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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성경의 문제점2-고려신학대학원교수회 6

개역개정 성경의 문제점2-고려신학대학원교수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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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원 교수회 “개역개정판 성경 번역은 강단용으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의미있다.
김영수 장로
자료출처http://www.kscoramdeo.com/news/read.php?idxno=5636&rsec=MAIN&section=MAIN

II. 개역판의 오역을 고치지 아니한 경우

성 경

개역판의 오역을 고치지 아니한 경우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로마서 1:24,26의 ‘정욕’과 ‘욕심’

개역판에 보면 넓은 의미에서의 타락한 인간의 ‘욕심’ 또는 ‘욕구’를 의미하는 단어인 ‘에피튀미아’(ejpiqumiva)를 ‘정욕(情慾)’으로 번역한 곳이 많다( 1:24, 13:14, 벧전 2:11, 4:2, 요일 2:16). 물론 ‘정욕’이란 말이 전에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을지 모르지만오늘날에는 주로 성적(性的)인 욕구를 뜻하는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에 의미 전달이 정확하게 되지 않으며 왜곡되고 있다.그런데도 개정판에서는 이러한 부정확한 번역을 고치지 않고 있다.

한편 로마서 1:26에 나오는 ‘파토스’(pavqo")란 단어는 감정적이고 성적인 뉘앙스가 물씬 풍기는 단어(lustful passion)로서이 단어야말로 ‘정욕(情慾)’으로 번역해야 하는데(26, 27절이 성적인 패역을 말하고 있다), 개역판은 여기서는 오히려 ‘욕심’으로 번역하고 있다그런데 개정판은 이러한 개역판의 오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결론적으로 로마서 1 24절의 ‘정욕’과 26절의 ‘욕심’은 서로 뒤바뀌어야 옳다.


로마서 8:1의 ‘정죄’

로마서 8:1은 대단히 중요한 구절이라 많은 성도들이 암송하고 있다그런데 개역 성경은 이 구절을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장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느니라”고 번역하였다그러나 여기에 번역된 ‘정죄함’의 원어는 ‘카타크리마’(katavkrima)로서 단순한 ‘정죄(定罪)’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적인 심판’곧 영원한 형벌에 이르게 하는 ‘단죄’(condemnation)나 ‘저주’(curse)를 뜻한다따라서 이 구절의 뜻은 일부 잘못된 단체나 그룹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겐 아무런 ‘책망’이나 ‘징계’도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히브리서 12:8에서는 징계가 없는 자는 사생아라고 했다), 비록 연약함과 잘못이 있다 할지라도 결코 영원한 형벌에 처해지는 ‘단죄’는 없다는 뜻이다곧 항상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살며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없다는 뜻이다그런데도 개역판은 이 구절에서 ‘정죄함’이 없다고 번역함으로써 그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고 잘못된 사상이 들어올 여지를 제공했기 때문에 이번 개정판에서 고쳐졌어야 하는데아쉽게도 고쳐지지 않았다.


고린도후서 2:14의 ‘이기게 하시고’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는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개선 행렬 가운데 끌고 가시며”라고 번역해야 한다‘이기게 하시고’라고 번역한 분사 ‘트리암뷰온티’(qriambeuvonti)는 “승리의 개선 행진에서 (누군가를포로로 끌고 가다”를 뜻하기 때문이다.


고린도후서 2:17의 ‘혼잡하게’

개역판은 고린도후서 2:17을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로 번역하고 있는데여기의 ‘혼잡하게 하다’는 말의 원어 ‘카펠류오’(kaphleuvw)는 ‘소매상인이 되다소매상을 하다’(to be a retail-dealer, to drive a petty trade)는 뜻인데따라서 이것은 ‘이익을 위해 거래하는 것’을 뜻한다그런데 개역판의 ‘혼잡하게 하다’는 것은 원어의 뜻에 전혀 맞지 않다그런데도 개정판에서는 이것을 고치지 않았다이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장사하지 아니하고”로 고쳤으면 좋았을 것이다.


고린도후서 3:5

<개역판“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개정판“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개정판의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는 다음과 같이 번역해야 한다“우리가 무엇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주장할만한 자격이 없으니우리의 자격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이라.” 개정판에서 ‘만족할’과 ‘만족’이라고 번역한 단어 ‘히카노이’(iJkanoiv)와 ‘히카노테스’(iJkanovth")는 이 문맥에서 ‘자격이 있는’과 ‘자격’을 의미한다.


고린도후서 3:6

<개역판“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

<개정판“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

개정판의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는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이 되기에 합당하게 하셨으니”라고 고쳐 번역해야 한다개정판에서 ‘만족하게 하셨으니’라고 번역한 동사 ‘히카노센’(iJkavnwsen)은 ‘자격을 갖게 하다’‘합당하게 하다’를 뜻한다.


고린도후서 4:4의 ‘혼미하게’

개역판은 고린도후서 4:4에서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라고 번역하고 있는데개정판은 여기의 ‘혼미케’를 ‘혼미하게’로 어미만 약간 바꾸었을 뿐 그대로 두었다그러나 이 단어의 원어는 ‘에튀플로센’(ejtuvflwsen)으로 ‘어둡게 하였다눈멀게 하였다’는 뜻이다그런데도 쉬운 우리말인 ‘어둡게 하다’는 번역을 채택하지 아니하고 어려운 한자어이며 잘못된 번역인 ‘혼미하게 하다’를 그대로 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고린도후서 10:16

<개역판“이는 남의 한계 안에 예비한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

<개정판“이는 남의 규범으로 이루어 놓은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

개정판의 “이는 남의 규범으로 이루어 놓은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는 “이는 남의 영역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일에 대해 자랑하지 아니하고”라고 고쳐야 한다.


갈라디아서 1:14의 ‘지나치게 믿어’

개역판의 갈라디아서 1:14은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라고 번역하고 있어서사도 바울이 전에는 마치 광신자였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그러나 여기 ‘지나치게 믿어’의 원어는 ‘프로에콮톤’(proevkopton)으로서 어떤 일에 있어서 ‘진보하다뛰어나다우수하였다’는 뜻이다‘프로콮토’(prokovptw)는 동사는 원래 “군인들이 행진해서 나아갈 때 ‘앞에’(프로)있는 나무들을 ‘베고’(콮토나아가다”는 어원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동사로서일반적으로 ‘행진하다나아가다’는 의미와건강이 ‘향상되다좋아지다’는 의미그리고 도덕적으로 ‘향상하다진보하다’는 의미나아가서 ‘뛰어나다능가하다’는 의미 등으로도 사용되었다따라서 여기 갈라디아서 1:14은 사도 바울이 회심하기 전에는 자기 동족 중의 많은 동년배(동료들)보다 유대교에 있어서 ‘뛰어났다우수하였다모범생이었다’는 의미인데이것을 개역판에서 마치 ‘지나치게 믿은’ 광신자였던 것처럼 잘못 번역했었는데이러한 중대한 오역을 새로 나온 개정판에서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에베소서 1:14

<개역판“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개정판“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개정판의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다음과 같이 고쳐 번역해야 한다“성령은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실 때까지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시느니라이는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개정판에서 ‘이는’이라고 번역한 단어는 중성 관계 대명사이며 성령을 가리킨다.


에베소서 3:18

<개역판“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개정판“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는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라고 고쳐야 한다개정판에서 ‘넘치는’이라고 번역한 단어 ‘휘페르발루산’(uJperbavllousan)은 ‘넘치다’가 아니라 ‘초월하다’‘능가하다’...을 넘다’를 의미한다참고로 헬라어 본문에서 이것은 19절에 있다.


빌립보서 2:6의 ‘취할 것’

개역판은 빌립보서 2:6을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로 번역하고 있다.그러나 이 번역은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며 오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왜냐하면 이 번역을 읽으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동등한 권리(신분)를 취하지 아니하셨다”는 의미로 이해되기 때문이다그러나 원문의 구조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동등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셨다”로 읽어야 한다그리고 여기서 ‘취할 것’으로 번역된 단어의 원어 ‘하르파그모스’(aJpagmov")는 ‘취한 물건’(res rapta)으로 보는 것이 옳다이것은 곧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실 때 하나님과 동등한 신분과 자격과 권리를 ‘자기 고유의 권리’라고 주장하지 않으셨다는 뜻이다따라서 여기 개역판의 ‘취할 것’은 ‘고유 권리’ 또는 ‘기득권’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그런데도 개정판이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설명하는 중요한 이 구절을 고치지 않고 모호하고 부정확한 상태로 둔 것은 심히 아쉽다고 생각된다.


골로새서 1:5

<개역판...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개정판...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는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 안에서 들은 것이라”라고 고쳐야 한다.


골로새서 2:15

<개역판“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개정판“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개정판의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는 다음과 같이 고쳐 번역해야 한다“십자가로 정사들과 권세들의 무장을 해제하시고 그들을 개선 행렬 가운데 포로로 끌고 가시면서 공개적으로 구경거리로 삼으셨느니라.” 개정판에서 “이기셨느니라”라고 변역한 단어 ‘트리암뷰사스’(qriambeuvsa")는 고후 2:14에서와 같이 “승리의 개선 행진에서 (누군가를포로로 끌고 가다”를 뜻한다.


골로새서 4:10

<개역 & 개정판...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

‘바나바의 생질 마가’는 ‘바나바의 사촌 마가’라고 고쳐 번역해야 한다개역 개정에서 ‘생질(甥姪)’이라고 번역한 단어 ‘아넵시오스’(ajneyiov")는 ‘사촌’을 의미한다.


히브리서 12:28

<개역판“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

<개정판“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

“은혜를 받자”는 난하주에 있는 대로 “감사하자”로 번역해야 한다.


요한계시록 11:17

(19:6)

<개역 & 개정판...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시도다.

여기 ‘왕노릇하시도다’의 원어는 ‘에바실류사스’(ejbasivleusa") (당신이‘왕노릇하셨도다’로 번역해야 한다이 헬라어 동사의 시상은 아오리스트(aorist)로서 직설법이기 때문에 과거에 일어난 일여기서는 재림의 시점에서 되돌아본 지나간 세상 역사상의 일들을 가리킨다따라서 마땅히 ‘왕노릇하셨도다’로 번역해야 하는데 현재 시제로 번역하여 오해를 초래케 하고 있다예수님의 재림 이전에는 예수님이 왕노릇하시지 않은 것처럼 오해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19:6에서도 똑같은 동사가 사용되었다헬라어로 ‘에바실류센’(ejbasivleusen)인데 단지 인칭만3인칭으로 바뀌었을 뿐 시상과 법이 똑같다(아오리스트 직설법). 따라서 이 단어는 ‘왕노릇하셨도다’로 번역해야 하는데개역판에서는 ‘통치하시도다’(현재)로 번역하고 있고 개정판에서도 그대로 따르고 있다따라서 이 부분에서도 예수님의 재림 이후의 관점에서 그 이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주께서 왕노릇하셨도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 마치 재림 이후에 왕노릇하시는 것처럼 오해하도록 만들고 있다물론 하나님(또는 예수님)은 재림 이후에도 영원토록 왕노릇하시는 것이 맞지만 그 이전에도지금 이 세상 역사 중에도 왕노릇하고 계신다그런데 개역판과 개정판에서는 중요한 단어의 오역으로 말미암아 이 사실이 간과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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