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코스와 은사주의 운동
알파코스와 은사주의 운동
*기독교개혁신보 513호(2008년 7월 29, 2008년 8월 13, 2008년 8월20)에서 퍼온 글입니다.
알파코스와 개혁교회 1
알파코스와 은사주의 운동
최근 알파코리아와 관련된 논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지난 5월 19
일 총회신학위원회와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주최
‘장로교 신학적 입장에서 본 알파코리아 세미나’에서 발표된 김병훈 교수
의 글을 ‘알파코스와 개혁교회’란제목으로 3회 연재한다. |편집자주|
김병훈 교수_합신 조직신학
"알파코스는 불신자들을 접촉하기위해 1976년에 고안된 프로그램"
"알파코스는 사실상 성령 체험에 초점을 맞춘 하나의 은사주의 운동"
"알파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은사들도 추구하는 체험과 표적 추구해"
"은사주의적 체험 추구는 건전한 전도방법으로는 결코 권장할 수 없어"
1. 알파코스란 무엇인가?
1) 기원 및 현황
알파코스(Alpha Course)는 영국 런던에 있는 '성 삼위일체 브롬프톤'(Holy
Trinity Bromptom Church) 성공회 교회(이하 HTB로 약함)에서 1976년에 당
시 주임신부였던 찰즈 만함(Charles Marnham)에 의해서 시작된 전도 프로그
램이다.
알파란 명칭은 다섯 가지의 뜻을 표하는 구절의 첫 글자를 모아 만든 두문자
어(acronym)이다. 예를 들어, 첫 글자 A는 '누구든지 올 수 있다'(Anyone
can come)를, L은 '웃으면서 재미있게 배운다'(Learning and Laughter), P
는 '음식을 함께 먹는다'(Pasta), H는 '서로 섬기며 돕는다'(Helping one
another), 끝으로 A는 '무엇이든지 물어볼 수 있다'(Ask anything)을 뜻한
다.
이러한 구절들의 조합으로부터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바처럼 알파코스는 비
공식적으로 비교적 자유롭게 불신자들을 접촉하는 기회를 만들어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전도목표 아래 고안된 전도프로그램이다.
알파코스는 찰즈 만함 이후 1981년에 존 어바인(John Irvine), 1985년에 니
키 리(Nicky Lee)에 의해 조금씩 변화를 겪었으며, 1990년에 니키 검블
(Nicky Gumbel)에 의해서 지금과 같은 내용으로 진행이 되고 있다. 알파코스
의 보급 현황은 놀랍다.
영국의 알파코스 홈페이지(http://www.uk.alpha.org)에 따르면, 영국에서만
200만, 전 세계적으로 1,100만 명 이상이 알파코스에 참석하였으며, 163개국
에서 알파 세미나가 개최되고 있다.
2) 진행방식
알파코스의 진행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강의를 듣고
이를 근거로 소그룹별 대화를 나누거나 치유사역을 행하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금요일부터 주일까지 2박 3일간에 걸친 주말 수양회를 개최하는것이
다.
주제 강의들은 10주에 걸쳐서 진행이 되는데, 1주는 '예수님은 누구신가'라
는 주제로 예수님의 위격에 관하여, 2주는 '예수님은 왜 돌아가셨나'라는 주
제로 예수님의 사역에 관하여 강의를 한다. 3주는 믿음, 4주는 성경, 5주는
기도를 다룸으로써 신앙의 실천적 측면들을 다룬다. 이어서 6주는 하나님의
인도, 7주는 악에 대한 대항, 8주는 전도, 9주는 하나님의 치유사역, 그리
고 마지막 10주는 교회와 관련한 주제를 다룬다.
여기서 5주의 '기도'부터, '하나님의 인도,' '악에 대한 대항.' '전도,' 그
리고 '치유' 등의 주제들은 사실상 모두 성령의 사역에 관련한 주제와 직,
간접적으로 연결이 된다. 알파코스의 모든 진행은 사실상 성령의 체험에 초
점이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알파코스의 성패는 성령의 체험을 위한 주말 수
양회를 어떻게 치러 내는가에 있음을 알파코스 관련자들은 매우 강조를 한
다.
대체로 6주차 즈음에 철저한 성령체험을 위해 개최되는 주말 수양회는 네 번
에 걸친 대화의 마당을 전개한다. 예를 들어, '성령은 누구신가?' '성령이
무슨 일을 하시는가?' '어떻게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남은 삶을 최대한 선용할 수 있을까?'등의 주제들이 다루어진다.
요컨대 알파코스는 전체적으로 성령론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해를 기초로 하
여 전체의 전도프로그램을 구조화하고 있는 것이다. 주말 수양회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주제강의들은 주말 수양회에서의 성령의 체험을 돕고 그 체험
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나름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해
석할 수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주말 수양회 이튿날 밤에 거의 캬바레 분위기와 비슷한
잔치를 열어, 어떤 노래이든지 제한을 두지 않은 채 부르며, 거의 종교적인
색채를 갖지 않는 매우 자유분방한 분위기 가운데 즐거움을 누리도록 한다
는 점이다.
주말 수양회 이튿날인 토요일 오후까지 성령의 방언의 체험과 치유의 역사
를 강조한 이후에 마지막 날인 토요일 밤에 이러한 행사를 여는 것이 성령
의 체험을 강조한 전도 방식에 어떠한 도움을 주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3) 원리
알파코스가 이처럼 성령체험을 하도록 하는 데에 모든 전도의 초점을 두는
까닭은 그들의 생각에 신약성경의 전도 방식이 '능력전도'의 모델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전도는 메시지를 선포하는 고전적인 방식에 따라 이루어지기
도 하며, 또한 경건주의나 초신령주의를 떠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식에
따라 이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성령의 능력에 의한 표적과 기사를 체험하
도록 하는 '능력전도'야 말로 가장 강력하며 성경적인 전도방식이라는 것이
알파코스의 신학적 판단이다.
전도는 기본적으로 전인격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계몽주의의 영향을 입
어 이성에 따라서 진리를 판단하는 자들을 위하여서는 머리에 호소하는 전
도 방식을 취하되, 뉴에이지적 배경을 따라서 체험에 기초하여 진리를 판단
하는 자들을 위하여서는 마음에 호소하는 전도의 방식을 취할 필요가 있음
을 알파코스는 강조를 한다. 성령은 사도시대와 다름없이 오늘 우리 가운데
여전히 역사하고 있기 때문에 전도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 다이나믹하고도 효
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2. 알파코스와 ‘제3의 물결
-은사주의 운동’
1) 니키 검블과 존 윔버
알파코스가 성령의 능력전도를 전도의 근본으로 여기는 까닭은 그것이 빈야
드의 은사주의 운동과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알파코스 태동기부터 흐
름을 보게 되면 알파코스는 제3의 물결의 은사주의 운동과 본질적으로 맥을
같이 한다.
토론토 에어포트 빈야드 교회에 참석하여 소위 '토론토 축복'이라고 불리
는 '거룩한 웃음'(Holy Laughing)이라는 은혜를 체험하고 돌아온 '남서 런
던 빈야드 교회'(the Southwest London Vineyard)의 사모인엘레아노르 멈포
드(Eleanor Mumford)가 개최한 집회에서 니키 검블은 성령의 전류체험을 하
였다고 한다. 이 때가 1994년이었다.
검블은 HTB(Holy Trinity Bromptom Church)에서 자신 스스로가 성령을 초청
하여 참석한 사람들에게 동일한 현상을 경험토록 하였으며, 이에 HTB의교구
목사인 샌디 밀러(Sandy Millar)는 멈포드를 다시 초청해서 이러한 현상을
다시 경험을 하고 자신이 또한 토론토에 가서 경험을 하였다. 불신자를 전도
하기 위한 알파코스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은사주의 형태로 전환되
어 갔다.
이러한 알파코스의 변화는 실제로는 니키 검블이라는 개인이 겪은 경험과 관
련한 보다 심층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즉 검블 자신의 전도자로서의 사역
적 동기 자체가 존 윔버에 의한 빈야드 집회에서 성령의 체험에 기초하고 있
는 것이다.
1982년에 검블은 일만 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성령의 체험을 했으며, 존 윔버
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검블을 전도자로 세웠다는 예언의 말을 듣고 이에 순
종하여 사역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1994년부터 HTB에서의 알파코스가 변화를 겪게 되는 과정을 보거나, 그
러한 변화를 이끌고 있는 검불 자신이 빈야드 교단의 총수인 존 윔버와 맺
고 있는 개인적 관계를 보거나, 알파코스의 성령 체험 운동은 결국 제3의 물
결 은사주의 빈야드 교회의 성령론을 전적으로 수용을 하는 맥락을 따르고
있다고 판단이 된다.
따라서 제3의 물결-은사주의와 그것이 끼치는 영향들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
이 알파코스라는 그릇에 담겨있는 신학적 핵심을 바르게 비평을 하는 한 가
지 길이 될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알파코리아(www.alphakorea.org)는 도서
출판 서로사랑과 홈페이지(www.srsarang.com)를 공유하면서 도서출판 서로
사랑을 통하여 오순절 성령운동에서부터 신오순절주의와 빈야드 은사주의를
망라하는 성령론과 교회성장에 관한책들을 소개 및 판매를 하고 있다.
2) 제3의 물결-은사주의 운동과 신사도개혁운동(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은사주의 운동은 역사적으로 크게 세 가지 유형들을 따라 이어져 오고 있
다. 이 유형들은 각각 ‘물결’이라는 표현을 따라서 지칭이 되는데, 첫 번
째 물결은 20세기 초 찰즈 파담(Charles F. Partham)과 윌리암 세이모어
(William J. Seymour)로 대표되는 운동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아주사
(Azusa) 거리에서 일어났던 1906-09년 사이의 부흥운동과 관련이 된다. 이
부흥운동의 결과로 인하여 오순절 운동이 태동이 되었다.
두 번째 물결은 소위 ‘신오순절주의’(neo-Pentecostal movement)라고 일컬
어지는 운동이다. 첫 번째 물결인 오순절 운동은 하나의 교단을 태동하였다
면, 두 번째 물결로서의 ‘신오순절주의’의 은사운동은 모든 교단에 걸쳐
서 나타났다. 신오순절주의는 소위 말하는 성령의 제3의 사역을 열어가는 차
원에서 기존의 교회들 그리고 전통적인 신학과 충돌과 마찰을 일으켰다.
이들은 성령은 우리를 회심시키고, 성화를 시킬 뿐만 아니라, 또한 제3의 사
역으로 성령의 세례가 있다고 주장을 하였던 것이다. 성령세례란 성령님께
서 성경에 기록된 은사들을 주실 뿐만 아니라 능력을 체험케 하심을 그 내용
으로 하는데, 심지어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은사들도 가능하다고 주
장을 할 정도로 성령사역의 개방성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신오순절주의의 이해는 당연히 기존 교단과 신학으로부터 저항과 비
판을 받았다. 왜냐하면 초자연적 은사와 체험은 표적에 불과할 뿐이며, 십자
가 대속의 은혜에 의한 죄사함과 거룩케함과 같은 하나님의 구원의 영적 실
상이 온전한 실체이기 때문이다.
기존 신학과 교단들은 오늘날에도 초자연적 은사들의 현상이, 그들이 강조하
는 바처럼, 빈번하며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주장들은 대체로 진실된 증언으
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초자연적 은사의 체험에 치중한 신오순절주의
는 구원과 신앙의 능력이 진정하며 적절한지를 초자연적 은사의 체험을 기초
로 판단하는 잘못을 범하였다.
신오순절주의의 이러한 주장은 성령의 세례는 이미 회심의 때에 받은 것이라
는 기존의 신학적 이해와는 달리, 성령세례를 회심 이후에 주어지는 제3의
사역이라고 주장을 함으로써 성령 강림의 구속사적 의의를 부정하였다.그럼
으로써 오순절에 임한 성령강림의 사건은 옛 언약에서 새 언약으로 전이가
되는 구속사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하며, 그것은 회심한 이후에 주어지는
성령의 세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고 교훈하는 개혁신학과 충돌을 하였다.
제3의 물결의 ‘은사주의’는 이러한 신학적 비평을 수용하였다는 점에서 앞
의 것들과 구별이 된다. '제3의 물결'이라는 표현은 피터 왜그너(Peter
Wagner)가 그의 책 성령의 제3의 물결(The Third Wave of the Holy Spirit)
에서 사용한 이후에 일반적으로 일컬어지게 된 것으로, 개신교 내의 교파를
초월한 복음주의 진영 안에서 나타났으며 후에는 천주교 내에서도 나타난 은
사주의 운동을 가리킨다.
제3의 물결의 대표적인 성격들은 존 윔버의 이름과 함께 한국에도 도입이 되
었던 '빈야드 교회'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제3의 물결은 자신을 지지하는 나
름의 학자군을 형성함으로 학문적 토대를 도모하였다는 점이 이전의 은사운
동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피터 데이비즈(Peter Davids, The First Epistle of Peter,
NICNT 1990), 사무엘 스톰스(C. Samuel Storms, Healing and Holiness: A
Biblical Response to the Faith-Healing Phenomenon, 1990), 고든 피
(Gordon Fee, Paul, the Spirit, and the People of God, 1996; The First
Epistle of the Corinthians, NICNT, 1987); 잭 디어리(Jack Deere,
Surprised by the Power of the Spirit, 1996; Surprised by the Voice of
God, 1998), 맥스 터너(Max Turner, The Holy Spirit and Spiritual Gifts,
1998), 웨인 그루뎀(Wayne Grudem, The Gift of Prophecy in the New
Testament and Today, 2000) 등이다.
이들 신학자들은 ‘제3의 물결의 은사주의 운동’을 나름의 성경주해에 기초
하여 지지를 하면서, 성령세례는 회심 이후에 받는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 아
니라, 회심의 때에 주어지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 이해를 개진한다.
다만 이들은 성령세례 이후에 복음의 사역을 위하여 성령님께서 능력으로 역
사하시는 일이 있으며, 이러한 성령의 능력 부으심이 바로 ‘성령의 채우
심’(filled with the Holy Spirit)이라고 생각을 한다.
또한 방언과 관련하여 오순절주의 또는 신오순절주의와는 다르게, 이들은 방
언이 성령세례를 받은 표준적 증거라고 주장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이해하지도 않는다.
알파코스는 한편으로 방언의 기도는 누구나 하는 것이 아니며 또 통변의 은
사를 통해 해석이 될 때 그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면서도 다
른 한편 찬양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며, 집단 전체가 다 함께
방언으로 찬양할 것을 권면하고 이끌어 감으로써, 실질적으로는 모든 사람
이 능력의 기도에 의하여 방언을 받기를 기대하며 또한 방언 자체를 모든 신
자됨의 첫 체험의 표지로 인정하고 있다.
이어서 주의를 하여야 할 것은 이러한 ‘제3의 물결 은사주의’는 단순히 성
령의 초자연적 은사의 현재성만을 강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
의 확장이자 열매이며 또한 필연적 결과로 소위 “신사도개혁운동”(the
New Apostolic Reformation)으로 이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3의 물결 은사주의’와 ‘신사도개혁운동’은 실체적으로 비분리적이며
동전의 양면과 같다. ‘신사도개혁운동’은 피터 왜그너가 그의 책 신사도
교회들(The New Apostolic Churches, 1998), 21세기 교회성장의 지각변동
(Church Quake!, 1999; 이레서원, 2000),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Changing
Church, 2004) 등을 통해 주창한 것으로, 교회에는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
는 자, 목사, 교사의 5대 직분이 항상 존재한다고 주장을 한다. 말하자면 오
늘날에도 사도의 직분이 존재한다고믿는 것이다.
좁은 의미에서의 사도는 열 두 사도들을 가리키지만, 넓은 의미에서의 사도
는 현재도 교회에 존재하는 직분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사도의
직분을 받은 것으로 생각되는 나름의 기준을 세워 그 기준들을 충족시키고
있다고 믿는 자들이 서로를 추천하면서 임의로 모여 12명으로 구성된 ‘사도
의회’(International Coalition of Apostles)를 구성하였다.
‘신사도개혁운동’은 사역의 목표를 단지 기존 교단 안에서 소위 은사운동
이 활성화되도록 하는 것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급기야 새로운 교회 구
조의 형식을 세우는 것에 두고 있다.
이들의 판단에 따르면 기존의 교파와 교단은 경직된 구조 안에서 내용적으로
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해 일종의 죽은 교회와 같기 때문에, 기존의
교회들을 새롭게 하여 다시 새로운 교회의 형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바로 이러한 새로운 교회의 형식을 세워갈 영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바로 사도적 은사를 받은 넓은 의미의 사도들이며, 이들에 의해서 새
로운 교회의 기초가 놓이게 된다고 이들은 주장을 한다.
이들의 이해에 따르면, 사도적 은사를 받은 이들은 성령님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직접 듣는 자들이며, 이들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계
시적 권위로 교회들에게 말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위임하여 세운 자들
인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신사도개혁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교회들은
‘종교의 영에 사로잡힌 교회들’로간주하며, 이러한 기존 교회들의 신학
은 하나님의 권능과 주권을 놓쳐버린 말라버린 신학으로 여긴다.
‘신사도개혁운동’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는 한국의 사역자들로는 빈야드 운
동의 도입에 앞장을 섰으며, 피터 왜그너에 의하여 “왜그너사역연구원”
(Wagner Leadership Institute Korea)를 설립하여 총장직을 위임받은 홍정
식 목사(과천하베스트샬롬교회 담임목사), 소위 사도들이라고 칭함을 받은
이들로 구성된 미국 CI사역네트웍(Christian International Ministries
Network)의 대표인 ‘사도’(?) 빌 해몬(Bill Hamon)에 의하여 임명을 받고
한국 CI 사역원을 세워 일하는 박노해 목사, 아가페신학연구원 학장 김태진
목사, 한국교회기독교영성총연합회 대표인 예영수 박사, 한국HIM선교회 전
대표였던 이성대 목사, 그리고 ‘다윗의 장막’이라는 소위 말하는 워쉽팀
을 이끌고 있는 영동제일교회의 김혜자 목사 등이 있다. 이들에 의하여 대규
모의 ‘신사도개혁운동’의 집회들이 다양한 형태로 열리고 있다.
이러한 집회들에서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위에 언급한
한국 사역자들과 관련하여 소식들을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이들의 사역의 내
용은 다름 아닌 빈야드 집회와 실질적으로 동일함을 알 수 있다. ‘신사도개
혁운동’이란 소위 ‘신사도들’에 의하여 ‘빈야드 운동’을 교회론적으로
새롭게 정립하기 위한 노력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알파코스에 대한 비평의 초점은 알파코스가 실체적으로 빈야드 운동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판단에 있다. 알파코스가 불신자를 초청하여 이들에게 복
음을 전하는 데에 나름대로 효과적이며 적절한 방법이라고 제 아무리 평가
를 받는다고 하여도, 알파코스가 전하는 복음이 결국 빈야드 운동으로 이어
져 가게 될 성령의 은사주의적 이해를 담고 있다면 알파코스는 건전한 전도
의 방법으로 권장될 수가 없는 것이다.
요컨대 알파코스의 문제점은 불신자 접촉을 위한 동기나 방식와 관련한 것이
라기보다는 그것에 담겨 있는 성령론에 관련한 것이다. 방언과 신유와 같은
체험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내고 그러한 체험을 기초로 그리스도의 복
음에 의한 구원을 확신토록 하는 알파코스의 방법은 결국 영적 중생을 통하
여 복음 앞에서 회개와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각성과 믿음을 기초로 구원
에 이른다는 개혁신앙과는 커다란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결
국 ‘신사도개혁운동’에 대한 서로다른 평가를 낳게 될 것이다.
알파코스가 주장하듯이 방언과 예언의 은사(?)를 체험(?)함으로써 그리스도
인이 된 자들은 그들의 신앙 정서상 ‘신사도개혁운동’으로 자연스럽게 별
다른 거부감 없이 이끌려 갈 우려가 크다.
알파코스와 개혁교회 2
최근 알파코리아와 관련된 논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지난 5월 19
일 총회신학위원회와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주최
‘장로교 신학적 입장에서 본 알파코리아 세미나’에서 발표된 김병훈 교수
의 글을 ‘알파코스와 개혁교회’란제목으로 3회 연재한다.
‘은사주의 운동’과 ‘신사도개혁운동’의 신학적 특징들
김병훈 교수_합신 조직신학
‘은사주의 운동’은 하나님의 음성듣고 행하는 것처럼 보여
최종 계시인 성경의 권위를 뛰어넘는 위험성 가지고 있어
교회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악한 영에 대해 승리했으며,
완전한 구속을 보증하는 성령을 받았음을 분명 인식해야 해
1. 몇 가지 실례들
‘제3의물결-은사주의 운동’의신학적 특징들은 신사도개혁운동의 주창자
인 국제추수선교회(HIM)의 설립자이며 공동대표이며 하비스트락 교회 담임목
사인 한인 1.5세 체 안(Che Ahn) 목사가 최근에 한국에서 모였던 집회
(2006. 5. 8-10, Cindy Jacobs 초청 잠실 올림픽홀)에서 한 간증의 한 토막
을 살펴보면 잘 나타난다.
- 부흥은 많은 현상을 동반한다. 많은 떨림이 있다. ... 하나님은 나에게 성
령과의 만남이 있을 때 환경에 대해서도 권세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나
는 강력한 몸의 진동과 떨림이 있었다. 실성한 사람처럼 뛰었다. 설명할 수
없지만 내 몸을 볼 수 있었다. 내 영이 떠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영광이
둘러서 있는 보좌를 봤다. 주님과 하나 되는 순간 ‘너는 천국에서 나와 함
께 앉아 있다’고 하셨다. 보좌는 권세를 뜻한다. 즉시 내 몸으로 돌아왔
다. 이 육체이탈을 경험한 이후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 (전
정희, “밀려드는 ‘新사도적 개혁 운동’ 파도,” 교회와 신앙,
amennews.com, 2006.6.5)
체 안 목사는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에 기초하여 그는 육체이탈의 경험을 말
하며, 그것이 곧 성령의 부흥이라고 말한다. 이는 성경 어디에서도 근거를
찾기 어려운 신비주의적 체험을 통한 현세의 문제 해결을 말하는 주장이다.
고린도후서 12장에 기록된 체험에 대해서 바울 사도는 그것이 곧 영혼과 몸
이 분리되는 육체이탈이라고 말하지않았다. 그는 그것을 주님께로부터 받
은 환상과 계시라고 말했을 뿐이다. 그러한 은혜의 체험으로 인하여 바울 사
도는 이로 인하여 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
과 곤란을 당하는 일을 오히려 기뻐하노라고 말한다. 그러나 체 안은 자신
의 신비적 체험을 말하면서 집회에 모인 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기도를 하며
자신의 기도를 따라하도록 하였다.
- 제게 주신 권세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시간 종교의 영을 묶나
니, 궁핍의 영을 묶나니, 끊어버리노라. 예수의 이름으로 떠나갈 지어다. 다
시 심나니, 믿음으로 내가 축복을 받습니다. 더 나은 직장을 받습니다. 월급
의 인상을 받습니다. 승진을 하게 됩니다. 은총을 받아들입니다. 유업을 받
습니다. 모든 빚이 끊어졌습니다. 수표가 내게 날아옵니다. 형통함이 옵니
다.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의 그 일을 이룰 수 있도록. 할렐루야! (전정희,
“밀려드는 ‘新사도적 개혁 운동’ 파도,” 교회와 신앙, amennews.com,
2006.6.5)
이 기도가 바울 사도의 기도와 얼마나 다른가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신사도적 직접계시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복음의 이해와 삶이 사도
와 얼마나 커다란 차이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 비록 그러한 주장을 하
는 사람들이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닐지 몰라도 - 인터넷에서 그들과 관련한
자료를 살펴보면 상당한 정도로 알 수 있다. 이 시대의 여성 예언자(?)로 높
은 명성(?)을 누리고 있는 씬디 제이콥스(Cindy Jacobs)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 하늘로부터 두루마기가 와 있다. 하나님의 임재가 이 자리에 와 있다. 여
기에! 저기에! 저! 저 뒤로 가고 있다! 바로 이 자리에! 여기! 저기! 취하
라! take it! 뒤로! 뒤로! here! here! 여기 임재! 받으라! 취하라! 하나님
의 파도가 임했다.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가 지금 일하고 있다. (전정희,
“밀려드는 ‘新사도적 개혁 운동’ 파도,” 교회와 신앙, amennews.com,
2006.6.5)
씬디 제이콥스는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눈으로 보며 그것을 회중들로 하여
금 손을 들어 잡는 손짓과 더불어 취하여 받으라고 외쳤다. 이러한 메시지
와 현상에 담겨 있는 심각한 신학적 문제점과 오류들은 집회 현장 안에서는
오히려 성령의 물결이며 능력의 체험으로 간주되는 분위기에 덮여지고 오히
려 고무된다.
2. 예언, 지혜, 지식의 은사
이러한 현상들을 결과하는 ‘제3의물결-은사주의 운동’은 다음과 같은 신학
적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예언과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적으로 청취
하여, 예언과 지혜와 지식의 말씀을 전하는 신령한 은사를 인정하는 것이
다.
이 은사는 알파코스에서도 중심적인 은사로 높임을 받는데, 그 예언의 은사
는 어떤 상황에서 어떠한 선택을 하여야 되는가와 관련한 내용, 그러니까 왼
쪽으로 가야할 것인가 아니면 오른쪽으로 가야할 것인가와 같이 매우 구체적
인 결정을 지시한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내용이다. 우리가 다 믿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역사
와 삶 가운데 자신의 작정을 이루어 가신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가 마땅히 살아야 할 옳은 도리가 무엇인지를 밝혀주는 교훈을 보이셨
고, 이 교훈에 따라서 우리로 하여금 판단하여 순종토록 하셨다.
하지만 성경은 어디에서도 내가 무엇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을 하여야
할 것인지를 알기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서 행동을 하도록 교훈하고 있지 않
다. 말하자면 개인의 세세한 삶의 정황 안에서 신탁을 통하여 구체적인 인도
를 받도록 교훈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성경은 누군가가 이러한 구체적이며 세세한 삶의 선택들에 대해서 하
나님의 뜻을 말하여 주겠다고 주장하는 점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악한 영에
사로잡힌 자이므로 너희 가운데서 그를 제하라고 경계의 말씀을 주고 있다
(신 18:9-14).
지식의 말씀은 알파코스와 빈야드에서 빈번하게 볼 수 있는 은사 가운데 하
나이다. 이들은 치유의 은사를 행하기 전에 모인 이들 가운데 누가 치유를
받아야 할 것인지를 분별하여 낸다.
예를 들어, 이 자리 모인 자들 가운데 주님께서 치유하기를 원하는 자가 있
는데, 그 사람은 이러저러한 사람이라고 말하며, 그러한 사람을 찾아낸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아픈 부분과 동일한 신체 부위에서 자신도 아픔을 느
낀다고 말하며, 그러한 사람을 찾아내는 은사이다. 말하자면 지식의 은사는
치유의 은사와 함께 가면 치유를 실행하는 은사이기도 하다.
이러한 예언과 지식의 은사를 사용하는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말씀을 직접 받
게 됨으로 그의 권위는 성경의 권위에 방불하게 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성경
보다 더 우월한 권위를 갖는다.
삶의 자리에서 성경의 교훈을 받아 성령의 조명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 이
외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가를 말하는 비밀한 예언을 인정하
게 되면 그러한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 자에게 영적 형편을 의지하게 된
다.
말하자면 그 예언자(?)에 의하여 영적 질서가 재편성이 되며, 은사가 보이
는 능력의 규모에 따라서 권위가 계층적으로 형성이 되며, 그 예언자는 하나
님의 뜻을 밝히는 열쇠를 지닌 자로 인정을 받게 된다. 즉 그는 하나님과 우
리 사이에 하나의 제사장, ‘다리를 놓는 자’(pontifex)로 하나님의 뜻을
밝히는 열쇠를 가진 자가 되는 것이다.
사도 시대에 있었던 예언의 은사는 살아 있던 사도들에 의하여 무리한 무질
서가 나타나지 않도록 통제를 받았다. 즉 성경의 권위에 의하여 통제를 받았
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사도들에 의한 성경이 기록이 된 이후에, 성경 이외
에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 받는 어떠한 예언이나 계시가 있다는 것은 성경과
더불어 최종적인 계시적 권위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므로 결코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3. 능력 기도
다른 하나는 이른바 ‘능력기도’의추구이다. 능력기도의 능력이란 기도를
함으로써 기도의 응답을 확실히 보장을 받는다는 의미를 넘어서, 어떠한 현
실의 미래도 우리의 의지대로 하나님의 뜻을 바꿀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능
력을 뜻한다.
능력기도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신자 일반과 일상의 일과 관련하여 대화를 나
눈다고 말할 수 있는 어떠한 실례도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는 데에 있다. 현
실과 미래를 바꾸는 능력기도에 담겨 있는 ‘능력’의 신학은 하나님의 섭리
에 대한 이해와 충돌이 된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로 하여금 겸손케 하시
고 또 고난 가운데에서도 우리를 향한 선한 계획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자라 할지라도 연약한 성품을 갖고 있으며 그로 인하여 죄를 범하
며 살면서 하나님의 교훈에 따라서 회개와 거룩한 순종의 인도함을 받는다.
복음은 고난의 십자가를 포함한다. 십자가의 신학이면서 또한 고난의 신학이
기도 한 복음은 빈야드에서 말하는 능력의 신학과는 다른 것이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음으로써 받는 것
이 아니다. 그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중생케 하시어 심어주신 새 성품
에 따라 성경의 교훈에 순종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은혜를 가리켜 말하는 것
이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간구하여 현실을 바꾸는 능
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요컨대 ‘능력의 신학’은 ‘고난의 섭
리’를 부정하는 그릇된 결과를 낳는다.
4. 치유 사역
알파코스와 빈야드 교회의 신학적 특성들 가운데 ‘치유사역’은 그들 사역
에 있어서 그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서 치유사역은 외적인 신체의 치유
뿐만 아니라, 내면적인 감정 및 영혼의 치유까지를 망라한다. 앞서 말한 예
언적 지식의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누구를 치유하시기를 원하시는지를 알아
내 이후에 치유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위해 기도한다.
이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치유사역을 단순히 긍정적으로 보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강조해야할교회사역의 핵심적 요소로 생각을 한
다. 왜냐하면 이들의 신학에 따르면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하였기 때문이
다.
빈야드 설립자 존 윔버가 그의 책 능력전도(Power Evangelism, 나단출판사,
2003년 7월)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이들은 ‘이미 그러나 아직’(already
not yet)으로 표현이 되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의 이해에 따라서
자신들의 치유사역을 설명한다.
이들은 주장하기를,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하였기 때문에, 성령의 능력에 의
한 치유사역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아직은 아니기 때문에 모두가 치유
를 받지는 못하고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을
치유의 효과적인 범위의 측면에서 양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치유사역 자체는 ‘이미’로서의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드러내는
표적일 뿐 하나님 나라 자체는 아니다. 즉 치유, 축사, 죽은 자를 살리심,
오병이어, 물을 포도주로 바꾸심, 물 위로 걸으심 등의 모든 이적들은 이것
을 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들이시라는 것과 그가 이루실 십자가
와 부활의 사역을 가리키는 표적들인 것이다.
이러한 표적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십자가와 부활의 구속 사
역을 통하여 이루실 하나님 나라, 곧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시
는 평강의 나라, 임마누엘의 나라가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임할 것임을
보이신 것이다.
결국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은 죄사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하나님의 백성의 영광스러운약속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와
그의 부활로 인하여 성취될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은 아닌’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역이 재림으로 완성될 때에 이
루어질 것임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을 위한 십자가 죽음을 이루시고 또한 부활을
하셨으니, 이처럼 역사적으로 이미 일어난 구속 사건들을 믿거나 그 의미들
을 이해하기 위하여, 표적들이 다시 새롭게 나타나기를 바랄 이유나 그것들
에 의지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미 성경에 기록된 과거에 있었던 표적들
을 믿고 그것들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만으로, 그것들이 표적으로써 가리키
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들되심과 그의 구속사역의 의미를 바르게 충분히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요컨대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하였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
역으로 인하여 죄사함과 하나님의 자녀됨을 누리는 임마누엘의 은혜가 이미
우리에게 임하였음을 뜻하는 것이지, 누구나 이 세상을 살면서 치유의 사역
을 행하며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마태복음 8장 16-17절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
리고 예수께서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
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는 말씀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신” 것을 어떻게 이해하여
야 할 것인가는 이사야 53장의 해석과 관련을 갖는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이사야 53장은 ‘고난의 종’에 대한 예언으로서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말하여 주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마태복음 8장에서 치
유와 관련한 이적에 대한 해설을 이사야 53장으로 연결한 것은 그 치유의 이
적이 그 자체로 실체가 아니라 죄사함의 은혜를 가리키는 표적임을 말해준
다.
즉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이적들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구속 사
역을 가리키는 표적인 것이며, 그 표적들은 실체인 구속 사역이 이루어진 이
후에는 더 이상 구속사역의 이해를 위하여 필요한 것들이 아닌 것이다.
만일 ‘이미’라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이 치유사역이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음을 말하며, 또 ‘아직은 아님’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은 모든 이
들이 다 치유를 받는 보편적 완전성을 뜻하는 것이라면, 왜 비단 치유사역만
이 그렇게 이해되어야 하겠는가? ‘죽은 자가 살아나는’ 이적도, ‘오병이
어’ 이적도,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는’ 이적도, ‘물 위로 걸으시는’ 이
적 등도 일어나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 나라의 ‘이미’와 ‘아직은 아님’은 치유사역의 효과적인 범위에
따른 양적 개념으로 구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실체적으로 동일한 하나님 나
라의 질적 완성의 개념에 따라 구별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신학의
관점에서의 ‘능력전도’의 변명은 신학적 타당성을 잃는다.
5. 영적 전쟁
끝으로 빈야드 제3의 물결의 신학의 특성 가운데 덧붙이고자 하는 것은 소
위 말하는 ‘영적 전쟁’(spiritual warfare)에 대한 이해이다. 이것은 실제
적으로 매우 심각하다. 프랑크 피레티(Frank Peretti)가 쓴 소설, 어둠의 권
세(This Present Darkness, 예찬사, 1986)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영적 실상
이 그러한 것처럼 이해하는 커다란 잘못을 범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오는 영적 싸움의 대상은 뉴에이지를 좇는 사람들 또는 악한 영들
이다. 악한 영과의 싸움은 피터 왜그너(Peter Wagner)가 그의 책 기도는 전
투다(Warfare Prayer)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개인적, 주술적, 전략적 전투
의 세 구조로 실행이 된다. 이러한 영적 전쟁의 전재는 각 지역과 나라와 대
륙마다에 각각의 영역을 관장하는 귀신들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과
개인적이며 주술적이며 전략적인 차원에서 전투를 실행하여야 하며, 이것이
성도가 부르심을 받고 있는 영적 전쟁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물리적인 물체나 건물들도 귀신들에 의하여 오염이 되어 있기 때
문에 물리적인 건물이나 물체들을 향하여서도 축사를 통해 영적 전쟁을 치열
하게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귀신들과 맞서서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
나 이러한 적어도 주술적이며 전략적인 영적 전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이 아니고 오직 축사의 은사를 사람들에 의한 대리적 전투를 통해서 실행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영적 전쟁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성경에서 말하는 영적전쟁과 사
뭇 다른 것이다. 성경적 의미에서의 영적 전쟁은 귀신들과 직접 대항하는 것
이 아니고 진리의 말씀에 근거하여 믿음의 도리를 확신하고 거룩함을 온전
히 이루어 가며 사랑과 연합을 이루는 거룩한 공동체를 실현하며 섬기는 것
과 관련한 것이다. 에베소서 6장에서 확인이 되는 영적 전투와 관련한 모든
교훈들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권면이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미(already)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악한 영에 대
하여 승리를 하였으며(엡 2:1-3), 장래에 있을 완전한 구속을 보증하는 성령
을 받았다(엡 1:13-14).
이러한 맥락에서 ‘이미’ 승리한 것이요, 완전한 승리는 ‘아직은 아닌’
것이기 때문에, 성도가 지역에 속한 악한 영들을 내어쫓아야 한다는 의미에
서 귀신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감행하여야 하는 전략적 의미에서의 영적 전투
는 결코 성경적인 의미에서의 영적 전쟁이 아니며, 신뢰성을 갖지 못한
다.
알파코스와 개혁교회 3
최근 알파코리아와 관련된 논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지난 5월 19
일 총회신학위원회와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주최‘장로교 신학적 입장에서
본 알파코리아 세미나’에서 발표된김병훈 교수의 글을 ‘알파코스와 개혁
교회’란 제목으로 3회 연재한다. |편집자주|
알파코스에 대한 평가
김병훈 교수_합신 조직신학
“방언·예언·신유 등 초자연적 체험을 신앙고백의 결정적 요소라고 주장
하는 것은 신비적 주관주의 뉴에이지 철학과 같아”
▣… 빈야드식 성령 체험이 알파의 핵심적 요소
▣… 말씀에 따른 영적인 각성만이 성령의 사역
▣… 기도와 찬양, 헌신 등 경건의 총합 이뤄야
“개혁주의는 객관적 말씀의 진리 통해 복음을 전파하며 자기학습과 신학
적 해석아래 은혜의 각성 추구해”
1. 알파코스는 빈야드식의 체험우선주의
알파코스를 전파하는 사람들은 알파코스가 단지 전도의 한 방편일 뿐이라고
강변을 한다. 그들은 주장하기를 하나의 전도 방편인 알파코스를 신학적으
로 비평하는 것은 결코 적절한 접근이 아니며, 오늘날과 같이 전도가 어려
운 시대에 전도의 좋은 방편을 격려하는 일이 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의 전도방법으로서의 알파코스가 갖는 문제점은 그것이 철저히
‘체험에 기초한 증거주의’를 방법론적 전제로 삼는다는 것이다. 니키 검블
은 이러한 전제를 추구하는 까닭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한다.
- 계몽주의 시대에는 이성이 최고봉에 있어 모든 것을 다스리고 논리적 설명
을 통하여 체험에 이르게 하였다. 그러나 여러 문화가 ‘함께 어울리는’
(pick-and-mix) 세계관을 가진 현재의 문화적 변이과정에서는 뉴에이지 운동
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체험을 통하여 논리적 설명에 이르게 한다. (알파코
스 운영방법, 55)
검블의 생각에, 오늘의 세계관은 이성을 기초로 하는 논리적 설명을 통하여
진리를 수납하고 그 진리를 체험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체험을 통하
여 진리를 수납하고 논리적 설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따른다.
그는 이러한 현대의 세계관을 반영하여 하나님을 체험케 하는 구체적인 방식
을 사용하는 전도가 오늘날에는 요구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알파코스라고
말한다. 과연 그러한 방법론적 전제에 따라서 알파코스가 어떠한 열매를 맺
고 있는지에 대해 검블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코스 마지막에 나는 설문지를 모두 나눠주고 코스 시작 전에 크리스천이었
는지 아닌지, 그리고 지금 그들 자신을 어떻게 말할 수 있는 지에 대해 묻는
다. 만일 어떤 변화가 있다면 나는 그 변화가 언제 일어났는지에 대해 묻는
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결정적인 순간은 주말 수양회 토요일 저녁이
다 ... 토요일 저녁 순서를 마친 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의 노래로
응답한다. 때때로 우리는 방언으로 찬양드린다.” (알파코스 운영방법, 194-
195)
“결정적인 순간은 주말 수양회 토요일 저녁이다”는 검블의 말은 알파코스
가 결국 회심의 기초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에 대해 말해 준다. 알파코스의
주말 수양회는 이미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방언, 예언과 지식의 은사의 실
행을 통한 치유의 역사를 체험하도록 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신앙을 고백케 하는 결정적인 순간이 주말 수양회 저
녁이라는 말은 바로 방언, 예언, 신유 등의 초자연적인 신령한 체험이 신앙
을 고백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 방식은 많은 위태로움을 내포한다. 사실, ‘체험을 통하
여 설명에 이르게 한다’는 것은 뉴에이지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관점이다.
이미 빈야드식 은사주의 운동에서 보는 바처럼, ‘토론토 체험’ 같은 것들
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게 보다는 신비주의적이며 감정과 감흥에 치우치
는 주관적 상황에 이끌리게 한다. 주말 수양회에서 방언을 스스로 하지 못하
는 사람들에게는 방언을 따라하도록하여 흉내를 낸 방언으로 찬양을 하도
록 하는 것 등도 바로 이러한 사례를 보여주는 한 가지 예이다.
그렇다면 결국 알파코스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한 체험을 하도록 이끌어
가기 위한 하나의 예비적 사역을 담당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말하자면 알
파코스는 하나님의 말씀의 각성을 통하여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지식이 굴절되어 있거나 또는 결핍되어 있는 상태에서
신비한 체험에로 나아가도록 이끌어갈 우려가 심대한 것이다.
알파코스는 사도시대의 은사들이 지금도 여전히 역사하고 있으며, 그것으로
인하여 사도들의 복음전파가 지금도유효하게 진행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주
장하지만, 사도들의 복음전도는 알파코스와는 전혀 다르게 철저히 성경 말씀
에 대한 강론을 기초로 하여 논리적 설득의 형식을 따르고 있음을 주지하여
야 한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2장에서 보는 바와 같은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역사와
이어지는 베드로의 설교를 살펴보자. 오순절날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임한 성
령의 방언의 역사는 각 국에서 모인 유대인들을 놀라게 하였지만, 그들이 회
심을 하고 그리스도에게로 나오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모두 베드로의 길
게 이어지는 설교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베드로는 요엘서를 풀어 이 날에 있었던 성령의 역사를 설명한 이후에, 이어
서 시편 16편과 110편 등을 풀어 해설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과 부활의 복음을 설교하였던 것이다. 베드로의 설교에 담겨 있는 깊고 오묘
하며 정교한 성경의 해설이 그곳에 모였던 유대인들 가운데 일부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토록 하였던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마이클 호튼(Michael Horton)이 말하는 바를 들어보도록 하
자.
- 만약 성령이 은혜의 수단과는 별개로 역사하신다면, 우리는 성령님이 ‘능
력대결’과 기도회와 고백 모임과 같은 부흥회와 같은 대중 집회에 의해 우
리를 유지시켜 주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너털웃음을 터뜨리거나 개처
럼 짖는 등의 이상한 현상에 몸을 맡김으로써 성령님께 도달할 수 있을 것이
다.
자 이제 실제로 인간 역사 가운데 일어났던 그 오순절(사도행전 2장에 기록
된 오순절)에 대해 생각해보자 ... 성령의 권능이 전 세계로부터 그곳에 모
여들었던 사람들에게 내렸으며, 베드로는 매우 긴 설교를 선포하고 있었다.
실제로 사도행전 전체에서, 우리는 선교와 전도와 확장의 면에서 교회의 위
대한 전진들은 기적들을 포함하고 있지 않았고, 선포된 말씀에 대한 응답으
로 일어났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
그리스도인들이라고 고백하는 어떤 집단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에 대한 초점
을 어느 정도 ‘능력 대결’로 바꿔치기를 하는 것은 바로 그 집단이 오순절
의 애초의 권능으로부터 그 정도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베드로는 자기의 설교를 ‘진짜 흥분되는 일’에 대한 필수적인 서두로 여기
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능력 부흥사들은 표적들과 기사들의 ‘사역 시간’
이전에 간단한 메시지를 그렇게 보는 것 같다 ... 이는 우리가 성령님의 사
역을,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며 성경 말씀을 조명해주시는 분으로서의 고유
한 역할보다 우리 자신의 개인적 체험과 연결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말씀과 성례전과는 별개의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찾고 있다면,
정말로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해주신 이러한 활동들
(말씀과 성례전)이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을 제공해 준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진정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충만한 삶이 이루어질 것이
다.” (마이클 호튼, 미국제 영성에 속지 말라, 258-261)
호튼이 잘 지적하고 있는 바처럼, 부흥을 위한 것이든 전도를 위한 것이든
어떠한 집회에서 그 초점을 성경에 근거하여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으로부
터 어느 정도 ‘능력 대결’로 전환하는 것은 그 집회가 오순절날의 재현이
아니라 오히려 그 날에 임한 성령의 권능으로부터 벗어난 것임을 주지하여
야 한다.
성령께서는 은혜의 수단인 말씀과 더불어 회심의 역사를 일으키신다. 다시
말해서 설교는 결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지식의 영역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회심을 일으키는 수단인 것이다. 이미 성경에 이르기를 하나님께서
는 전도, 곧 복음을 전하는 말씀의 전파 또는 설교라는 연약한 수단을 사용
하여 자신의 백성을 부르신다고 하였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결국 알파코스는 근본적으로 신사도개혁운동으로 이어지는 빈야드 은사주의
운동의 맥을 따라서 은사주의적 체험에 기초한 전도 방법론이라고 판단을 내
릴 수 있다. 알파코스에 있어서 빈야드식의 성령체험은 알파코스의 성패를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이며 본질적인요소인 것이다. 검블은 이 점을 알파코
스를 설명하는 그의 글에서 숨기지 않고 밝히고 있다.
- 알파를 그렇게도 감격스럽게 하는 것은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사역(work)이다. 대화를 전달하시고, 그룹 토론을 진척시키시고, 성경 공부
를 하게 하며 목회적 돌봄, 운영, 그리고 알파의 모든 면을 가능케 하시는
것은 성령님의 활동이다 ... 존 윔버는 사역을 ‘하나님의 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다른 사람들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
그러나 나는 ... 좁은 의미로 그 말을 사용하고자 한다. 즉 특별히 우리가
성령의 능력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일어나는 사역에 관
해서 설명한다 ... 성령님의 사역은 알파에 결정적이다. 그것이 없다면, 진
실로 알파코스가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을 우리 가운데 보내심으로 단순한 요구도 들으
신다는 것을 더욱 알게 되었다. 그 결과 놀랍고 깊은 변화가 항상 사람들의
삶 가운데 일어난다. 우리는 계속해서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그리스도께 드
리며, 성령으로 충만하며, 예수님께 감격하고,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을 다
음 코스에 데리고 오는 것을 보게 된다 (알파코스 운영방법, 179-180, 202-
203)
검블이 말하는 ‘성령님의 사역’은 ‘존 윔버’가 말하는 성령님의 사역이
다. 그것은 빈야드 은사주의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빈야드 은사 체험을
가리키는 성령님의 사역을 빼놓고 알파코스를 말할 수는 없다. 검블이 말하
듯이 성령님의 사역은 “알파를 그렇게도 감격스럽게 하는 것”이며 또한
“알파에 결정적”이어서 “그것이 없다면, 진실로 알파코스가 되지 못하였
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님은 성령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해 말할 것이라고 예수
님께서 말씀하셨음을 기억하여야 한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
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
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요 16:13-14).
예수님에 대해 말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우리를 중생케 하시며, 말씀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영적인 각성으로 이끄시며, 그리스도와 연합케 하는 일이다.
호튼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십자가의 신학은 완전주의, 신비주의, 영적
엘리트주의, 공로에 의한 모든 도식들에 반대하여 서 있는 만큼, 십자가 신
학으로 이끌지 않고 신비주의에 치중하며 그것을 성령의 사역이라 일컫는 것
은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사역에 대해 말씀하신 것에 비추어 볼 때 인정하기
가 어렵다.
2. 결론
알파 코스는 본질적으로 빈야드 은사 운동을 적용한 전도의 방편이다. 이것
은 복음의 적절한 교훈보다는 소위 성령의 능력의 “체험”을 기초로 하여,
예언, 치유, 능력기도, 영적 전쟁 등에 대해서 성경적 근거가 없으며 신학적
으로 부적절한 이해와 신앙 양태를 야기시킨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
음을 듣고 회개하며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러한 회심과 신앙은 성령님의 신비한 내적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성령님은, 말씀과 성례라는 은혜의 수단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교훈에 순종토록 각성을시키시며, 기도와 찬양 가운데 감사와
회개와 순종을 통하여 성화를 이루게 하시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기뻐
하도록 하신다.
알파 코스가 말하는 성령의 능력 체험과 그것의 증거로 제시하는 각종의 입
신, 지식의 말씀, 예언, 치유, 영적 전투 등의 현상들이 복음의 올바른 말씀
과 상관없이 강조되며 주장이 될 경우 그 모든 것들은 성경적이며 개혁주의
적인 신학과 복음의 이해와 근본적인 충돌을 일으킨다. 즉 성경적인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 메시지에서 심각한 일탈을 일으킨다.
알파코스가 비록 불신자를 전도하기 위한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며, 전
도의 방편일 뿐이라고 아무리 강변을 한다고 하더라도, 알파 코스의 핵심인
빈야드 은사주의가 필연적으로 신사도 개혁운동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유의하
여야 하다.
따라서 알파코스는 개혁주의 교단에서 결코 그대로는 용인될 수 없는 ‘신비
주의적’이며 ‘은사주의적’인 전도전략일 뿐만 아니라, 신사도 개혁운동
의 주장에서 보듯이 종국에는 교회론적 위기를 초래할 것이므로 심히 경계해
야할 대상이다.
개혁주의 장로교회는 결코 사도 이후의 어떠한 계시적 권위를 지닌 신비적
은사와 체험 위에 그 기초를 두고 있지 않으며, 오직 성경의 교훈에 일치하
는 믿음과 은혜의 신학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위에 그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개혁주의 목사는 어떻게 하여야 하나? 개혁파 목사는 체험적 주관주
의에 호소하여 복음을 설득하려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객관적 말씀의 진리
를 강론함으로써 복음을 전도하여야할 것이다. 체험과 감성의 세대인 오늘
날에 있어, 개혁파 목사는 성경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하여 성경연구에 더
욱 더 정진을 하여야 한다.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학습을 통한 신학적 해석의 관
주를 만들어가면서 성경의 교훈을 탁월하게 이해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
고 개혁주의 신앙고백문서들을 잘 풀어 가르칠만한 신학적 소양을 연마하여
야 한다. 성경해석을 바탕으로 하여 신앙고백문서들을 강론할 때, 성령님께
서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놀라운 은혜의 각성을 성도들과 함께 체험하는
기쁨을 누려야 한다. 이를 토대로, 기도와 찬양, 그리고 헌신과 봉사의 경건
의 총합을 이루어가야 한다.
개혁파 신학은 은사주의자들이 비판하듯이 이성의 논리에 갇혀 있는 합리주
의의 포로가 아니다. 개혁주의는 성경의 말씀과 함께 성령의 신비한 역사로
인하여 우리의 심령을 흔들며 변화시키며 몇 날이라도 회개하며 구원의 기쁨
에 겨워 찬양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감사의 순종을 드리는 열정적
부흥을 포괄한다. 아울러 기독교세계관에 대한 이해와 동시에 이 세대의 문
화를 이해하기 위한 학습을 통해 불신자들의 질문과 생각을 짚어 갈 수 있어
야 한다.
이러한 복음의 훈련이 중단되거나 결핍이 되면, 포스터모던 시대라 일컫는
오늘날에 - 한국은 어떤 의미에서 항상 포스트모던 시대였지만 - 주관주의
에 함몰되지 않고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바른신학 위에 세워가는 목양을 올
바르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감정적 열광주의로 나타나는 부흥을 맹목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개혁파 신학
이 아니다. 목사 개개인이 이것을 감당키 어려울 것인 만큼, 노회나 총회를
통한 “목회자 평생교육”이 실시되도록 할 필요와, 동시에 불신자 전도를
위한 방안을 논의키 위한 실천적 지혜와 연구를 시행할 필요가 절실하
다.
*기독교개혁신보 513호(2008년 7월 29, 2008년 8월 13, 2008년 8월20)에서 퍼온 글입니다.
알파코스와 개혁교회 1
알파코스와 은사주의 운동
최근 알파코리아와 관련된 논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지난 5월 19
일 총회신학위원회와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주최
‘장로교 신학적 입장에서 본 알파코리아 세미나’에서 발표된 김병훈 교수
의 글을 ‘알파코스와 개혁교회’란제목으로 3회 연재한다. |편집자주|
김병훈 교수_합신 조직신학
"알파코스는 불신자들을 접촉하기위해 1976년에 고안된 프로그램"
"알파코스는 사실상 성령 체험에 초점을 맞춘 하나의 은사주의 운동"
"알파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은사들도 추구하는 체험과 표적 추구해"
"은사주의적 체험 추구는 건전한 전도방법으로는 결코 권장할 수 없어"
1. 알파코스란 무엇인가?
1) 기원 및 현황
알파코스(Alpha Course)는 영국 런던에 있는 '성 삼위일체 브롬프톤'(Holy
Trinity Bromptom Church) 성공회 교회(이하 HTB로 약함)에서 1976년에 당
시 주임신부였던 찰즈 만함(Charles Marnham)에 의해서 시작된 전도 프로그
램이다.
알파란 명칭은 다섯 가지의 뜻을 표하는 구절의 첫 글자를 모아 만든 두문자
어(acronym)이다. 예를 들어, 첫 글자 A는 '누구든지 올 수 있다'(Anyone
can come)를, L은 '웃으면서 재미있게 배운다'(Learning and Laughter), P
는 '음식을 함께 먹는다'(Pasta), H는 '서로 섬기며 돕는다'(Helping one
another), 끝으로 A는 '무엇이든지 물어볼 수 있다'(Ask anything)을 뜻한
다.
이러한 구절들의 조합으로부터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바처럼 알파코스는 비
공식적으로 비교적 자유롭게 불신자들을 접촉하는 기회를 만들어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전도목표 아래 고안된 전도프로그램이다.
알파코스는 찰즈 만함 이후 1981년에 존 어바인(John Irvine), 1985년에 니
키 리(Nicky Lee)에 의해 조금씩 변화를 겪었으며, 1990년에 니키 검블
(Nicky Gumbel)에 의해서 지금과 같은 내용으로 진행이 되고 있다. 알파코스
의 보급 현황은 놀랍다.
영국의 알파코스 홈페이지(http://www.uk.alpha.org)에 따르면, 영국에서만
200만, 전 세계적으로 1,100만 명 이상이 알파코스에 참석하였으며, 163개국
에서 알파 세미나가 개최되고 있다.
2) 진행방식
알파코스의 진행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강의를 듣고
이를 근거로 소그룹별 대화를 나누거나 치유사역을 행하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금요일부터 주일까지 2박 3일간에 걸친 주말 수양회를 개최하는것이
다.
주제 강의들은 10주에 걸쳐서 진행이 되는데, 1주는 '예수님은 누구신가'라
는 주제로 예수님의 위격에 관하여, 2주는 '예수님은 왜 돌아가셨나'라는 주
제로 예수님의 사역에 관하여 강의를 한다. 3주는 믿음, 4주는 성경, 5주는
기도를 다룸으로써 신앙의 실천적 측면들을 다룬다. 이어서 6주는 하나님의
인도, 7주는 악에 대한 대항, 8주는 전도, 9주는 하나님의 치유사역, 그리
고 마지막 10주는 교회와 관련한 주제를 다룬다.
여기서 5주의 '기도'부터, '하나님의 인도,' '악에 대한 대항.' '전도,' 그
리고 '치유' 등의 주제들은 사실상 모두 성령의 사역에 관련한 주제와 직,
간접적으로 연결이 된다. 알파코스의 모든 진행은 사실상 성령의 체험에 초
점이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알파코스의 성패는 성령의 체험을 위한 주말 수
양회를 어떻게 치러 내는가에 있음을 알파코스 관련자들은 매우 강조를 한
다.
대체로 6주차 즈음에 철저한 성령체험을 위해 개최되는 주말 수양회는 네 번
에 걸친 대화의 마당을 전개한다. 예를 들어, '성령은 누구신가?' '성령이
무슨 일을 하시는가?' '어떻게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남은 삶을 최대한 선용할 수 있을까?'등의 주제들이 다루어진다.
요컨대 알파코스는 전체적으로 성령론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해를 기초로 하
여 전체의 전도프로그램을 구조화하고 있는 것이다. 주말 수양회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주제강의들은 주말 수양회에서의 성령의 체험을 돕고 그 체험
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나름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해
석할 수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주말 수양회 이튿날 밤에 거의 캬바레 분위기와 비슷한
잔치를 열어, 어떤 노래이든지 제한을 두지 않은 채 부르며, 거의 종교적인
색채를 갖지 않는 매우 자유분방한 분위기 가운데 즐거움을 누리도록 한다
는 점이다.
주말 수양회 이튿날인 토요일 오후까지 성령의 방언의 체험과 치유의 역사
를 강조한 이후에 마지막 날인 토요일 밤에 이러한 행사를 여는 것이 성령
의 체험을 강조한 전도 방식에 어떠한 도움을 주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3) 원리
알파코스가 이처럼 성령체험을 하도록 하는 데에 모든 전도의 초점을 두는
까닭은 그들의 생각에 신약성경의 전도 방식이 '능력전도'의 모델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전도는 메시지를 선포하는 고전적인 방식에 따라 이루어지기
도 하며, 또한 경건주의나 초신령주의를 떠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식에
따라 이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성령의 능력에 의한 표적과 기사를 체험하
도록 하는 '능력전도'야 말로 가장 강력하며 성경적인 전도방식이라는 것이
알파코스의 신학적 판단이다.
전도는 기본적으로 전인격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계몽주의의 영향을 입
어 이성에 따라서 진리를 판단하는 자들을 위하여서는 머리에 호소하는 전
도 방식을 취하되, 뉴에이지적 배경을 따라서 체험에 기초하여 진리를 판단
하는 자들을 위하여서는 마음에 호소하는 전도의 방식을 취할 필요가 있음
을 알파코스는 강조를 한다. 성령은 사도시대와 다름없이 오늘 우리 가운데
여전히 역사하고 있기 때문에 전도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 다이나믹하고도 효
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2. 알파코스와 ‘제3의 물결
-은사주의 운동’
1) 니키 검블과 존 윔버
알파코스가 성령의 능력전도를 전도의 근본으로 여기는 까닭은 그것이 빈야
드의 은사주의 운동과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알파코스 태동기부터 흐
름을 보게 되면 알파코스는 제3의 물결의 은사주의 운동과 본질적으로 맥을
같이 한다.
토론토 에어포트 빈야드 교회에 참석하여 소위 '토론토 축복'이라고 불리
는 '거룩한 웃음'(Holy Laughing)이라는 은혜를 체험하고 돌아온 '남서 런
던 빈야드 교회'(the Southwest London Vineyard)의 사모인엘레아노르 멈포
드(Eleanor Mumford)가 개최한 집회에서 니키 검블은 성령의 전류체험을 하
였다고 한다. 이 때가 1994년이었다.
검블은 HTB(Holy Trinity Bromptom Church)에서 자신 스스로가 성령을 초청
하여 참석한 사람들에게 동일한 현상을 경험토록 하였으며, 이에 HTB의교구
목사인 샌디 밀러(Sandy Millar)는 멈포드를 다시 초청해서 이러한 현상을
다시 경험을 하고 자신이 또한 토론토에 가서 경험을 하였다. 불신자를 전도
하기 위한 알파코스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은사주의 형태로 전환되
어 갔다.
이러한 알파코스의 변화는 실제로는 니키 검블이라는 개인이 겪은 경험과 관
련한 보다 심층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즉 검블 자신의 전도자로서의 사역
적 동기 자체가 존 윔버에 의한 빈야드 집회에서 성령의 체험에 기초하고 있
는 것이다.
1982년에 검블은 일만 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성령의 체험을 했으며, 존 윔버
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검블을 전도자로 세웠다는 예언의 말을 듣고 이에 순
종하여 사역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1994년부터 HTB에서의 알파코스가 변화를 겪게 되는 과정을 보거나, 그
러한 변화를 이끌고 있는 검불 자신이 빈야드 교단의 총수인 존 윔버와 맺
고 있는 개인적 관계를 보거나, 알파코스의 성령 체험 운동은 결국 제3의 물
결 은사주의 빈야드 교회의 성령론을 전적으로 수용을 하는 맥락을 따르고
있다고 판단이 된다.
따라서 제3의 물결-은사주의와 그것이 끼치는 영향들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
이 알파코스라는 그릇에 담겨있는 신학적 핵심을 바르게 비평을 하는 한 가
지 길이 될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알파코리아(www.alphakorea.org)는 도서
출판 서로사랑과 홈페이지(www.srsarang.com)를 공유하면서 도서출판 서로
사랑을 통하여 오순절 성령운동에서부터 신오순절주의와 빈야드 은사주의를
망라하는 성령론과 교회성장에 관한책들을 소개 및 판매를 하고 있다.
2) 제3의 물결-은사주의 운동과 신사도개혁운동(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은사주의 운동은 역사적으로 크게 세 가지 유형들을 따라 이어져 오고 있
다. 이 유형들은 각각 ‘물결’이라는 표현을 따라서 지칭이 되는데, 첫 번
째 물결은 20세기 초 찰즈 파담(Charles F. Partham)과 윌리암 세이모어
(William J. Seymour)로 대표되는 운동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아주사
(Azusa) 거리에서 일어났던 1906-09년 사이의 부흥운동과 관련이 된다. 이
부흥운동의 결과로 인하여 오순절 운동이 태동이 되었다.
두 번째 물결은 소위 ‘신오순절주의’(neo-Pentecostal movement)라고 일컬
어지는 운동이다. 첫 번째 물결인 오순절 운동은 하나의 교단을 태동하였다
면, 두 번째 물결로서의 ‘신오순절주의’의 은사운동은 모든 교단에 걸쳐
서 나타났다. 신오순절주의는 소위 말하는 성령의 제3의 사역을 열어가는 차
원에서 기존의 교회들 그리고 전통적인 신학과 충돌과 마찰을 일으켰다.
이들은 성령은 우리를 회심시키고, 성화를 시킬 뿐만 아니라, 또한 제3의 사
역으로 성령의 세례가 있다고 주장을 하였던 것이다. 성령세례란 성령님께
서 성경에 기록된 은사들을 주실 뿐만 아니라 능력을 체험케 하심을 그 내용
으로 하는데, 심지어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은사들도 가능하다고 주
장을 할 정도로 성령사역의 개방성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신오순절주의의 이해는 당연히 기존 교단과 신학으로부터 저항과 비
판을 받았다. 왜냐하면 초자연적 은사와 체험은 표적에 불과할 뿐이며, 십자
가 대속의 은혜에 의한 죄사함과 거룩케함과 같은 하나님의 구원의 영적 실
상이 온전한 실체이기 때문이다.
기존 신학과 교단들은 오늘날에도 초자연적 은사들의 현상이, 그들이 강조하
는 바처럼, 빈번하며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주장들은 대체로 진실된 증언으
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초자연적 은사의 체험에 치중한 신오순절주의
는 구원과 신앙의 능력이 진정하며 적절한지를 초자연적 은사의 체험을 기초
로 판단하는 잘못을 범하였다.
신오순절주의의 이러한 주장은 성령의 세례는 이미 회심의 때에 받은 것이라
는 기존의 신학적 이해와는 달리, 성령세례를 회심 이후에 주어지는 제3의
사역이라고 주장을 함으로써 성령 강림의 구속사적 의의를 부정하였다.그럼
으로써 오순절에 임한 성령강림의 사건은 옛 언약에서 새 언약으로 전이가
되는 구속사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하며, 그것은 회심한 이후에 주어지는
성령의 세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고 교훈하는 개혁신학과 충돌을 하였다.
제3의 물결의 ‘은사주의’는 이러한 신학적 비평을 수용하였다는 점에서 앞
의 것들과 구별이 된다. '제3의 물결'이라는 표현은 피터 왜그너(Peter
Wagner)가 그의 책 성령의 제3의 물결(The Third Wave of the Holy Spirit)
에서 사용한 이후에 일반적으로 일컬어지게 된 것으로, 개신교 내의 교파를
초월한 복음주의 진영 안에서 나타났으며 후에는 천주교 내에서도 나타난 은
사주의 운동을 가리킨다.
제3의 물결의 대표적인 성격들은 존 윔버의 이름과 함께 한국에도 도입이 되
었던 '빈야드 교회'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제3의 물결은 자신을 지지하는 나
름의 학자군을 형성함으로 학문적 토대를 도모하였다는 점이 이전의 은사운
동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피터 데이비즈(Peter Davids, The First Epistle of Peter,
NICNT 1990), 사무엘 스톰스(C. Samuel Storms, Healing and Holiness: A
Biblical Response to the Faith-Healing Phenomenon, 1990), 고든 피
(Gordon Fee, Paul, the Spirit, and the People of God, 1996; The First
Epistle of the Corinthians, NICNT, 1987); 잭 디어리(Jack Deere,
Surprised by the Power of the Spirit, 1996; Surprised by the Voice of
God, 1998), 맥스 터너(Max Turner, The Holy Spirit and Spiritual Gifts,
1998), 웨인 그루뎀(Wayne Grudem, The Gift of Prophecy in the New
Testament and Today, 2000) 등이다.
이들 신학자들은 ‘제3의 물결의 은사주의 운동’을 나름의 성경주해에 기초
하여 지지를 하면서, 성령세례는 회심 이후에 받는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 아
니라, 회심의 때에 주어지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 이해를 개진한다.
다만 이들은 성령세례 이후에 복음의 사역을 위하여 성령님께서 능력으로 역
사하시는 일이 있으며, 이러한 성령의 능력 부으심이 바로 ‘성령의 채우
심’(filled with the Holy Spirit)이라고 생각을 한다.
또한 방언과 관련하여 오순절주의 또는 신오순절주의와는 다르게, 이들은 방
언이 성령세례를 받은 표준적 증거라고 주장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이해하지도 않는다.
알파코스는 한편으로 방언의 기도는 누구나 하는 것이 아니며 또 통변의 은
사를 통해 해석이 될 때 그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면서도 다
른 한편 찬양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며, 집단 전체가 다 함께
방언으로 찬양할 것을 권면하고 이끌어 감으로써, 실질적으로는 모든 사람
이 능력의 기도에 의하여 방언을 받기를 기대하며 또한 방언 자체를 모든 신
자됨의 첫 체험의 표지로 인정하고 있다.
이어서 주의를 하여야 할 것은 이러한 ‘제3의 물결 은사주의’는 단순히 성
령의 초자연적 은사의 현재성만을 강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
의 확장이자 열매이며 또한 필연적 결과로 소위 “신사도개혁운동”(the
New Apostolic Reformation)으로 이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3의 물결 은사주의’와 ‘신사도개혁운동’은 실체적으로 비분리적이며
동전의 양면과 같다. ‘신사도개혁운동’은 피터 왜그너가 그의 책 신사도
교회들(The New Apostolic Churches, 1998), 21세기 교회성장의 지각변동
(Church Quake!, 1999; 이레서원, 2000),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Changing
Church, 2004) 등을 통해 주창한 것으로, 교회에는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
는 자, 목사, 교사의 5대 직분이 항상 존재한다고 주장을 한다. 말하자면 오
늘날에도 사도의 직분이 존재한다고믿는 것이다.
좁은 의미에서의 사도는 열 두 사도들을 가리키지만, 넓은 의미에서의 사도
는 현재도 교회에 존재하는 직분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사도의
직분을 받은 것으로 생각되는 나름의 기준을 세워 그 기준들을 충족시키고
있다고 믿는 자들이 서로를 추천하면서 임의로 모여 12명으로 구성된 ‘사도
의회’(International Coalition of Apostles)를 구성하였다.
‘신사도개혁운동’은 사역의 목표를 단지 기존 교단 안에서 소위 은사운동
이 활성화되도록 하는 것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급기야 새로운 교회 구
조의 형식을 세우는 것에 두고 있다.
이들의 판단에 따르면 기존의 교파와 교단은 경직된 구조 안에서 내용적으로
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해 일종의 죽은 교회와 같기 때문에, 기존의
교회들을 새롭게 하여 다시 새로운 교회의 형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바로 이러한 새로운 교회의 형식을 세워갈 영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바로 사도적 은사를 받은 넓은 의미의 사도들이며, 이들에 의해서 새
로운 교회의 기초가 놓이게 된다고 이들은 주장을 한다.
이들의 이해에 따르면, 사도적 은사를 받은 이들은 성령님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직접 듣는 자들이며, 이들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계
시적 권위로 교회들에게 말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위임하여 세운 자들
인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신사도개혁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교회들은
‘종교의 영에 사로잡힌 교회들’로간주하며, 이러한 기존 교회들의 신학
은 하나님의 권능과 주권을 놓쳐버린 말라버린 신학으로 여긴다.
‘신사도개혁운동’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는 한국의 사역자들로는 빈야드 운
동의 도입에 앞장을 섰으며, 피터 왜그너에 의하여 “왜그너사역연구원”
(Wagner Leadership Institute Korea)를 설립하여 총장직을 위임받은 홍정
식 목사(과천하베스트샬롬교회 담임목사), 소위 사도들이라고 칭함을 받은
이들로 구성된 미국 CI사역네트웍(Christian International Ministries
Network)의 대표인 ‘사도’(?) 빌 해몬(Bill Hamon)에 의하여 임명을 받고
한국 CI 사역원을 세워 일하는 박노해 목사, 아가페신학연구원 학장 김태진
목사, 한국교회기독교영성총연합회 대표인 예영수 박사, 한국HIM선교회 전
대표였던 이성대 목사, 그리고 ‘다윗의 장막’이라는 소위 말하는 워쉽팀
을 이끌고 있는 영동제일교회의 김혜자 목사 등이 있다. 이들에 의하여 대규
모의 ‘신사도개혁운동’의 집회들이 다양한 형태로 열리고 있다.
이러한 집회들에서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위에 언급한
한국 사역자들과 관련하여 소식들을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이들의 사역의 내
용은 다름 아닌 빈야드 집회와 실질적으로 동일함을 알 수 있다. ‘신사도개
혁운동’이란 소위 ‘신사도들’에 의하여 ‘빈야드 운동’을 교회론적으로
새롭게 정립하기 위한 노력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알파코스에 대한 비평의 초점은 알파코스가 실체적으로 빈야드 운동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판단에 있다. 알파코스가 불신자를 초청하여 이들에게 복
음을 전하는 데에 나름대로 효과적이며 적절한 방법이라고 제 아무리 평가
를 받는다고 하여도, 알파코스가 전하는 복음이 결국 빈야드 운동으로 이어
져 가게 될 성령의 은사주의적 이해를 담고 있다면 알파코스는 건전한 전도
의 방법으로 권장될 수가 없는 것이다.
요컨대 알파코스의 문제점은 불신자 접촉을 위한 동기나 방식와 관련한 것이
라기보다는 그것에 담겨 있는 성령론에 관련한 것이다. 방언과 신유와 같은
체험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내고 그러한 체험을 기초로 그리스도의 복
음에 의한 구원을 확신토록 하는 알파코스의 방법은 결국 영적 중생을 통하
여 복음 앞에서 회개와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각성과 믿음을 기초로 구원
에 이른다는 개혁신앙과는 커다란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결
국 ‘신사도개혁운동’에 대한 서로다른 평가를 낳게 될 것이다.
알파코스가 주장하듯이 방언과 예언의 은사(?)를 체험(?)함으로써 그리스도
인이 된 자들은 그들의 신앙 정서상 ‘신사도개혁운동’으로 자연스럽게 별
다른 거부감 없이 이끌려 갈 우려가 크다.
알파코스와 개혁교회 2
최근 알파코리아와 관련된 논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지난 5월 19
일 총회신학위원회와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주최
‘장로교 신학적 입장에서 본 알파코리아 세미나’에서 발표된 김병훈 교수
의 글을 ‘알파코스와 개혁교회’란제목으로 3회 연재한다.
‘은사주의 운동’과 ‘신사도개혁운동’의 신학적 특징들
김병훈 교수_합신 조직신학
‘은사주의 운동’은 하나님의 음성듣고 행하는 것처럼 보여
최종 계시인 성경의 권위를 뛰어넘는 위험성 가지고 있어
교회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악한 영에 대해 승리했으며,
완전한 구속을 보증하는 성령을 받았음을 분명 인식해야 해
1. 몇 가지 실례들
‘제3의물결-은사주의 운동’의신학적 특징들은 신사도개혁운동의 주창자
인 국제추수선교회(HIM)의 설립자이며 공동대표이며 하비스트락 교회 담임목
사인 한인 1.5세 체 안(Che Ahn) 목사가 최근에 한국에서 모였던 집회
(2006. 5. 8-10, Cindy Jacobs 초청 잠실 올림픽홀)에서 한 간증의 한 토막
을 살펴보면 잘 나타난다.
- 부흥은 많은 현상을 동반한다. 많은 떨림이 있다. ... 하나님은 나에게 성
령과의 만남이 있을 때 환경에 대해서도 권세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나
는 강력한 몸의 진동과 떨림이 있었다. 실성한 사람처럼 뛰었다. 설명할 수
없지만 내 몸을 볼 수 있었다. 내 영이 떠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영광이
둘러서 있는 보좌를 봤다. 주님과 하나 되는 순간 ‘너는 천국에서 나와 함
께 앉아 있다’고 하셨다. 보좌는 권세를 뜻한다. 즉시 내 몸으로 돌아왔
다. 이 육체이탈을 경험한 이후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 (전
정희, “밀려드는 ‘新사도적 개혁 운동’ 파도,” 교회와 신앙,
amennews.com, 2006.6.5)
체 안 목사는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에 기초하여 그는 육체이탈의 경험을 말
하며, 그것이 곧 성령의 부흥이라고 말한다. 이는 성경 어디에서도 근거를
찾기 어려운 신비주의적 체험을 통한 현세의 문제 해결을 말하는 주장이다.
고린도후서 12장에 기록된 체험에 대해서 바울 사도는 그것이 곧 영혼과 몸
이 분리되는 육체이탈이라고 말하지않았다. 그는 그것을 주님께로부터 받
은 환상과 계시라고 말했을 뿐이다. 그러한 은혜의 체험으로 인하여 바울 사
도는 이로 인하여 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
과 곤란을 당하는 일을 오히려 기뻐하노라고 말한다. 그러나 체 안은 자신
의 신비적 체험을 말하면서 집회에 모인 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기도를 하며
자신의 기도를 따라하도록 하였다.
- 제게 주신 권세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시간 종교의 영을 묶나
니, 궁핍의 영을 묶나니, 끊어버리노라. 예수의 이름으로 떠나갈 지어다. 다
시 심나니, 믿음으로 내가 축복을 받습니다. 더 나은 직장을 받습니다. 월급
의 인상을 받습니다. 승진을 하게 됩니다. 은총을 받아들입니다. 유업을 받
습니다. 모든 빚이 끊어졌습니다. 수표가 내게 날아옵니다. 형통함이 옵니
다.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의 그 일을 이룰 수 있도록. 할렐루야! (전정희,
“밀려드는 ‘新사도적 개혁 운동’ 파도,” 교회와 신앙, amennews.com,
2006.6.5)
이 기도가 바울 사도의 기도와 얼마나 다른가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신사도적 직접계시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복음의 이해와 삶이 사도
와 얼마나 커다란 차이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 비록 그러한 주장을 하
는 사람들이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닐지 몰라도 - 인터넷에서 그들과 관련한
자료를 살펴보면 상당한 정도로 알 수 있다. 이 시대의 여성 예언자(?)로 높
은 명성(?)을 누리고 있는 씬디 제이콥스(Cindy Jacobs)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 하늘로부터 두루마기가 와 있다. 하나님의 임재가 이 자리에 와 있다. 여
기에! 저기에! 저! 저 뒤로 가고 있다! 바로 이 자리에! 여기! 저기! 취하
라! take it! 뒤로! 뒤로! here! here! 여기 임재! 받으라! 취하라! 하나님
의 파도가 임했다.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가 지금 일하고 있다. (전정희,
“밀려드는 ‘新사도적 개혁 운동’ 파도,” 교회와 신앙, amennews.com,
2006.6.5)
씬디 제이콥스는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눈으로 보며 그것을 회중들로 하여
금 손을 들어 잡는 손짓과 더불어 취하여 받으라고 외쳤다. 이러한 메시지
와 현상에 담겨 있는 심각한 신학적 문제점과 오류들은 집회 현장 안에서는
오히려 성령의 물결이며 능력의 체험으로 간주되는 분위기에 덮여지고 오히
려 고무된다.
2. 예언, 지혜, 지식의 은사
이러한 현상들을 결과하는 ‘제3의물결-은사주의 운동’은 다음과 같은 신학
적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예언과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적으로 청취
하여, 예언과 지혜와 지식의 말씀을 전하는 신령한 은사를 인정하는 것이
다.
이 은사는 알파코스에서도 중심적인 은사로 높임을 받는데, 그 예언의 은사
는 어떤 상황에서 어떠한 선택을 하여야 되는가와 관련한 내용, 그러니까 왼
쪽으로 가야할 것인가 아니면 오른쪽으로 가야할 것인가와 같이 매우 구체적
인 결정을 지시한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내용이다. 우리가 다 믿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역사
와 삶 가운데 자신의 작정을 이루어 가신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가 마땅히 살아야 할 옳은 도리가 무엇인지를 밝혀주는 교훈을 보이셨
고, 이 교훈에 따라서 우리로 하여금 판단하여 순종토록 하셨다.
하지만 성경은 어디에서도 내가 무엇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을 하여야
할 것인지를 알기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서 행동을 하도록 교훈하고 있지 않
다. 말하자면 개인의 세세한 삶의 정황 안에서 신탁을 통하여 구체적인 인도
를 받도록 교훈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성경은 누군가가 이러한 구체적이며 세세한 삶의 선택들에 대해서 하
나님의 뜻을 말하여 주겠다고 주장하는 점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악한 영에
사로잡힌 자이므로 너희 가운데서 그를 제하라고 경계의 말씀을 주고 있다
(신 18:9-14).
지식의 말씀은 알파코스와 빈야드에서 빈번하게 볼 수 있는 은사 가운데 하
나이다. 이들은 치유의 은사를 행하기 전에 모인 이들 가운데 누가 치유를
받아야 할 것인지를 분별하여 낸다.
예를 들어, 이 자리 모인 자들 가운데 주님께서 치유하기를 원하는 자가 있
는데, 그 사람은 이러저러한 사람이라고 말하며, 그러한 사람을 찾아낸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아픈 부분과 동일한 신체 부위에서 자신도 아픔을 느
낀다고 말하며, 그러한 사람을 찾아내는 은사이다. 말하자면 지식의 은사는
치유의 은사와 함께 가면 치유를 실행하는 은사이기도 하다.
이러한 예언과 지식의 은사를 사용하는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말씀을 직접 받
게 됨으로 그의 권위는 성경의 권위에 방불하게 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성경
보다 더 우월한 권위를 갖는다.
삶의 자리에서 성경의 교훈을 받아 성령의 조명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 이
외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가를 말하는 비밀한 예언을 인정하
게 되면 그러한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 자에게 영적 형편을 의지하게 된
다.
말하자면 그 예언자(?)에 의하여 영적 질서가 재편성이 되며, 은사가 보이
는 능력의 규모에 따라서 권위가 계층적으로 형성이 되며, 그 예언자는 하나
님의 뜻을 밝히는 열쇠를 지닌 자로 인정을 받게 된다. 즉 그는 하나님과 우
리 사이에 하나의 제사장, ‘다리를 놓는 자’(pontifex)로 하나님의 뜻을
밝히는 열쇠를 가진 자가 되는 것이다.
사도 시대에 있었던 예언의 은사는 살아 있던 사도들에 의하여 무리한 무질
서가 나타나지 않도록 통제를 받았다. 즉 성경의 권위에 의하여 통제를 받았
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사도들에 의한 성경이 기록이 된 이후에, 성경 이외
에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 받는 어떠한 예언이나 계시가 있다는 것은 성경과
더불어 최종적인 계시적 권위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므로 결코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3. 능력 기도
다른 하나는 이른바 ‘능력기도’의추구이다. 능력기도의 능력이란 기도를
함으로써 기도의 응답을 확실히 보장을 받는다는 의미를 넘어서, 어떠한 현
실의 미래도 우리의 의지대로 하나님의 뜻을 바꿀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능
력을 뜻한다.
능력기도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신자 일반과 일상의 일과 관련하여 대화를 나
눈다고 말할 수 있는 어떠한 실례도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는 데에 있다. 현
실과 미래를 바꾸는 능력기도에 담겨 있는 ‘능력’의 신학은 하나님의 섭리
에 대한 이해와 충돌이 된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로 하여금 겸손케 하시
고 또 고난 가운데에서도 우리를 향한 선한 계획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자라 할지라도 연약한 성품을 갖고 있으며 그로 인하여 죄를 범하
며 살면서 하나님의 교훈에 따라서 회개와 거룩한 순종의 인도함을 받는다.
복음은 고난의 십자가를 포함한다. 십자가의 신학이면서 또한 고난의 신학이
기도 한 복음은 빈야드에서 말하는 능력의 신학과는 다른 것이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음으로써 받는 것
이 아니다. 그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중생케 하시어 심어주신 새 성품
에 따라 성경의 교훈에 순종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은혜를 가리켜 말하는 것
이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간구하여 현실을 바꾸는 능
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요컨대 ‘능력의 신학’은 ‘고난의 섭
리’를 부정하는 그릇된 결과를 낳는다.
4. 치유 사역
알파코스와 빈야드 교회의 신학적 특성들 가운데 ‘치유사역’은 그들 사역
에 있어서 그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서 치유사역은 외적인 신체의 치유
뿐만 아니라, 내면적인 감정 및 영혼의 치유까지를 망라한다. 앞서 말한 예
언적 지식의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누구를 치유하시기를 원하시는지를 알아
내 이후에 치유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위해 기도한다.
이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치유사역을 단순히 긍정적으로 보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강조해야할교회사역의 핵심적 요소로 생각을 한
다. 왜냐하면 이들의 신학에 따르면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하였기 때문이
다.
빈야드 설립자 존 윔버가 그의 책 능력전도(Power Evangelism, 나단출판사,
2003년 7월)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이들은 ‘이미 그러나 아직’(already
not yet)으로 표현이 되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의 이해에 따라서
자신들의 치유사역을 설명한다.
이들은 주장하기를,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하였기 때문에, 성령의 능력에 의
한 치유사역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아직은 아니기 때문에 모두가 치유
를 받지는 못하고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을
치유의 효과적인 범위의 측면에서 양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치유사역 자체는 ‘이미’로서의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드러내는
표적일 뿐 하나님 나라 자체는 아니다. 즉 치유, 축사, 죽은 자를 살리심,
오병이어, 물을 포도주로 바꾸심, 물 위로 걸으심 등의 모든 이적들은 이것
을 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들이시라는 것과 그가 이루실 십자가
와 부활의 사역을 가리키는 표적들인 것이다.
이러한 표적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십자가와 부활의 구속 사
역을 통하여 이루실 하나님 나라, 곧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시
는 평강의 나라, 임마누엘의 나라가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임할 것임을
보이신 것이다.
결국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은 죄사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하나님의 백성의 영광스러운약속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와
그의 부활로 인하여 성취될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은 아닌’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역이 재림으로 완성될 때에 이
루어질 것임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을 위한 십자가 죽음을 이루시고 또한 부활을
하셨으니, 이처럼 역사적으로 이미 일어난 구속 사건들을 믿거나 그 의미들
을 이해하기 위하여, 표적들이 다시 새롭게 나타나기를 바랄 이유나 그것들
에 의지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미 성경에 기록된 과거에 있었던 표적들
을 믿고 그것들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만으로, 그것들이 표적으로써 가리키
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들되심과 그의 구속사역의 의미를 바르게 충분히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요컨대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하였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
역으로 인하여 죄사함과 하나님의 자녀됨을 누리는 임마누엘의 은혜가 이미
우리에게 임하였음을 뜻하는 것이지, 누구나 이 세상을 살면서 치유의 사역
을 행하며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마태복음 8장 16-17절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
리고 예수께서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
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는 말씀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신” 것을 어떻게 이해하여
야 할 것인가는 이사야 53장의 해석과 관련을 갖는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이사야 53장은 ‘고난의 종’에 대한 예언으로서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말하여 주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마태복음 8장에서 치
유와 관련한 이적에 대한 해설을 이사야 53장으로 연결한 것은 그 치유의 이
적이 그 자체로 실체가 아니라 죄사함의 은혜를 가리키는 표적임을 말해준
다.
즉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이적들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구속 사
역을 가리키는 표적인 것이며, 그 표적들은 실체인 구속 사역이 이루어진 이
후에는 더 이상 구속사역의 이해를 위하여 필요한 것들이 아닌 것이다.
만일 ‘이미’라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이 치유사역이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음을 말하며, 또 ‘아직은 아님’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은 모든 이
들이 다 치유를 받는 보편적 완전성을 뜻하는 것이라면, 왜 비단 치유사역만
이 그렇게 이해되어야 하겠는가? ‘죽은 자가 살아나는’ 이적도, ‘오병이
어’ 이적도,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는’ 이적도, ‘물 위로 걸으시는’ 이
적 등도 일어나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 나라의 ‘이미’와 ‘아직은 아님’은 치유사역의 효과적인 범위에
따른 양적 개념으로 구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실체적으로 동일한 하나님 나
라의 질적 완성의 개념에 따라 구별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신학의
관점에서의 ‘능력전도’의 변명은 신학적 타당성을 잃는다.
5. 영적 전쟁
끝으로 빈야드 제3의 물결의 신학의 특성 가운데 덧붙이고자 하는 것은 소
위 말하는 ‘영적 전쟁’(spiritual warfare)에 대한 이해이다. 이것은 실제
적으로 매우 심각하다. 프랑크 피레티(Frank Peretti)가 쓴 소설, 어둠의 권
세(This Present Darkness, 예찬사, 1986)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영적 실상
이 그러한 것처럼 이해하는 커다란 잘못을 범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오는 영적 싸움의 대상은 뉴에이지를 좇는 사람들 또는 악한 영들
이다. 악한 영과의 싸움은 피터 왜그너(Peter Wagner)가 그의 책 기도는 전
투다(Warfare Prayer)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개인적, 주술적, 전략적 전투
의 세 구조로 실행이 된다. 이러한 영적 전쟁의 전재는 각 지역과 나라와 대
륙마다에 각각의 영역을 관장하는 귀신들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과
개인적이며 주술적이며 전략적인 차원에서 전투를 실행하여야 하며, 이것이
성도가 부르심을 받고 있는 영적 전쟁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물리적인 물체나 건물들도 귀신들에 의하여 오염이 되어 있기 때
문에 물리적인 건물이나 물체들을 향하여서도 축사를 통해 영적 전쟁을 치열
하게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귀신들과 맞서서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
나 이러한 적어도 주술적이며 전략적인 영적 전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이 아니고 오직 축사의 은사를 사람들에 의한 대리적 전투를 통해서 실행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영적 전쟁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성경에서 말하는 영적전쟁과 사
뭇 다른 것이다. 성경적 의미에서의 영적 전쟁은 귀신들과 직접 대항하는 것
이 아니고 진리의 말씀에 근거하여 믿음의 도리를 확신하고 거룩함을 온전
히 이루어 가며 사랑과 연합을 이루는 거룩한 공동체를 실현하며 섬기는 것
과 관련한 것이다. 에베소서 6장에서 확인이 되는 영적 전투와 관련한 모든
교훈들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권면이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미(already)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악한 영에 대
하여 승리를 하였으며(엡 2:1-3), 장래에 있을 완전한 구속을 보증하는 성령
을 받았다(엡 1:13-14).
이러한 맥락에서 ‘이미’ 승리한 것이요, 완전한 승리는 ‘아직은 아닌’
것이기 때문에, 성도가 지역에 속한 악한 영들을 내어쫓아야 한다는 의미에
서 귀신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감행하여야 하는 전략적 의미에서의 영적 전투
는 결코 성경적인 의미에서의 영적 전쟁이 아니며, 신뢰성을 갖지 못한
다.
알파코스와 개혁교회 3
최근 알파코리아와 관련된 논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지난 5월 19
일 총회신학위원회와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주최‘장로교 신학적 입장에서
본 알파코리아 세미나’에서 발표된김병훈 교수의 글을 ‘알파코스와 개혁
교회’란 제목으로 3회 연재한다. |편집자주|
알파코스에 대한 평가
김병훈 교수_합신 조직신학
“방언·예언·신유 등 초자연적 체험을 신앙고백의 결정적 요소라고 주장
하는 것은 신비적 주관주의 뉴에이지 철학과 같아”
▣… 빈야드식 성령 체험이 알파의 핵심적 요소
▣… 말씀에 따른 영적인 각성만이 성령의 사역
▣… 기도와 찬양, 헌신 등 경건의 총합 이뤄야
“개혁주의는 객관적 말씀의 진리 통해 복음을 전파하며 자기학습과 신학
적 해석아래 은혜의 각성 추구해”
1. 알파코스는 빈야드식의 체험우선주의
알파코스를 전파하는 사람들은 알파코스가 단지 전도의 한 방편일 뿐이라고
강변을 한다. 그들은 주장하기를 하나의 전도 방편인 알파코스를 신학적으
로 비평하는 것은 결코 적절한 접근이 아니며, 오늘날과 같이 전도가 어려
운 시대에 전도의 좋은 방편을 격려하는 일이 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의 전도방법으로서의 알파코스가 갖는 문제점은 그것이 철저히
‘체험에 기초한 증거주의’를 방법론적 전제로 삼는다는 것이다. 니키 검블
은 이러한 전제를 추구하는 까닭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한다.
- 계몽주의 시대에는 이성이 최고봉에 있어 모든 것을 다스리고 논리적 설명
을 통하여 체험에 이르게 하였다. 그러나 여러 문화가 ‘함께 어울리는’
(pick-and-mix) 세계관을 가진 현재의 문화적 변이과정에서는 뉴에이지 운동
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체험을 통하여 논리적 설명에 이르게 한다. (알파코
스 운영방법, 55)
검블의 생각에, 오늘의 세계관은 이성을 기초로 하는 논리적 설명을 통하여
진리를 수납하고 그 진리를 체험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체험을 통하
여 진리를 수납하고 논리적 설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따른다.
그는 이러한 현대의 세계관을 반영하여 하나님을 체험케 하는 구체적인 방식
을 사용하는 전도가 오늘날에는 요구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알파코스라고
말한다. 과연 그러한 방법론적 전제에 따라서 알파코스가 어떠한 열매를 맺
고 있는지에 대해 검블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코스 마지막에 나는 설문지를 모두 나눠주고 코스 시작 전에 크리스천이었
는지 아닌지, 그리고 지금 그들 자신을 어떻게 말할 수 있는 지에 대해 묻는
다. 만일 어떤 변화가 있다면 나는 그 변화가 언제 일어났는지에 대해 묻는
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결정적인 순간은 주말 수양회 토요일 저녁이
다 ... 토요일 저녁 순서를 마친 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의 노래로
응답한다. 때때로 우리는 방언으로 찬양드린다.” (알파코스 운영방법, 194-
195)
“결정적인 순간은 주말 수양회 토요일 저녁이다”는 검블의 말은 알파코스
가 결국 회심의 기초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에 대해 말해 준다. 알파코스의
주말 수양회는 이미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방언, 예언과 지식의 은사의 실
행을 통한 치유의 역사를 체험하도록 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신앙을 고백케 하는 결정적인 순간이 주말 수양회 저
녁이라는 말은 바로 방언, 예언, 신유 등의 초자연적인 신령한 체험이 신앙
을 고백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 방식은 많은 위태로움을 내포한다. 사실, ‘체험을 통하
여 설명에 이르게 한다’는 것은 뉴에이지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관점이다.
이미 빈야드식 은사주의 운동에서 보는 바처럼, ‘토론토 체험’ 같은 것들
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게 보다는 신비주의적이며 감정과 감흥에 치우치
는 주관적 상황에 이끌리게 한다. 주말 수양회에서 방언을 스스로 하지 못하
는 사람들에게는 방언을 따라하도록하여 흉내를 낸 방언으로 찬양을 하도
록 하는 것 등도 바로 이러한 사례를 보여주는 한 가지 예이다.
그렇다면 결국 알파코스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한 체험을 하도록 이끌어
가기 위한 하나의 예비적 사역을 담당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말하자면 알
파코스는 하나님의 말씀의 각성을 통하여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지식이 굴절되어 있거나 또는 결핍되어 있는 상태에서
신비한 체험에로 나아가도록 이끌어갈 우려가 심대한 것이다.
알파코스는 사도시대의 은사들이 지금도 여전히 역사하고 있으며, 그것으로
인하여 사도들의 복음전파가 지금도유효하게 진행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주
장하지만, 사도들의 복음전도는 알파코스와는 전혀 다르게 철저히 성경 말씀
에 대한 강론을 기초로 하여 논리적 설득의 형식을 따르고 있음을 주지하여
야 한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2장에서 보는 바와 같은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역사와
이어지는 베드로의 설교를 살펴보자. 오순절날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임한 성
령의 방언의 역사는 각 국에서 모인 유대인들을 놀라게 하였지만, 그들이 회
심을 하고 그리스도에게로 나오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모두 베드로의 길
게 이어지는 설교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베드로는 요엘서를 풀어 이 날에 있었던 성령의 역사를 설명한 이후에, 이어
서 시편 16편과 110편 등을 풀어 해설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과 부활의 복음을 설교하였던 것이다. 베드로의 설교에 담겨 있는 깊고 오묘
하며 정교한 성경의 해설이 그곳에 모였던 유대인들 가운데 일부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토록 하였던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마이클 호튼(Michael Horton)이 말하는 바를 들어보도록 하
자.
- 만약 성령이 은혜의 수단과는 별개로 역사하신다면, 우리는 성령님이 ‘능
력대결’과 기도회와 고백 모임과 같은 부흥회와 같은 대중 집회에 의해 우
리를 유지시켜 주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너털웃음을 터뜨리거나 개처
럼 짖는 등의 이상한 현상에 몸을 맡김으로써 성령님께 도달할 수 있을 것이
다.
자 이제 실제로 인간 역사 가운데 일어났던 그 오순절(사도행전 2장에 기록
된 오순절)에 대해 생각해보자 ... 성령의 권능이 전 세계로부터 그곳에 모
여들었던 사람들에게 내렸으며, 베드로는 매우 긴 설교를 선포하고 있었다.
실제로 사도행전 전체에서, 우리는 선교와 전도와 확장의 면에서 교회의 위
대한 전진들은 기적들을 포함하고 있지 않았고, 선포된 말씀에 대한 응답으
로 일어났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
그리스도인들이라고 고백하는 어떤 집단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에 대한 초점
을 어느 정도 ‘능력 대결’로 바꿔치기를 하는 것은 바로 그 집단이 오순절
의 애초의 권능으로부터 그 정도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베드로는 자기의 설교를 ‘진짜 흥분되는 일’에 대한 필수적인 서두로 여기
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능력 부흥사들은 표적들과 기사들의 ‘사역 시간’
이전에 간단한 메시지를 그렇게 보는 것 같다 ... 이는 우리가 성령님의 사
역을,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며 성경 말씀을 조명해주시는 분으로서의 고유
한 역할보다 우리 자신의 개인적 체험과 연결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말씀과 성례전과는 별개의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찾고 있다면,
정말로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해주신 이러한 활동들
(말씀과 성례전)이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을 제공해 준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진정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충만한 삶이 이루어질 것이
다.” (마이클 호튼, 미국제 영성에 속지 말라, 258-261)
호튼이 잘 지적하고 있는 바처럼, 부흥을 위한 것이든 전도를 위한 것이든
어떠한 집회에서 그 초점을 성경에 근거하여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으로부
터 어느 정도 ‘능력 대결’로 전환하는 것은 그 집회가 오순절날의 재현이
아니라 오히려 그 날에 임한 성령의 권능으로부터 벗어난 것임을 주지하여
야 한다.
성령께서는 은혜의 수단인 말씀과 더불어 회심의 역사를 일으키신다. 다시
말해서 설교는 결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지식의 영역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회심을 일으키는 수단인 것이다. 이미 성경에 이르기를 하나님께서
는 전도, 곧 복음을 전하는 말씀의 전파 또는 설교라는 연약한 수단을 사용
하여 자신의 백성을 부르신다고 하였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결국 알파코스는 근본적으로 신사도개혁운동으로 이어지는 빈야드 은사주의
운동의 맥을 따라서 은사주의적 체험에 기초한 전도 방법론이라고 판단을 내
릴 수 있다. 알파코스에 있어서 빈야드식의 성령체험은 알파코스의 성패를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이며 본질적인요소인 것이다. 검블은 이 점을 알파코
스를 설명하는 그의 글에서 숨기지 않고 밝히고 있다.
- 알파를 그렇게도 감격스럽게 하는 것은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사역(work)이다. 대화를 전달하시고, 그룹 토론을 진척시키시고, 성경 공부
를 하게 하며 목회적 돌봄, 운영, 그리고 알파의 모든 면을 가능케 하시는
것은 성령님의 활동이다 ... 존 윔버는 사역을 ‘하나님의 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다른 사람들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
그러나 나는 ... 좁은 의미로 그 말을 사용하고자 한다. 즉 특별히 우리가
성령의 능력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일어나는 사역에 관
해서 설명한다 ... 성령님의 사역은 알파에 결정적이다. 그것이 없다면, 진
실로 알파코스가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을 우리 가운데 보내심으로 단순한 요구도 들으
신다는 것을 더욱 알게 되었다. 그 결과 놀랍고 깊은 변화가 항상 사람들의
삶 가운데 일어난다. 우리는 계속해서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그리스도께 드
리며, 성령으로 충만하며, 예수님께 감격하고,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을 다
음 코스에 데리고 오는 것을 보게 된다 (알파코스 운영방법, 179-180, 202-
203)
검블이 말하는 ‘성령님의 사역’은 ‘존 윔버’가 말하는 성령님의 사역이
다. 그것은 빈야드 은사주의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빈야드 은사 체험을
가리키는 성령님의 사역을 빼놓고 알파코스를 말할 수는 없다. 검블이 말하
듯이 성령님의 사역은 “알파를 그렇게도 감격스럽게 하는 것”이며 또한
“알파에 결정적”이어서 “그것이 없다면, 진실로 알파코스가 되지 못하였
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님은 성령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해 말할 것이라고 예수
님께서 말씀하셨음을 기억하여야 한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
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
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요 16:13-14).
예수님에 대해 말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우리를 중생케 하시며, 말씀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영적인 각성으로 이끄시며, 그리스도와 연합케 하는 일이다.
호튼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십자가의 신학은 완전주의, 신비주의, 영적
엘리트주의, 공로에 의한 모든 도식들에 반대하여 서 있는 만큼, 십자가 신
학으로 이끌지 않고 신비주의에 치중하며 그것을 성령의 사역이라 일컫는 것
은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사역에 대해 말씀하신 것에 비추어 볼 때 인정하기
가 어렵다.
2. 결론
알파 코스는 본질적으로 빈야드 은사 운동을 적용한 전도의 방편이다. 이것
은 복음의 적절한 교훈보다는 소위 성령의 능력의 “체험”을 기초로 하여,
예언, 치유, 능력기도, 영적 전쟁 등에 대해서 성경적 근거가 없으며 신학적
으로 부적절한 이해와 신앙 양태를 야기시킨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
음을 듣고 회개하며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러한 회심과 신앙은 성령님의 신비한 내적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성령님은, 말씀과 성례라는 은혜의 수단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교훈에 순종토록 각성을시키시며, 기도와 찬양 가운데 감사와
회개와 순종을 통하여 성화를 이루게 하시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기뻐
하도록 하신다.
알파 코스가 말하는 성령의 능력 체험과 그것의 증거로 제시하는 각종의 입
신, 지식의 말씀, 예언, 치유, 영적 전투 등의 현상들이 복음의 올바른 말씀
과 상관없이 강조되며 주장이 될 경우 그 모든 것들은 성경적이며 개혁주의
적인 신학과 복음의 이해와 근본적인 충돌을 일으킨다. 즉 성경적인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 메시지에서 심각한 일탈을 일으킨다.
알파코스가 비록 불신자를 전도하기 위한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며, 전
도의 방편일 뿐이라고 아무리 강변을 한다고 하더라도, 알파 코스의 핵심인
빈야드 은사주의가 필연적으로 신사도 개혁운동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유의하
여야 하다.
따라서 알파코스는 개혁주의 교단에서 결코 그대로는 용인될 수 없는 ‘신비
주의적’이며 ‘은사주의적’인 전도전략일 뿐만 아니라, 신사도 개혁운동
의 주장에서 보듯이 종국에는 교회론적 위기를 초래할 것이므로 심히 경계해
야할 대상이다.
개혁주의 장로교회는 결코 사도 이후의 어떠한 계시적 권위를 지닌 신비적
은사와 체험 위에 그 기초를 두고 있지 않으며, 오직 성경의 교훈에 일치하
는 믿음과 은혜의 신학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위에 그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개혁주의 목사는 어떻게 하여야 하나? 개혁파 목사는 체험적 주관주
의에 호소하여 복음을 설득하려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객관적 말씀의 진리
를 강론함으로써 복음을 전도하여야할 것이다. 체험과 감성의 세대인 오늘
날에 있어, 개혁파 목사는 성경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하여 성경연구에 더
욱 더 정진을 하여야 한다.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학습을 통한 신학적 해석의 관
주를 만들어가면서 성경의 교훈을 탁월하게 이해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
고 개혁주의 신앙고백문서들을 잘 풀어 가르칠만한 신학적 소양을 연마하여
야 한다. 성경해석을 바탕으로 하여 신앙고백문서들을 강론할 때, 성령님께
서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놀라운 은혜의 각성을 성도들과 함께 체험하는
기쁨을 누려야 한다. 이를 토대로, 기도와 찬양, 그리고 헌신과 봉사의 경건
의 총합을 이루어가야 한다.
개혁파 신학은 은사주의자들이 비판하듯이 이성의 논리에 갇혀 있는 합리주
의의 포로가 아니다. 개혁주의는 성경의 말씀과 함께 성령의 신비한 역사로
인하여 우리의 심령을 흔들며 변화시키며 몇 날이라도 회개하며 구원의 기쁨
에 겨워 찬양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감사의 순종을 드리는 열정적
부흥을 포괄한다. 아울러 기독교세계관에 대한 이해와 동시에 이 세대의 문
화를 이해하기 위한 학습을 통해 불신자들의 질문과 생각을 짚어 갈 수 있어
야 한다.
이러한 복음의 훈련이 중단되거나 결핍이 되면, 포스터모던 시대라 일컫는
오늘날에 - 한국은 어떤 의미에서 항상 포스트모던 시대였지만 - 주관주의
에 함몰되지 않고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바른신학 위에 세워가는 목양을 올
바르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감정적 열광주의로 나타나는 부흥을 맹목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개혁파 신학
이 아니다. 목사 개개인이 이것을 감당키 어려울 것인 만큼, 노회나 총회를
통한 “목회자 평생교육”이 실시되도록 할 필요와, 동시에 불신자 전도를
위한 방안을 논의키 위한 실천적 지혜와 연구를 시행할 필요가 절실하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