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평화, 평화
12. 평화, 평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보라. 만일 제 3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다면 어디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제일 놓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난 수십년 동안 정치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가장 문제가 많았던 중동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실, 전세계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계속되는 갈등에 대해 많은 염려를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도 중동의 분쟁에 대한 뉴스를 매일 접하고 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간의 문제는 온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실 역사를 보아도 중동에서의 종교 분쟁은 항상 있어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신무기와 기술들은 종교 분쟁으로 인한 핵전쟁을 야기시킬 가능성이 많다.
바위 돔 (The Dome of the Rock)
바위 돔은 예루살렘의 무슬림 사원을 말한다. 이 건물은 솔로몬의 성전이 있었던 곳이라고 믿어지는 곳에 세워져 있다. 아브라함이 이곳에서 자기의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제사로 드렸다. 무슬림들에게는 메카 다음으로 가장 거룩한 곳이 이 장소이다. 무슬림의 전설에 의하면 선지자 모하메드가 하나님의 계명을 받기 위해 하늘로 오른 신전의 언덕(Temple Mount)이 이곳이다. 바위 돔은 무슬림들에 의해 692년에 완성되었으며 그때와 거의 같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지붕만 여러 번 새롭게 단장하였고 표면의 치장을 위해 작은 변화가 있었을 뿐이다. 바위 돔은 모하메드의 승천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 이미 세워진 유대교와 기독교의 성소의 화려함에 견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건물은 팔각형으로 되어 있으며 큰 금빛 돔이 꼭대기 중심에 놓여있다. 표면은 겉이나 안이나 대리석 및 모자이크 패턴으로 되어 있고 내부의 많은 부분이 보석과 금으로 강조되어 있다.
시한 폭탄
바위 돔은 제 3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이 곳을 중심으로 한 종교적 앙심이 매우 오랫동안 깊어왔기 때문이다. 오랜지 카운티 레지스터 의 1998년 1월 1일 기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실었다:
수요일의 신문 기사에 따르면, 1967년 이스라엘 군사들이 예루살렘의 구-도시를 장악한 이후 군대 담당 랍비가 모슬렘의 금빛 바위 돔을 폭파할 것을 독촉하였다고 한다. 고대 유대교의 성전의 마지막 잔재인 신전의 언덕(Temple Mount) 위에 놓인 모슬렘의 상징인 모스크는 유대교와 모슬렘의 갈등이 가장 치열한 곳이다. 아랍인들은 유대인들이 이 모스크를 파괴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의심하여 왔다. 만일 그러한 움직임이 있다면 무슬림 국가들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이 기사에는 1967년의 사건이 있은 후 약 30년 후에 이러한 정보를 공적으로 내 보내는 이유도 언급되어 있었다. 1997년 5월에 랍비 슬로모 고렌(Rabbi Shlomo Goren)이 발언한 말들이 은퇴한 군대 장관 우찌 나르키스(Uzi Narkiss)가 해아레츠(Haarets) 신문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인용되었다. 나르키스는 그 회담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이 사망할 때까지는 그 내용이 공개되지 않도록 약속했었다. 1967년에 예루살렘 구-도시를 점령했던 군대 장관 나르키스는 1997년 12월 17일에 생을 마쳤다. 랍비 고렌은 1994년에 죽었다.
바위 돔은 폭파되지 않았다. 팔각형의 금빛 돔 빌딩은 오늘날까지 다른 모든 건물들 위에 우뚝 서 있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정부에 의해 성전 문을 지날 수 없도록 금지되어 있다. 이 장소는 과거에 거룩한 성전이 섰던 곳이며, 오늘날은 이슬람 교도들을 위한 거룩한 땅이 되었다.
성전 회관 (The Temple Institute)
성전 회관은 비영리 및 비정치 구조로서 예루살렘 구-도시의 유대교 영역에 위치하여 있다. 성전 회관이 설립된 주된 목적 중에 하나는 성경이 규정한대로 성전의 모양과 제사장의 복장을 그대로 만들기 위함이다. 이를 위한 프로젝트가 수년간 진행되었다. 1996년 즈음에 60개 이상의 성물(Sacred objects)이 금과 은과 동으로 만들어졌다. 이 회관은 “성전의 보화”를 영구적으로 전시함으로서 전세계로부터 20만 이상의 방문자를 끌어 들였다.
성전 회관에서 발생한 첫번 뉴스레터를 보면, 이 기관의 주된 목적은 “유대 민족의 의식을 고양하고 전세계로 하여금 인류의 영적 공허는 오직 거룩한 성전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되어 있다. 또한 “우리의 예언자들에 의해 제 3의 성전 시대가 약속되어 있으며 그때는 평화와 사랑과 이해의 기간이 될 것이다. 현재 발생하고 있는 여러 사건 가운데 볼 때 언제 어떻게 제 3의 성전 시대가 열리게 될지는 우리도 알지 못한다.”
비록 성전 회관은 유대 민족 다수의 바램과 소원을 대표한다고는 할 수 없어도 위의 뉴스레터에서 언급된 내용은 성경 예언의 빛 가운데서 볼 때 아주 흥미롭다. 열광적인 그룹은 제 3의 성전이 세계 평화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뉴스레터의 내용은 계속 다음과 같다:
거룩한 성전은 모든 인류를 연합시키는 요소이다. .. 선지자 이사야는 ‘내 집은 모든 나라를 위한 기도의 집으로 불릴 것이다’ 라고 선포하였다. 전 우주적인 조화와 모든 것을 포함한 일치는 바로 신적 임재에 의해 이루어진다.
성전 회관 지원자들은 신전의 언덕이 “신적 임재”를 위한 자리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반대하지 않는다. 성전 회관 뉴스레터는 이러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왜 온 세계의 눈이 신전의 언덕을 주시하는가? 그 이유는 첫째 사람 아담의 탄생 장소요, 전 세계의 거룩이 집중된 곳이며, 참으로 인류의 신경 중심 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 개인의 기도 및 모든 사람의 기도가 하늘로 오르기 전에 모든 인류가 형성된 이 언덕의 모퉁이 돌에 모여진 후 그곳으로부터 신에게로 올려진다고 배웠다. 이곳은 마치 우주의 스위치가 있는 곳이다. 이러한 과정은 오늘날도 진행되고 있다.
유대인들이 신전의 언덕을 주관하고 있지 않는점을 고려할 때 위의 언급은 참으로 흥미롭다. 무슬림들은 신전의 언덕을 그들이 모슬렘 믿음을 위해 지극히 거룩한 장소로 여긴다. 이는 신전의 언덕이 무슬림에게도 거룩한 “전달 장치”로 여기지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우주의 눈(Eye)
1997년 2월에 나는 성전 회관을 방문하고 책방에서 책을 한권 구입하였다. 그 책의 저자는 랍비 아르예 캐플란(Aryeh Kaplan)이었다. 책 제목은 예루살렘: 우주의 눈 이었다.
책의 뒷장에는 나의 관심을 끄는 여러 질문들이 있었다. 그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예루살렘에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왜 이 땅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가 되었는가? 예루살렘의 독특함은 무엇인가? 왜 우리 기도에서 언급되는 장소가 되었는가? 거룩의 근원은 무엇인가? 왜 성전은 이곳에만 위치할 수 있는가? 왜 예루살렘의 상태가 아군과 적군에게 그토록 중요한가?
책의 뒷장에는 저자가 이러한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 책을 구입한 후에 몇 일 내로 다 읽었다. 랍비 캐플란은 성전 회관의 뉴스레터인 제단 위에서(On the Altar) 에서 내가 읽은 정보에 좀 더 많은 통찰력을 주었다. 40페이지 가량의 랍비 캐플란의 책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야곱은 예루살렘을 “하늘의 문” (창 28:17)이라고 불렀다. 간단한 차원에서 본다면 이 뜻은 기도가 이 문을 통해 하늘로 올라간다는 뜻이다. 깊은 의미로 보면, 이 문을 통해 신비체험 또는 예언적 체험을 수단으로 하여 하늘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 책의 다른 부분에서 랍비 캐플란은 “신적 임재”의 사상 위에 “하늘의 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욱 분명히 한다:
이는 우리를 모퉁이 돌의 위치로 인도한다. 그 곳은 모든 영적인 힘들이 집중된 곳이다. 모든 문명이 접하는 곳이며 모든 사람들이 모든 역사 가운데서 영적인 힘들을 만나고 영향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방법으로 모든 인류는 이러한 영적인 힘들에 의해 서서히 향상되었고 온 세계를 온전하게 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여왔다. 이는 메시야의 시대에 실현될 것이다. 그때는 예루살렘이 모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가르침의 중심이 될 것이다: “시온으로부터 토라가 나오고 예루살렘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나올 것이라.”
랍비 캐플란은 예루살렘의 성전 언덕이 마지막 때에 가장 중요한 장소가 될 것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도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음을 안다.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전 그의 길을 예비하기 위한 성전이 지어져야 한다. 현재 발생하고 있는 사건들은 성경의 예언에 따라 펼쳐지고 있다. 우리는 매우 중대한 때에 살아가고 있다.
평화를 위한 공식
분쟁을 해결하려면 언제나 주고 받는 것이 있어야 한다. 시간이 지난다고 하여 종교적 분쟁이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평화 조약이나 협정이 평화가 실제하기 전에 있어야 한다. 수년 동안의 유대인과 무슬림간의 종교 갈등은 중동에 많은 피와 고통을 야기시켜왔다. 오늘날 전세계적인 지도자들의 집중되는 노력이 없이는 평화로운 분쟁 해결은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1998년 부활절 주일에 로마 성베드로 대성당으로부터 교황 요한 바울 2세는 이 문제에 대해 전세계를 향해 말씀을 전하였다. 그는 인류가 20세기의 끔찍한 오류들을 다시 저지르지 않기를 촉구하면서 서기 2000년이 다가오면서 새로운 “죽음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다고 경고하였다. 그는 또한 중동을 위해 기도하였고 이스라엘이 아랍 세계에 동(East) 예루살렘을 세우려는 것은 “거룩한 도시를 위험에 처 넣는” 걸림돌이라고 언급하였다.
교황의 경고의 메시지는 종교 분쟁으로 찢긴 아일랜드에 아일랜드의 역사적 사건인 소망의 새시대를 여는 “성 금요일 합의(Good Friday Agreement)”가 이루어진 이틀 후에 있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하는 두개의 파벌이 이제 그들의 서로간의 미움과 전쟁을 종식시키는 협상을 만들어냈다. 벨패스트 국장(Major of Belfast) 앨반 매기네스(Alban Maginness)는 다음과 같은 협상을 이루어냈다: “우리는 분열과 폭행의 정치를 종식시키고 화해와 포용의 정치로 나아간다.”
지난 수십년간 세계는 적어도 3400명 이상이 살해된 북부 아이랜드의 피 비린 내전의 공포를 지켜보았다. 이제 협상이 이루어졌고 비록 그 협상이 지켜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평화를 위한 의견 일치가 되었다는 것은 장려할 만한 일이다.
평화가 끝까지 지속될지는 시간이 말해 줄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는 확립되었다. 반대되는 그룹들이 중립적인 권위에 의해 진행되는 가정에 동의할 때 평화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유대인과 무슬림들을 위한 어떤 중재 기구가 있을 경우 평화 조약이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카톨릭 교회의 교황이 이러한 중재에 가장 적격한 사람이라고 본다.
배의 운항을 인도함
교황 요한 바울 2세는 “이 세기의 사람”이라고 불리고 있다. 수백 만의 사람들은 카톨릭 교회의 수장인 그를 예수님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믿는다. 그는 역사 속에 멋진 유산을 남겼다. 그의 건강은 현저히 약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존경을 받고 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 캐나다의 총리 존 크레틴(John Chretien), 팔레스틴의 지도자 야사르 아라팻(Yasar Arafat)은 전부 그를 방문하였다.
1998년 2월 11일, 러시아의 대통력 보리스 옐친(Boris Yeltsin)은 교황에게 인사하기 위해 바티칸을 방문하였다. 첫번째 폴란드 출신인 교황 요한 바울 2세와 러시아의 첫번째 피선 지도자가 된 이전 공산주의자 옐친은 50분 동안 사적인 만남을 가졌으며 2000년을 맞이하는 행사 및 여러 다른 것들을 상의하였다. 뉴욕 타임지에 실린 요한 바울 2세의 글에 의하면 교황은 옐친과의 대화에서 “함께 새천년을 맞이하도록 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옐친을 만난 후 10일 지난 후, 교황은 또 다른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20세기를 마치면서 교황의 책임을 지원할 22명의 추기경을 세우는 예식이었다. 연합 뉴스(Associated Press)의 “교황이 배를 운항하는 것”을 도울 22명의 추기경을 세우다” 라는 제목의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금으로 만든 의자에 앉은 교황 요한 바울 2세는 지난 토요일 22명의 추기경을 세웠다. 교황은 그들이 교회의 “왕자들”이라는 그들의 역할을 상징하는 붉은 삼각모를 그들의 머리에 씌웠다. 교황은 진홍빛 의관을 차려 입은 그들을 불러 로마 캐톨릭 교회를 새천년의 기독교로 인도하라고 지시하였다. 교황은 그들에게 “당신들은 다른 추기경들과 함께 교황을 도와 성베드로의 배를 운항하여 역사적인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도록 돕기 이해 부름을 받았다” 라고 말하였다.
그 기사는 또한 새로운 추기경들 중에 몇몇은 장래의 교황이 될 것으로 보고 있었다. 그들 중에 하나는 스콘본(Schoenborn)이라는 이름의 추기경인데 그는 매우 인정받는 신학자로서 요한 바울은 그에게 새로운 교회 교리를 준비하는 새로운 일을 맡았다.
나는 새로운 카톨릭 교리서를 얻었다. 그 교리서를 읽으면서 나는 새로운 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카톨릭 교회의 교리
카톨릭 교회 교리집은 바티칸이 인정하는 카톨릭 교회의 신학을 공식적으로 대표한다. 이러한 신학 내용을 다루는 것은 이 책의 범위를 넘어선다. 하지만 구원에 관한 카톨릭의 가르침이 어떠한지 그 교리집의 몇 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공식적인 카톨릭 교회 교리집 에서 두 부분만 그대로 인용하겠다. 그 부분은 “누가 카톨릭 교회에 속하는가”와 “교회와 비그리스도인” 부분이다.
누가 카톨릭 교회에 속하는가?
836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과의 카톨릭적인 일치로 부름을 받는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부름을 받게 되거나 명령을 받는다: 카톨릭의 믿는 자들, 그리스도를 믿는 다른 자들, 마침내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로 부름을 받는다.
837 교회의 공동체로 충분히 가입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성령을 소유하게 되며 교회에 의해 부여되는 모든 구원의 수단들을 받게 된다. 교회 모든 조직과 믿음의 고백에 의해 제정된 약속들, 성례, 교회 치리, 교통은 그리스도의 물리적인 구조에 연합된다. 그리스도의 물리적 구조는 최고 교황과 주교들을 통해 통치된다. 교회에 가입되어 있더라도 끊임없는 보시(또는 자선)을 하지 않는 자는 구원 받은 자가 아니다. 그는 실제로 교회의 품에 있지만, “몸만” 있는 것이지 “마음”은 없는 것이다.
교회와 비-그리스도인들
839 복음을 한번도 받지 못한 자들도 여러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백성들과 연결된다. 유대 민족과 교회의 관계: 새로운 언약의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가 자기 자신을 깊게 탐구해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으로 들은 유대 민족과의 연결을 발견한다. 유대 신앙은 다른 비기독교 종교들과는 달리 이미 구 언약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에 반응을 하였다. 유대인들에게는 양자와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믿음의 족장들이 속하여 있으며 그들의 민족과 혈통을 따라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하나님의 은혜와 부르심은 취소될 수 없다.
840 장래를 고려해 볼 때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은 메시야의 오심을 고대하는 같은 목표를 향하여 나아간다. 어떤 사람은 죽으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주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 받은 메시야의 재림을 기다리며, 다른 이들은 마지막 때까지 숨겨진 모습의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린다. 후자의 기다림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거나 오해한 가운데 진행될 것이다.
841 무슬림과 교회의 관계. 구원의 계획은 또한 창조주를 인정하는 자들을 포함한다. 먼저 무슬림 사람들 중에 구원이 있을 것이다. 이들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붙들고 있다고 고백하며 우리와 함께 그들은 한 하나님, 자비로우신 하나님, 마지막 때에 인류의 심판자가 되실 하나님을 믿는다.
카톨릭 교리집에서 그대로 인용한 이 두 단원은 카톨릭 교회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축될 세계 종교를 위한 길인 통합 운동에 기초를 마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카톨릭의 시나리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따르지 않고 있음은 분명하다. 카톨릭 교리집에 제시된 “복음’은 나사렛 예수께서 선포하신 복음이 분명히 아니다.
카톨릭 교회집에 의하면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카톨릭 교회가 갖기 위해 본래 기독교의 복음이 재정의 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대교의 메시야와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같은 사건으로 만들려는 시나리오가 전개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카톨릭 교리는 무슬림도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 자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분명히 이러한 가르침은 비성경적이며 이단적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적그리스도의 종교가 될 수 있는 새로운 종교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왕국에 들어가는 열쇠들
카톨릭은 예수께서 “왕국의 열쇠들”을 베드로에게 주었으며 베드로는 첫번째 교황이 되었다는 사상 위에 서 있다. 이 교리는 성경의 한 부분에 서 있는 것인데 사실 틀리게 해석된 내용이다. 마태복음 16장을 보면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 16:13-19).
우리가 문맥 속에서 예수님의 질문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그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를 묻고 있다. 그들이 여러 답변을 보고하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개인적으로 묻는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는 영생으로 이끄는 믿음의 고백을 하였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때 베드로의 고백은 하나님께서 영감을 주신 것이라고 인정하셨다.
이후 예수님은 중대한 언급을 하셨고 카톨릭 교회는 자기들이 이 언급을 바르게 해석했다고 주장한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예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고 계신 것인가? 주께서 천국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주신다고 의미하셨던 것일까? 또는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그리고 그가 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하신 것일까? 만일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하나님께서 지정하시려는 많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들 중에 첫째 교황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면 곧 이어 그가 행한 중대한 실수는 모순이 된다. 마태복음 16장의 몇 구절 뒤에 예수님께서 베드로는 꾸짖으시는 장면이 나타난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마 16:23).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지적하신 이 문제는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같은 문제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기 보다 사람이 하는 말을 듣는다. 우리는 우리의 교리를 언제나 성경에 기초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베드로가 행한 같은 죄악을 범하게 된다.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좁은 길이 있다. 바로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의 왕국을 세우실 때 유일하게 참된 교회인 카톨릭 교회를 통해 하실 것이라는 교리를 들을 때 나는 마음이 불쾌하다. 오늘날 많은 개신교도들은 캐톨릭 교회가 그들의 관점을 바꾸었으며 나아가 세계 선교에 함께 동역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사람들이 속고 있는 것이다.
임재를 느끼기
내셔널 지오그래픽 1996년 4월호에는 예루살렘에 대한 기사를 담고 있다. 그 기사는 우리에게 카톨릭 교회가 포용하는 기독교 통합 범위에 대한 선명한 그림을 제공한다. 컬러로 된 두 페이지에는 세 명의 카톨릭 교도들을 보여준다. 그들은 1995년 부활절 기간 중에 브라질에서 예루살렘까지 성지 순례를 하는 중이다. 이 그룹의 지도자인 탈로 산토스(Talo Santos)가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를 걸어 내려가고 있는 사진을 보여준다. 그녀는 그녀의 오른쪽 어깨에 커다란 나무 십자가를 지고 있다. 그녀의 목에는 해와 달 신을 상징하는 메달들이 걸려 있다. 그녀의 오른 손에는 피라미드가 새겨진 메달이 달려 있다. 카톨릭 염주가 그녀의 왼편에 달려 있다. 산토스는 “내 믿음은 거대해졌다”고 보고하였다. 심지어 그녀는 “우리는 그분이 우리와 함께 걸으시는 것을 느꼈다”고 말하였다.
기독교 바벨론주의! 주의 말씀을 추구함이 없이 그리스도의 임재를 추구하는 체험적 기독교에 대해 이 보다 나은 용어가 없는 것 같다. 어느날 성경이 예언한대로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평화를 위한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등장할 것이다. 유대교 성전이 세워질 것이지만, 이번에는 유대인 예배자만을 위한 성전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수용하는 성전이 될 것이다.
모든 종교는 이 성전에서 예배를 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모든 사람들은 메시야의 시대가 이르렀다고 믿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이 있기 전에 전세계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속이는 마지막 미혹이 있을 것이다. 그 미혹을 위해 더욱 더 많은 거짓 기적들과 기사들이 발생할 것이다.
나는 지금 우리가 거짓 기적과 기사가 더욱 구체화되고 강화되는 그러한 기간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미혹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만 얻을 수 있는 하나님께서 주신 분별력을 취하는 것이다.
다음 두 단원에서 우리는 개신교와 카톨릭에 의해 지지되고 있는 기사와 기적 운동을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주장되는 의견들을 점검할 것이다. 그들의 체험은 성경으로 뒷받침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은 또한 그들의 체험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출처] [새 포도주..] 12. 평화, 평화
http://blog.naver.com/yoochinw/130068837174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보라. 만일 제 3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다면 어디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제일 놓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난 수십년 동안 정치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가장 문제가 많았던 중동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실, 전세계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계속되는 갈등에 대해 많은 염려를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도 중동의 분쟁에 대한 뉴스를 매일 접하고 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간의 문제는 온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실 역사를 보아도 중동에서의 종교 분쟁은 항상 있어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신무기와 기술들은 종교 분쟁으로 인한 핵전쟁을 야기시킬 가능성이 많다.
바위 돔 (The Dome of the Rock)
바위 돔은 예루살렘의 무슬림 사원을 말한다. 이 건물은 솔로몬의 성전이 있었던 곳이라고 믿어지는 곳에 세워져 있다. 아브라함이 이곳에서 자기의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제사로 드렸다. 무슬림들에게는 메카 다음으로 가장 거룩한 곳이 이 장소이다. 무슬림의 전설에 의하면 선지자 모하메드가 하나님의 계명을 받기 위해 하늘로 오른 신전의 언덕(Temple Mount)이 이곳이다. 바위 돔은 무슬림들에 의해 692년에 완성되었으며 그때와 거의 같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지붕만 여러 번 새롭게 단장하였고 표면의 치장을 위해 작은 변화가 있었을 뿐이다. 바위 돔은 모하메드의 승천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 이미 세워진 유대교와 기독교의 성소의 화려함에 견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건물은 팔각형으로 되어 있으며 큰 금빛 돔이 꼭대기 중심에 놓여있다. 표면은 겉이나 안이나 대리석 및 모자이크 패턴으로 되어 있고 내부의 많은 부분이 보석과 금으로 강조되어 있다.
시한 폭탄
바위 돔은 제 3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이 곳을 중심으로 한 종교적 앙심이 매우 오랫동안 깊어왔기 때문이다. 오랜지 카운티 레지스터 의 1998년 1월 1일 기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실었다:
수요일의 신문 기사에 따르면, 1967년 이스라엘 군사들이 예루살렘의 구-도시를 장악한 이후 군대 담당 랍비가 모슬렘의 금빛 바위 돔을 폭파할 것을 독촉하였다고 한다. 고대 유대교의 성전의 마지막 잔재인 신전의 언덕(Temple Mount) 위에 놓인 모슬렘의 상징인 모스크는 유대교와 모슬렘의 갈등이 가장 치열한 곳이다. 아랍인들은 유대인들이 이 모스크를 파괴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의심하여 왔다. 만일 그러한 움직임이 있다면 무슬림 국가들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이 기사에는 1967년의 사건이 있은 후 약 30년 후에 이러한 정보를 공적으로 내 보내는 이유도 언급되어 있었다. 1997년 5월에 랍비 슬로모 고렌(Rabbi Shlomo Goren)이 발언한 말들이 은퇴한 군대 장관 우찌 나르키스(Uzi Narkiss)가 해아레츠(Haarets) 신문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인용되었다. 나르키스는 그 회담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이 사망할 때까지는 그 내용이 공개되지 않도록 약속했었다. 1967년에 예루살렘 구-도시를 점령했던 군대 장관 나르키스는 1997년 12월 17일에 생을 마쳤다. 랍비 고렌은 1994년에 죽었다.
바위 돔은 폭파되지 않았다. 팔각형의 금빛 돔 빌딩은 오늘날까지 다른 모든 건물들 위에 우뚝 서 있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정부에 의해 성전 문을 지날 수 없도록 금지되어 있다. 이 장소는 과거에 거룩한 성전이 섰던 곳이며, 오늘날은 이슬람 교도들을 위한 거룩한 땅이 되었다.
성전 회관 (The Temple Institute)
성전 회관은 비영리 및 비정치 구조로서 예루살렘 구-도시의 유대교 영역에 위치하여 있다. 성전 회관이 설립된 주된 목적 중에 하나는 성경이 규정한대로 성전의 모양과 제사장의 복장을 그대로 만들기 위함이다. 이를 위한 프로젝트가 수년간 진행되었다. 1996년 즈음에 60개 이상의 성물(Sacred objects)이 금과 은과 동으로 만들어졌다. 이 회관은 “성전의 보화”를 영구적으로 전시함으로서 전세계로부터 20만 이상의 방문자를 끌어 들였다.
성전 회관에서 발생한 첫번 뉴스레터를 보면, 이 기관의 주된 목적은 “유대 민족의 의식을 고양하고 전세계로 하여금 인류의 영적 공허는 오직 거룩한 성전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되어 있다. 또한 “우리의 예언자들에 의해 제 3의 성전 시대가 약속되어 있으며 그때는 평화와 사랑과 이해의 기간이 될 것이다. 현재 발생하고 있는 여러 사건 가운데 볼 때 언제 어떻게 제 3의 성전 시대가 열리게 될지는 우리도 알지 못한다.”
비록 성전 회관은 유대 민족 다수의 바램과 소원을 대표한다고는 할 수 없어도 위의 뉴스레터에서 언급된 내용은 성경 예언의 빛 가운데서 볼 때 아주 흥미롭다. 열광적인 그룹은 제 3의 성전이 세계 평화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뉴스레터의 내용은 계속 다음과 같다:
거룩한 성전은 모든 인류를 연합시키는 요소이다. .. 선지자 이사야는 ‘내 집은 모든 나라를 위한 기도의 집으로 불릴 것이다’ 라고 선포하였다. 전 우주적인 조화와 모든 것을 포함한 일치는 바로 신적 임재에 의해 이루어진다.
성전 회관 지원자들은 신전의 언덕이 “신적 임재”를 위한 자리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반대하지 않는다. 성전 회관 뉴스레터는 이러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왜 온 세계의 눈이 신전의 언덕을 주시하는가? 그 이유는 첫째 사람 아담의 탄생 장소요, 전 세계의 거룩이 집중된 곳이며, 참으로 인류의 신경 중심 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 개인의 기도 및 모든 사람의 기도가 하늘로 오르기 전에 모든 인류가 형성된 이 언덕의 모퉁이 돌에 모여진 후 그곳으로부터 신에게로 올려진다고 배웠다. 이곳은 마치 우주의 스위치가 있는 곳이다. 이러한 과정은 오늘날도 진행되고 있다.
유대인들이 신전의 언덕을 주관하고 있지 않는점을 고려할 때 위의 언급은 참으로 흥미롭다. 무슬림들은 신전의 언덕을 그들이 모슬렘 믿음을 위해 지극히 거룩한 장소로 여긴다. 이는 신전의 언덕이 무슬림에게도 거룩한 “전달 장치”로 여기지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우주의 눈(Eye)
1997년 2월에 나는 성전 회관을 방문하고 책방에서 책을 한권 구입하였다. 그 책의 저자는 랍비 아르예 캐플란(Aryeh Kaplan)이었다. 책 제목은 예루살렘: 우주의 눈 이었다.
책의 뒷장에는 나의 관심을 끄는 여러 질문들이 있었다. 그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예루살렘에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왜 이 땅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가 되었는가? 예루살렘의 독특함은 무엇인가? 왜 우리 기도에서 언급되는 장소가 되었는가? 거룩의 근원은 무엇인가? 왜 성전은 이곳에만 위치할 수 있는가? 왜 예루살렘의 상태가 아군과 적군에게 그토록 중요한가?
책의 뒷장에는 저자가 이러한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 책을 구입한 후에 몇 일 내로 다 읽었다. 랍비 캐플란은 성전 회관의 뉴스레터인 제단 위에서(On the Altar) 에서 내가 읽은 정보에 좀 더 많은 통찰력을 주었다. 40페이지 가량의 랍비 캐플란의 책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야곱은 예루살렘을 “하늘의 문” (창 28:17)이라고 불렀다. 간단한 차원에서 본다면 이 뜻은 기도가 이 문을 통해 하늘로 올라간다는 뜻이다. 깊은 의미로 보면, 이 문을 통해 신비체험 또는 예언적 체험을 수단으로 하여 하늘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 책의 다른 부분에서 랍비 캐플란은 “신적 임재”의 사상 위에 “하늘의 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욱 분명히 한다:
이는 우리를 모퉁이 돌의 위치로 인도한다. 그 곳은 모든 영적인 힘들이 집중된 곳이다. 모든 문명이 접하는 곳이며 모든 사람들이 모든 역사 가운데서 영적인 힘들을 만나고 영향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방법으로 모든 인류는 이러한 영적인 힘들에 의해 서서히 향상되었고 온 세계를 온전하게 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여왔다. 이는 메시야의 시대에 실현될 것이다. 그때는 예루살렘이 모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가르침의 중심이 될 것이다: “시온으로부터 토라가 나오고 예루살렘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나올 것이라.”
랍비 캐플란은 예루살렘의 성전 언덕이 마지막 때에 가장 중요한 장소가 될 것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도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음을 안다.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전 그의 길을 예비하기 위한 성전이 지어져야 한다. 현재 발생하고 있는 사건들은 성경의 예언에 따라 펼쳐지고 있다. 우리는 매우 중대한 때에 살아가고 있다.
평화를 위한 공식
분쟁을 해결하려면 언제나 주고 받는 것이 있어야 한다. 시간이 지난다고 하여 종교적 분쟁이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평화 조약이나 협정이 평화가 실제하기 전에 있어야 한다. 수년 동안의 유대인과 무슬림간의 종교 갈등은 중동에 많은 피와 고통을 야기시켜왔다. 오늘날 전세계적인 지도자들의 집중되는 노력이 없이는 평화로운 분쟁 해결은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1998년 부활절 주일에 로마 성베드로 대성당으로부터 교황 요한 바울 2세는 이 문제에 대해 전세계를 향해 말씀을 전하였다. 그는 인류가 20세기의 끔찍한 오류들을 다시 저지르지 않기를 촉구하면서 서기 2000년이 다가오면서 새로운 “죽음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다고 경고하였다. 그는 또한 중동을 위해 기도하였고 이스라엘이 아랍 세계에 동(East) 예루살렘을 세우려는 것은 “거룩한 도시를 위험에 처 넣는” 걸림돌이라고 언급하였다.
교황의 경고의 메시지는 종교 분쟁으로 찢긴 아일랜드에 아일랜드의 역사적 사건인 소망의 새시대를 여는 “성 금요일 합의(Good Friday Agreement)”가 이루어진 이틀 후에 있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하는 두개의 파벌이 이제 그들의 서로간의 미움과 전쟁을 종식시키는 협상을 만들어냈다. 벨패스트 국장(Major of Belfast) 앨반 매기네스(Alban Maginness)는 다음과 같은 협상을 이루어냈다: “우리는 분열과 폭행의 정치를 종식시키고 화해와 포용의 정치로 나아간다.”
지난 수십년간 세계는 적어도 3400명 이상이 살해된 북부 아이랜드의 피 비린 내전의 공포를 지켜보았다. 이제 협상이 이루어졌고 비록 그 협상이 지켜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평화를 위한 의견 일치가 되었다는 것은 장려할 만한 일이다.
평화가 끝까지 지속될지는 시간이 말해 줄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는 확립되었다. 반대되는 그룹들이 중립적인 권위에 의해 진행되는 가정에 동의할 때 평화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유대인과 무슬림들을 위한 어떤 중재 기구가 있을 경우 평화 조약이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카톨릭 교회의 교황이 이러한 중재에 가장 적격한 사람이라고 본다.
배의 운항을 인도함
교황 요한 바울 2세는 “이 세기의 사람”이라고 불리고 있다. 수백 만의 사람들은 카톨릭 교회의 수장인 그를 예수님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믿는다. 그는 역사 속에 멋진 유산을 남겼다. 그의 건강은 현저히 약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존경을 받고 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 캐나다의 총리 존 크레틴(John Chretien), 팔레스틴의 지도자 야사르 아라팻(Yasar Arafat)은 전부 그를 방문하였다.
1998년 2월 11일, 러시아의 대통력 보리스 옐친(Boris Yeltsin)은 교황에게 인사하기 위해 바티칸을 방문하였다. 첫번째 폴란드 출신인 교황 요한 바울 2세와 러시아의 첫번째 피선 지도자가 된 이전 공산주의자 옐친은 50분 동안 사적인 만남을 가졌으며 2000년을 맞이하는 행사 및 여러 다른 것들을 상의하였다. 뉴욕 타임지에 실린 요한 바울 2세의 글에 의하면 교황은 옐친과의 대화에서 “함께 새천년을 맞이하도록 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옐친을 만난 후 10일 지난 후, 교황은 또 다른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20세기를 마치면서 교황의 책임을 지원할 22명의 추기경을 세우는 예식이었다. 연합 뉴스(Associated Press)의 “교황이 배를 운항하는 것”을 도울 22명의 추기경을 세우다” 라는 제목의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금으로 만든 의자에 앉은 교황 요한 바울 2세는 지난 토요일 22명의 추기경을 세웠다. 교황은 그들이 교회의 “왕자들”이라는 그들의 역할을 상징하는 붉은 삼각모를 그들의 머리에 씌웠다. 교황은 진홍빛 의관을 차려 입은 그들을 불러 로마 캐톨릭 교회를 새천년의 기독교로 인도하라고 지시하였다. 교황은 그들에게 “당신들은 다른 추기경들과 함께 교황을 도와 성베드로의 배를 운항하여 역사적인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도록 돕기 이해 부름을 받았다” 라고 말하였다.
그 기사는 또한 새로운 추기경들 중에 몇몇은 장래의 교황이 될 것으로 보고 있었다. 그들 중에 하나는 스콘본(Schoenborn)이라는 이름의 추기경인데 그는 매우 인정받는 신학자로서 요한 바울은 그에게 새로운 교회 교리를 준비하는 새로운 일을 맡았다.
나는 새로운 카톨릭 교리서를 얻었다. 그 교리서를 읽으면서 나는 새로운 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카톨릭 교회의 교리
카톨릭 교회 교리집은 바티칸이 인정하는 카톨릭 교회의 신학을 공식적으로 대표한다. 이러한 신학 내용을 다루는 것은 이 책의 범위를 넘어선다. 하지만 구원에 관한 카톨릭의 가르침이 어떠한지 그 교리집의 몇 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공식적인 카톨릭 교회 교리집 에서 두 부분만 그대로 인용하겠다. 그 부분은 “누가 카톨릭 교회에 속하는가”와 “교회와 비그리스도인” 부분이다.
누가 카톨릭 교회에 속하는가?
836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과의 카톨릭적인 일치로 부름을 받는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부름을 받게 되거나 명령을 받는다: 카톨릭의 믿는 자들, 그리스도를 믿는 다른 자들, 마침내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로 부름을 받는다.
837 교회의 공동체로 충분히 가입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성령을 소유하게 되며 교회에 의해 부여되는 모든 구원의 수단들을 받게 된다. 교회 모든 조직과 믿음의 고백에 의해 제정된 약속들, 성례, 교회 치리, 교통은 그리스도의 물리적인 구조에 연합된다. 그리스도의 물리적 구조는 최고 교황과 주교들을 통해 통치된다. 교회에 가입되어 있더라도 끊임없는 보시(또는 자선)을 하지 않는 자는 구원 받은 자가 아니다. 그는 실제로 교회의 품에 있지만, “몸만” 있는 것이지 “마음”은 없는 것이다.
교회와 비-그리스도인들
839 복음을 한번도 받지 못한 자들도 여러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백성들과 연결된다. 유대 민족과 교회의 관계: 새로운 언약의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가 자기 자신을 깊게 탐구해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으로 들은 유대 민족과의 연결을 발견한다. 유대 신앙은 다른 비기독교 종교들과는 달리 이미 구 언약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에 반응을 하였다. 유대인들에게는 양자와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믿음의 족장들이 속하여 있으며 그들의 민족과 혈통을 따라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하나님의 은혜와 부르심은 취소될 수 없다.
840 장래를 고려해 볼 때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은 메시야의 오심을 고대하는 같은 목표를 향하여 나아간다. 어떤 사람은 죽으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주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 받은 메시야의 재림을 기다리며, 다른 이들은 마지막 때까지 숨겨진 모습의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린다. 후자의 기다림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거나 오해한 가운데 진행될 것이다.
841 무슬림과 교회의 관계. 구원의 계획은 또한 창조주를 인정하는 자들을 포함한다. 먼저 무슬림 사람들 중에 구원이 있을 것이다. 이들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붙들고 있다고 고백하며 우리와 함께 그들은 한 하나님, 자비로우신 하나님, 마지막 때에 인류의 심판자가 되실 하나님을 믿는다.
카톨릭 교리집에서 그대로 인용한 이 두 단원은 카톨릭 교회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축될 세계 종교를 위한 길인 통합 운동에 기초를 마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카톨릭의 시나리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따르지 않고 있음은 분명하다. 카톨릭 교리집에 제시된 “복음’은 나사렛 예수께서 선포하신 복음이 분명히 아니다.
카톨릭 교회집에 의하면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카톨릭 교회가 갖기 위해 본래 기독교의 복음이 재정의 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대교의 메시야와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같은 사건으로 만들려는 시나리오가 전개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카톨릭 교리는 무슬림도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 자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분명히 이러한 가르침은 비성경적이며 이단적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적그리스도의 종교가 될 수 있는 새로운 종교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왕국에 들어가는 열쇠들
카톨릭은 예수께서 “왕국의 열쇠들”을 베드로에게 주었으며 베드로는 첫번째 교황이 되었다는 사상 위에 서 있다. 이 교리는 성경의 한 부분에 서 있는 것인데 사실 틀리게 해석된 내용이다. 마태복음 16장을 보면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 16:13-19).
우리가 문맥 속에서 예수님의 질문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그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를 묻고 있다. 그들이 여러 답변을 보고하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개인적으로 묻는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는 영생으로 이끄는 믿음의 고백을 하였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때 베드로의 고백은 하나님께서 영감을 주신 것이라고 인정하셨다.
이후 예수님은 중대한 언급을 하셨고 카톨릭 교회는 자기들이 이 언급을 바르게 해석했다고 주장한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예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고 계신 것인가? 주께서 천국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주신다고 의미하셨던 것일까? 또는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그리고 그가 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하신 것일까? 만일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하나님께서 지정하시려는 많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들 중에 첫째 교황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면 곧 이어 그가 행한 중대한 실수는 모순이 된다. 마태복음 16장의 몇 구절 뒤에 예수님께서 베드로는 꾸짖으시는 장면이 나타난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마 16:23).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지적하신 이 문제는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같은 문제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기 보다 사람이 하는 말을 듣는다. 우리는 우리의 교리를 언제나 성경에 기초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베드로가 행한 같은 죄악을 범하게 된다.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좁은 길이 있다. 바로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의 왕국을 세우실 때 유일하게 참된 교회인 카톨릭 교회를 통해 하실 것이라는 교리를 들을 때 나는 마음이 불쾌하다. 오늘날 많은 개신교도들은 캐톨릭 교회가 그들의 관점을 바꾸었으며 나아가 세계 선교에 함께 동역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사람들이 속고 있는 것이다.
임재를 느끼기
내셔널 지오그래픽 1996년 4월호에는 예루살렘에 대한 기사를 담고 있다. 그 기사는 우리에게 카톨릭 교회가 포용하는 기독교 통합 범위에 대한 선명한 그림을 제공한다. 컬러로 된 두 페이지에는 세 명의 카톨릭 교도들을 보여준다. 그들은 1995년 부활절 기간 중에 브라질에서 예루살렘까지 성지 순례를 하는 중이다. 이 그룹의 지도자인 탈로 산토스(Talo Santos)가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를 걸어 내려가고 있는 사진을 보여준다. 그녀는 그녀의 오른쪽 어깨에 커다란 나무 십자가를 지고 있다. 그녀의 목에는 해와 달 신을 상징하는 메달들이 걸려 있다. 그녀의 오른 손에는 피라미드가 새겨진 메달이 달려 있다. 카톨릭 염주가 그녀의 왼편에 달려 있다. 산토스는 “내 믿음은 거대해졌다”고 보고하였다. 심지어 그녀는 “우리는 그분이 우리와 함께 걸으시는 것을 느꼈다”고 말하였다.
기독교 바벨론주의! 주의 말씀을 추구함이 없이 그리스도의 임재를 추구하는 체험적 기독교에 대해 이 보다 나은 용어가 없는 것 같다. 어느날 성경이 예언한대로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평화를 위한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등장할 것이다. 유대교 성전이 세워질 것이지만, 이번에는 유대인 예배자만을 위한 성전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수용하는 성전이 될 것이다.
모든 종교는 이 성전에서 예배를 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모든 사람들은 메시야의 시대가 이르렀다고 믿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이 있기 전에 전세계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속이는 마지막 미혹이 있을 것이다. 그 미혹을 위해 더욱 더 많은 거짓 기적들과 기사들이 발생할 것이다.
나는 지금 우리가 거짓 기적과 기사가 더욱 구체화되고 강화되는 그러한 기간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미혹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만 얻을 수 있는 하나님께서 주신 분별력을 취하는 것이다.
다음 두 단원에서 우리는 개신교와 카톨릭에 의해 지지되고 있는 기사와 기적 운동을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주장되는 의견들을 점검할 것이다. 그들의 체험은 성경으로 뒷받침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은 또한 그들의 체험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출처] [새 포도주..] 12. 평화, 평화
http://blog.naver.com/yoochinw/130068837174
출처: 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 주의해야할운동
https://esesang91.com/b/kkkexchan3/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