수님께 믿음을 둔 사람들은 우리가 현재 기독교 교회라는 부르는 것을 형성하여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3세기 및 4세기가 되자 로마에 위치한 교회들은 성경적인 믿음에서 크게 떠났다. 그들이 기독교 신앙에서 타락하게 된 이유는 여러 이방 풍습들과 믿음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중생하지 않은 이방인들이 기독교 교회에 들어오게 되었고 그들은 기독교에서 인정을 받기 위하여 자신들의 종교 예식들과 풍습들을 수정하였다.
로마 카톨릭과 바벨론 종교 사이에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에 대하여 연구한 여러 책들이 나와 있다. 그러나 그러한 책들 중에는 잘못된 정보들이 많으며 또한 잘못된 정보에 근거를 둔 주장들도 많다. 그러나 역사가 윌 두란트(Will Durant)의 글들은 믿을만한 정보를 준다. 두란트는 카톨릭에 침투한 이방 믿음에 대하여 성 어거스틴이 관찰한 것들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방 풍습에 대항하는 성 어거스틴의 입장은 역사 속의 가장 치열한 여러 논쟁에 대하여 마지막 반증을 제공한다. 이방 풍습은 인간의 도덕적인 관념에서 볼 때 문제가 되지 않아서 살아남게 되었다. 오히려 인간의 자연스런 도덕적 욕구에 구미를 줄 수 있었다. 종교로서는 고대의 풍습들과 전통의 형태로만 남게 되더니 서서히 안일한 교회들에 의하여 받아들여지고 종종 변화된 종교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이방 신들에게 제사 드리던 장소들이 성자들을 위한 친근한 예배 장소가 되었고 이러한 종교 형태는 범신론자들의 단순하고 감정적인 마음에 적합하였다. 이시스 및 호러스의 동상들은 마리아와 예수님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악신을 내어 좇는 로마의 전통 행사인 로만 루퍼칼리아와 이시스의 정결 예식은 예수 탄생 기념 행사들로 바뀌었다. 새터날리아는 크리스마스 축제로 대체되었으며 플로랠리아는 성령강림절로, 죽은 자를 위한 고대 축제는 모든 영혼들의 날(All Soul’s Day)로 대체되었다. 아티스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부활절로 대치 되었다. 이방 신전은 기독교 영웅들에게 봉헌되었고, 고대 이방 종교에서 사용되던 향, 촛불, 꽃들, 행렬, 예복들, 찬송들이 교회의 예식에 의하여 받아들여지고 정결케 되었다. 살아있는 사람을 제사로 드리던 무서운 살인 행위들은 미사 (Mass)의 영적 희생으로 승화되었다. 어거스틴은 성자들에 대한 숭상에 대항하여 강력하게 항의하였다. “성자들을 신으로 대우하지 말라. 죽은 자를 숭상하는 그러한 이방 풍습을 따라서는 안된다. 죽은 자들을 위한 제단이나 신전을 세워서는 안된다.”
두란트는 또한 어떻게 캐톨릭 교회가 마리아를 숭상하게 되었는지 그 뿌리를 고대 이방 종교에서 찾아내었다. 그 뿌리는 분명하게 바벨론 종교와 연결되어 있다:
이렇게 너그럽게 이방 풍습을 받아들인 것 중에는 그 최고의 경지에 이방 종교의 어머니 여신을 섬기는 부분이었다. 어머니 여신(mother-goddess)은 마리아 숭배로 이어졌다. 물론 이 과정에도 교회가 먼저 앞장섰다. 431년 시릴(Cyril)에서, 알렉산드리아 대주교는 에베소에서 유명한 설교를 하던 중에 에베소의 이방 풍습 중 그들의 위대한 여신 아르데미스-다이애나에게 드려지는 여러 멋진 용어들을 마리아에게 허락하였다. 그 해 에베소 총회는 네스토리안들의 항의를 짓누르고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자격을 부여하였다. 서서히 아스타르트, 시벨리, 아르테미스, 다이애나, 이시스 등의 부드러운 여신들의 모습들이 마리아 숭배에 몰려 들어왔다. 6세기 경에 교회는 처녀 마리아가 하늘로 승천하였음을 기념하는 축제를 시작하였고, 본래 이시스와 아르테미스 여신을 기리며 축제하던 날인 8월 13일을 마리아 축제의 날로 잡았다.
성경은 결코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마리아 숭배를 허용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고 하셨다 (출 20:3). 성경은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예수님의 혈육의 어머니로 특별히 선택하셨음을 기록한다. 또한 그녀는 경건하고 헌신된 여인이었다. 그러나 마리아를 성경이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만드는 것은 아무런 영적 근거가 없는 교리를 만드는 것과 같다. 이 점에 대해서 카톨릭 백과 사전 도 인정하고 있다:
긍극적으로 볼 때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숙녀(Our Blessed Lady)는 성도의 교통을 위한 교리를 실제적으로 적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적어도 뚜렷하게 초대 교회의 최초 교리인 사도 신경에는 마리아에 대한 교리가 없다. 또한 제 1세기의 초대 교회에는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한 처녀에 대한 숭배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마리아 숭배는 후에 개발된 것이다.
과거로부터 배워야 할 것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다고 말한다. 과거에 발생했던 일들이 계속 되풀이 하여 발생한다고 본다. 따라서 역사는 단순한 반복이다 (전 1:9).
 
창세기에 기록된 바벨론의 기사는 성경을 심각하게 대하는 자들에게 통찰력을 제공한다. 즉,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며 하나님을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킬 때는 무서운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인류가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대항하는 세력에 참여할 때 영적으로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볼 수 있다. 하나님 없이 제 멋대로 하는 인간들은 서서히 타락한 영적 세력에게 미혹되더니 결국 하나님을 대항하는 반역적인 나라를 세우게 되고 긍긍적으로는 멸망하게 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성경으로부터 홍수 직후에 발생한 바벨탑 사건은 유일한 사건이 아님을 안다. 사실 바벨탑 사건은 인류 역사 속에서 계속 반복된 같은 종류의 사건들의 대표적인 사건일 뿐이다. 인간들은 여전히 같은 패턴의 행위들을 보이고 있으며 오늘날의 세상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이 세대가 하나님께서 주의 거룩하신 말씀을 통하여 알려주신 경고를 계속 무시할 때 과연 어떠한 일들이 발생하게 될까? 우리는 이 세대를 더욱 염려해야 하는 것이다. 
[출처] 3. 바벨론 포도나무 - 바벨론 포도나무와 새 포도주 운동 - 로저 오클랜드
http://blog.naver.com/thebloodofx/20069958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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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 주의해야할운동
https://esesang91.com/b/kkkexchan3/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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