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시몬 베유를 다시 호명하는 것은
살기 위해서다.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다.❞
_김기석 │ 청파교회 원로목사
젊은 시절, 시몬 베유는 내게 영혼의 채무였습니다. 살갗이 벗겨진 것처럼 세상의 아픔과 자극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의 존재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어정잡이로 살고 있다는 자각이 들 때마다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다른 이들이 겪는 고통이 살과 영혼 속에 각인되어 자신을 노예라 여기는 사람, 불행으로 인해 사물화된 사람을 사랑과 관용으로 대해 인간의 상태로 되돌리고자 하는 사람, 가장 깊은 신의 사랑이라는 본질에 당도하기 위해 자기를 몰아대면서도 결코 섣부른 위안으로 도피하지 않는 사람, 그리스도께 사로잡혔으나 더 큰 세계와 접촉하기 위해 종교의 틀 속에 들어가기를 꺼리는 사람, 세상의 혼돈에 마음 아파하면서도 눈을 들어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사람. 시몬 베유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발치 아래까지 불이 붙었는데도 혼곤한 잠에 빠져 있는 사람과 다를 바 없습니다. 파수꾼의 나팔 소리조차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시몬 베유를 다시 호명하는 것은 살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입니다. 마음에 드리운 욕망의 더께를 걷어 내고 살과 같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회복하기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베유에게 종교는 다른 무엇이 아닌 하나의 시선입니다. 신을 향해 우리의 시선을 돌리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구리뱀을 바라보았듯, 우리의 시선을 그리스도께 두고 죄의 중력에 저항하자고 그녀는 말합니다. 무얼 하든, 어디에 있든 날마다 우리의 눈을 들어 저 구리뱀을 응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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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시몬 베유(Simone Weil)
시몬 베유를 철학가라든가 사상가, 노동운동가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어떤 의미에서 시몬 베유라는 이름은 신화의 너울을 쓰고 울려 퍼지고 있지만, 프랑스 철학사에서 그녀의 이름은 모호하고 흐릿하다. 모호하고 흐릿하다는 것은 그 이름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그 이름이 한 곳에 가둘 수 없을 만큼 넓고 유동적이라는 뜻이다. 시몬 베유는 그녀의 작품을 통해서 혁명에 대하여, 마르크시즘에 대하여, 집단적 환상에 대하여, 기계 시대에 대하여, 믿음 없는 교회와 교회 없는 믿음에 대하여 던져놓은 수많은 발언들은 하나의 이름으로 정의되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불꽃에 달려들어 자신을 불태우는 나방 같은 삶을 살았다. 그녀의 불꽃은 공장과 전장이었지만, 그 싸움의 현장에서 그녀는 단지 노동운동가가 아니라 스스로 노동자였고, 단지 반파쇼 지식인이 아니라 스스로가 반파쇼 전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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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을 기다리며』
원제: Attente de Dieu
지은이: 시몬 베유 | 옮긴이: 이창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