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널리 알려진 "개혁주의"자 중의 한명인 존 파이퍼.
[존 파이퍼와 릭 워렌
사진출처 http://apprising.org/2011/05/18/john-piper-interviews-rick-warren-at-saddleback/
이머전트 마크 드리스콜 등과 이상한 연합을 만들고 그를 추천하며(참고글<<), 릭 워렌을 강단에 초청<<하고 교제하더니..
이제 (개혁주의적?) 관상기도와 명상을 증진하는군요. 비록 그는 카톨릭 관상 영성과는 다르다고 말하지만, "침묵하고 주께서 말씀하시도록 요청하십시오"라는 그의 말은 그의 관상의 성격을 대변해 준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한다. (참고비디오<<)
침묵 속에서 주의 음성을 구하라? 카톨릭 신비주의 관상과 다르다고만 하면 괜찮은 것인가?
그의 사이트<<에는 "렉시오 디비나(참고<<)가 2012년의 기도의 세번째 방식이다"라는 내용이 서적링크<<와 함께 올려졌다가 문제가 되자(?) ("전에 렉시오 디비나가 기도의 세번째 방식이라고 올렸는데, 그 후 이로 인한 혼동 때문에 이 부분을 삭제했습니다. 우리는 관상영성을 인정(추천)하지 않습니다."라는 해명과 함께) 삭제되었다. 다음은 원문에 있었다가 후에 삭제된 내용이다. 다음과 같이 올려 놓고서는 뒤늦게 관상 영성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니 웃기는 일이다!
Lectio Divina
Kenneth Boa, Conformed to His Image, (Zondervan, 2001), 96-97.
The ancient art of lectio divina, or sacred reading, was introduced to the West by the Eastern desert father 동방사막교부 John Cassian early in the fifth century.
It consists of four elements.
1.Lectio (reading). Select a very short text and ingest it by reading it several times. I normally choose a verse or a brief passage from the chapters I read from the Old and New Testaments in my morning Bible reading.
2.Meditatio (meditation 명상). Take a few minutes to relfect on the words and phrases in the text you have read. Ponder the passage by asking questions and using your imagination 상상력을 사용해서.
3.Oratio (prayer). Having internalized the passage, offer it back to God in the form of personalized prayer.
4.Contemplatio (contemplation 관상). For the most of us, this will be the most difficult part, since it consists of silence 침묵 and yieldedness in the presence of God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Comtemplation is the fruit of the dialogue of the first three elements; it is the communion that is born out of our reception of divine truth in our minds and hearts. (소스파일첨부; 붉은색은 블로거에 의함)
다음은 개혁주의의 관상기도와 명상에 대한 그의 말이다. ("우리는 관상영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설마 "관상/명상"은 괜찮고 "영성"은 안된다는 소리인가??? "솔직히 블로거에게는 "관상/명상"을 증진하기 위한 말장난 이상으로는 들리지 않는다.)
http://www.youtube.com/watch?v=TTbX_88vJyY
기자의 질문:
개혁주의와 청교도 전통 속에 관상기도 또는 크리스천 명상 같은 것이 있나요?
파이퍼의 답변:
(비디오 2:05) 내가 정의한 바와 같은, 개혁주의 청교도의 관상기도와 명상의 전통에 대한 나의 답변은 "지극히 예스"입니다. 이성적이며 동시에 초이성적인, 교통함에 있어서 매우 신비적인,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이렇게 깊이 있는 개인적인 연결을 찾기 위해서, 꼭 주로 카톨릭 신비주의 전통으로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신학교 강의에 나는 화가 납니다.
참고영문: ON JOHN PIPER AND LECTIO DIVINA<<
[비디오 인터뷰 번역에 오류가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참고로 어느 분의 인터뷰 전체 번역을 추가합니다.]
목사님, 개혁주의와 청교도 전통에도 관상기도나 그리스도인 명상(혹은 묵상)과 같은 것이 있습니까?
우리 교회 예배 시간에 <이상의 골짜기>라는 작은 책에 실린 기도들이 자주 나타나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이상의 골짜기>는 청교도들의 기도들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저는 그 기도들을 그 쪽으로 분류합니다. 그 말인즉슨, 이 기도들은 사색적이며, 명상(혹은 묵상)적이라는 말입니다. 그 기도들에는 심지어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지시하는 말까지 적혀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이 기도들이 공동 모임에서 사용될 수 있도록 의도된 것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기도들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깊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기도들입니다.
그래서 저의 대답은 바로 명상(혹은 묵상)은 성경적인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율법을 밤낮으로 묵상한다 (시 1)." 관상은 그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또 그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님의 아름다움을 영적으로 보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을 보면 "그들 가운데서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보지 못하게 하였다."라고 말합니다. 자, 이게 무슨 뜻입니까? 그건 이 육체적인 눈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에베소서 1장 17절부터 18절에서 바울 사도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눈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의 마음의 눈을 밝히셔서,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너희가 알게 되기를 기도한다."
그래서 영적인 눈으로 보는 것, 혹은 우리가 '관상'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성경을 읽을 때, 그 말씀들 안에, 또 그 말씀들을 통해 여러분이 마음으로 현실을 보고, 영적인 현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으로부터 영적이고, 사실적이고, 개인적이고, 따뜻하고, 강력한 그런 기도가 쏟아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대답은 제가 방금 정의한대로 개혁 청교도 전통에도 관상 기도와 명상과 같은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이런 깊이있는 개인적인 교류, 즉 이성적이면서도 초이성적이고, 교제에 있어 아주 신비적인 이런 교류를 하기 위해서는 주로 천주교 신비 전통으로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신학교 수업들에 아주 화가 납니다.
이 정도 수준에서 하나님을 알고, 이 정도 수준에서 마음 속으로 또 영적으로 하나님을 관상하고, 감탄할 만큼 기도하는 가운데 이런 종류의 명상(혹은 묵상)까지 오르기 위해 반드시 나쁜 신학, 즉 로마 천주교의 역사적인 나쁜 신학을 반드시 받아들여야할 필요는 없습니다.
[출처] 존 파이퍼 목사의 면담 전체 통역입니다. (SDG 개혁신앙연구회) |작성자 박재원
사족: 카톨릭 신비 전통의 관상기도는 그들의 (나쁜) "신학"을 전혀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파이퍼는 아는지 모르는지..
[2012/4/20 추가]
관상기도에 대한 파이퍼의 위의 발언이 실제로 어떻게 해석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글 하나 소개한다. (요주의!)
http://christustraeger.tistory.com/95
[2014/8/3 파이퍼의 느닷없는 손동작 캡처 추가]